[통과의례] 인생의 기나긴 장정 '통과의례'

집단 자존의식의 사회적 표현, 문화적 코드로 자리매김

막대기나 그물 등 극히 간단한 도구만을 달랑 쥐어주고 일정 기간 동안 소년을 외딴 숲에 달랑 떨어뜨린다. 외부 인간 세계와 일체 단절된 그곳에서 다치거나 짐승에게 당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 남는다면 소년은 비로소 성인 남자가 돼, 사회의 떳떳한 주도층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호주 등지의 일부 미개 종족 사회에서 여전히 지켜지는 그들만의 통과의례 관행이다.

이 말은 지금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게임 이름이기도 하다. ‘신화:통과의례(Mystic:Rite of Passage)’란 이름의 그 게임은 한 말괄량이 소녀가 자신을 방해하는 신참 대장장이들을 하나둘씩 물리쳐 가다, 마지막으로 우두머리 대장장이와 싸워 이겨 우주를 지배할 힘을 얻는다는 시나리오로 돼 있다. 페미니즘 버전의 통과의례인 셈이다.


성장에서 소멸까지의 사회공동행사

통과의례란 그렇듯 일련의 기나긴 장정이다. 인간이 성장하고 소멸할 때까지 단계별로 치러지는 사회 공동의 행사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것을 거쳐 낸 사람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내면화하고, 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그에게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당당 편입하는 최대의 상이 주어진다.

인류학에서는 통과의례를 세 단계가 어우러진 것으로 본다.

결별(severance)-발단(threshold)-통합(incorporation).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누구나 지금 것과는 다른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모종의 부름을 받거나 느낀다(결별). 접해 보지 못 한 세계에 대한영혼의 목마름이 엄습, 당신은 여행을 떠난다(발단). 있던 곳을 떠나 돌던 당신은 한 단계 높은 인간이 돼 베이스 캠프로 돌아 온다(통합). 일련의 영혼 대장정이다.

통과의례란 작게는, 서구 사회에서 소년 소녀가 사춘기를 넘어 하나둘씩 하게 되는 귓볼뚫기(ear piercing)처럼 배타적 소집단(in-group)의 결속을 나타내는 징표로 출발한다.

그러나 소수의 관행일지라도 널리 퍼져 일반화한다면, 당당히 하나의 문화가 된다. 통과의례란 어느 집단이 새 성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집단 자존의식의 사회적 표현이다.

박수와 환호가 터지고, 축시 낭독과 함께 커플링을 서로 손가락에 끼워 준다. ‘나는 나야(I Am What I Am)’가 합창되면, 인정서(certificate of affirmation) 사인식이 이어진다. 영국의 동성애자 모임 ‘게이와 레스비언 휴머니스트’의 파티다.

미국 네바다주에는 ‘통과의례’라는 이름을 그대로 딴 재활 프로그램이 있다. 재활 치료의 기회를 놓쳐 버린 장애 청소년에게 단계별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체육 활동 등 단계별 프로그램을 통해 자아를 계발하고 삶의 기대치를 높여 간다. 통과의례가 삶의 등불로 기능하는 대목이다.

‘하모니 휴일 캠프(HarmonyHoliday Camp)’. 자폐와 자학의 길로 빠진 초경기 소녀를 위해 자존의식 개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미국의 통과의례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남아프리카나 호주 지역의 자폐 소녀까지 참여하는 등 호응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 통과의례가 인격 개발과 불가분의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성장과 변화를 긍정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통과의례에는 순기능적이다. 초경에 접어 든 소녀를 위해 미국의 여성학자 아미타의 ‘성숙하는 소녀들!(GirlsGrowing Up!)’이 좋은 경우다.

반대로 폐경의 스트레스와 골다공증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이 신체의 변화를 성숙의 징표로서 받아들이게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캘리포니아대 로비 플로이드 박사의 1992년 저서 ‘미국적 통과의례로서의 출생’은 출산의 고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미국내에서 점증해 가던 제왕절개 수술 비율을 저하시켰다. 분만의 고통 역시 자연스런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여성들이 깨닫게해 준 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해당 사회 집단에서만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통과의례는 분명 배타적이다. 통과의례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는데는 기이한 풍물을 접할 수 있다는 호기심이 분명 한몫 단단히 한다.

외부 사회에서 볼 때 기이하거나, 때로는 역겹기까지 한 관행도 통과의례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치러진다. 대표적 예가 아프리카에 만연한 여성 할례(female circumcision).

