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대란] '쌀도 경쟁력' 근본적인 정책 전환 필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오만제(51)씨는 지난해부터 아침 식사 습관을 바꿨다. 50년간 밥과 국이 아니면 먹은 것 같지 않았던 오씨가 이제는 토스트 한 조각과 미숫가루 한잔으로 아침을 때운다.

아이들이 밥을 싫어하는 데다 고교 교사인 아내도 새벽 등교 때문에 식사를 돌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년간 아이들이 차려 주는 빵을 먹다보니 오씨는 이젠 아침 밥이 부담스럽다.

식생활 패턴이 서구화 되면서 쌀소비가 줄고 있다. 이제 밥보다 빵을, 쌀막걸리보다 맥주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 한사람의 연간 쌀 소비량은 94㎏. 이는 1996년 평균 104.9㎏(1999년 96.9㎏)에 비해 무려 10%나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이런 급격한 식생활 변화와 달리 정부의 쌀 정책은 여전히 고릿고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호정책이 오히려 쌀 경쟁력 떨어뜨려

그간 역대 정부의 양정(糧政) 정책의 핵심은 안정적 식량 확보와 농가 보호였다. 그래서 재정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추곡 수매를 실시해 왔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벼 품종을 연구ㆍ개발ㆍ지원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서구의 쌀 개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라는 방법으로 외국 쌀을 수입해 가면서까지 시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 노력은 쌀 식량의 안정적 확보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우를 초래했다. 정부 당국의 단견으로 국내 쌀 시장은 매년 재고가 급증, 현재 파동 직전에 처해 있다.

정부는 뉴라운드가 시작되는 2004년에는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쌀개방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외국 쌀에 비해 우리나라 쌀의 경쟁력은 비교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허약하기 그지 없다.

현재 우리 쌀은 미국이나 유럽 쌀에 비해 10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그동안 미질보다는 다수확 위주의 양곡 정책을 펼친 탓에 미질은 오히려 떨어진다.

일본의 경우 30년전부터 쌀 소비가 줄어들자 기능성 쌀로 방향을 틀어 가격은 우리보다 비싸지만 질에 있어서는 세계적 수준에 있다. 국내최고의 양질미로 꼽히는 추청벼(일명 아끼바래)도 알고보면 일본산이다.

우리 보다 미질이 떨어지는 중국도 최근 한국과 일본 시장을 겨냥해 품종 개발에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산 쌀은 질로 승부해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쌀 개방과 공급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양정 정책을 다수확 위주가 아닌 양질미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정립미의 경우 밥맛은 단백질 함유량이 6% 미만일 경우 가장 좋다고 한다. 일본의 특급 쌀이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 그 같은 쌀을 수확하려면 키울 때 질소질 비료를 적게 써야 한다. 질소질 비료를 적게 쓴다는 것은 곧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국산 쌀도 질로 승부해야 할 시기가 왔다. 수확량이 줄면 공급 과잉 상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중앙대 윤석원 교수는 “그간의 양정 정책은 농가의 수익 보전과 개방을 지연하는 식의 임시처방만을 했을 뿐 쌀 개방에 앞서 내성을 키우는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며 “현재의 낮은 국내 품질 등급 기준을 강화하고 종자공급 체계도 양질미위주의 단일 품종 재배 방식으로 전환하는 식의 근본적인 개혁 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국제간의 쌀 문제는 사회 경제 국가 외교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복잡성을 띄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단순 지원이 아닌 경쟁력을 키우는 양정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하고, 농민들도 의식 개혁을 통해 좋은 쌀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8/29 17:4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