클리토리스, 음순 등 여성의 외성기를 일부 혹은 통째로 잘라 내는 관행이다. 1950년대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서구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UN과 WHO가 야만 행위라며 즉각 금할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호소하지만, 당사자들은 끄떡 않는다.



산 자에게는 더 나은 삶으로의 도약대

문화적ㆍ종족적ㆍ종교적 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치러져 온 신성한 의무라는 것이다.

자신의 문화를 서구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도 한몫한다. “지구상 최악의 통과의례”라는 비난이 퍼부어지건 말건, 그 별난 통과의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비정상적인 통과의례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존속해 나가는 일은 서구 사회라 해서 다를 것은 없다. 비밀 서클의 신입 회원이 치러내야하는 치사량의 음주 등 도를 넘는 신고식 역시 통과의례다.

최근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의 알코올ㆍ약물 센터는 ‘죽음의 통과의례’라는 책을 발간, 이제 통과의례를 행동과학의 차원에서 심층 연구해야한다고 강력 제안했다. 청소년들이 소위 신고식이라며 죽음을 부르는 폭주를 감행하는 데는 알코올의 폐해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것.

통과의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스라엘 여성과 군대는 다른 데서는 찾기 힘든 모델을 제시한다. 사회적 인정은 물론, 통과의례가 성공의 계기로 작용하는 보기 드문 경우다.

배꼽에 링을 뚫어 달고 머리를 오색으로 물들인 말괄량이도 10대 후반이 되면 자원 입대한다. 이 역시 그 또래의 소녀들에게는 자랑스런 통과의례다.

그러나 입대에서와 같은 사회적 보상은 없다. 그들에게는 여성의 입대 또한 철없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계기이다. 입대라는 유별난 여성 통과의례를 치러낸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보상도 따른다.

통과의례란 산자의 관점에서 뒤집어 말하면 한 단계 나은 삶에로의 도약대이기도 하다. 여성 발언권이 강한 이스라엘 여성들은 낙하산부대 자원 자격을 남자에게만 한정한 법령을 이제는 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낙하산 특공대에서 제대한 사람은 좋은 직장에 훨씬 쉽게 취직할 수있기 때문이다. 미공수부대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통과의례인 ‘패트롤 캡(patrol cap)’관행을 지켜 오고 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번스빌에 본부를 두고 있는 ‘통과의례 은거처(Rite Of Passage Reatreats)’라는 프로그램은 통과의례와 관계 깊은 인류사적 유적지를 탐방, 의미를 짚어 보는 소중한 자리.

1991년 애초 북미 대륙에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 사업은 지금 전지구적 규모로 진행중이다. 일년에 수차례씩 회원을 모집, 남태평양 거석 문화 군도나 홍해의 고래떼 등 지구 오지를 탐방, 그 지역의 신기한 문물을 보고 삶의 의미를 새겨 보는 거대한 체험장이다.

통과의례는 삶을 하나의 기나긴 연속체로 보게 한다. ‘바로 지금 이곳’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통과의례에 대한 인식은 그래서 인생에 대한 이해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명퇴 파장이 사회를 짓누르는 요즘, 통과의례라는 문화는 또 하나의 전망을 제공해 준다.

즉, 은퇴 이후에도 삶의 코드는 이전과 똑같이 작동하며 은퇴란 다음 단계로의 진입일 뿐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보스턴 신학대 호머 저니건 교수는 “경쟁과 긴장 등 각종 스트레스로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자유를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은퇴는 오히려 하나의 기회”라고 말한다.

은퇴 못지 않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이혼. 최근 페미니즘의 득세와 함께 이혼이 급증하면서 미국에서는 “이혼이란 사회적 매장이 아니라, 자기 개혁”이라는 주장이 당당 제기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관계맺는 방식에서 긍정적 진화가 이뤄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해묵은 가부장제가 완전히 폐기될 때만, 진정한 결혼이 성립한다’는 페미니즘적 가치관의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통과의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것은 이혼 역시 여타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이 깔려 있다.


통과의례는 인간의 역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통과의례란 결국 인생에 깃든 초월적 의미를 통찰하는 계기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일생에 몇번밖에 없는,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서는 더없이 소중한 자리이다.

죽음마저도 하나의 과정으로 긍정되는 자리이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역설적 긍정이다. 세계의 무수한 무당과 사제는 통과의례라는 형식을 빌어, 지금도 산자에게 피안의 세계(otherworld)를 체험케 하고 있다.

통과의례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시대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며 건재해 온 것처럼, 변함없이 건재할 것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28 18:46


장병욱 주간한국부 aj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