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심재륜, 갑갑한 검찰

면직처분 부당판결, 비보직 고검장으로 31개월만에 출근

“검찰이 정치적 사건에서 일관성이 없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국민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 주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세상이 바뀌어도 검찰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문제는 검찰 수뇌부가 직접 지휘ㆍ감독하는 정치사건이다.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

1999년 1월 당시 심재륜 대구고검장이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 검찰수뇌부로부터 사표제출을 요구받자 이를 거부하며 발표했던 성명의 일부 내용이다.

그는 당시 수뇌부의 동반사퇴도 요구했다. 검찰 사상 초유의 고검장 항명파동이었다. 항명파동은 소장검사들의 ‘검찰의 정치적 중립요구’ 서명 파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검찰 수뇌부는 심 고검장은 면직하고, 연판장 파동은 뼈를 깍는 자성과 거듭나기 다짐으로 봉합했었다.

그가 2년 7개월만에 검찰로 돌아왔다. 그는 무보직 고검장 신분으로 8월27일 출근했다. 그에 대한 면직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른 것이다. 차관급 검찰 고위간부가 면직처분을 받은뒤 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받기는 처음이며 무보직 고검장의 탄생도 검찰 사상 사상 초유의 일이다.

심 고검장으로서는 명예회복이지만 검찰조직으로서는 과거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근무지를 무단이탈하고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뇌부를 강하게 비판, 검찰의 위신을 손상한 점은 징계사유에 해당하지만 26년간 검사생활을 하면서 쌓은 공로 등을 종합해 볼 때 면직처분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기웃거리지도, 머뭇거리지도, 조건도 없이 앞만 바라보는 수사를 하겠다.” 심 고검장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국가와 사회의 불행”이기 때문에 그 같은 수사자세로 임한다고 설명했었다.

그는 한보사건 재수사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의혹사건을 지휘했다. 그리고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잘 산다’는 말이 틀렸음을 보여준다며 정보근 한보회장을 구속하고 정씨 일가의 재산도 압류했다.

현직 재통령의 아들도 구속시켰다. 당시 대검 중수부에는 시민들의 격려전화가 잇따랐다. 재판부가 그의 검사생활 중 쌓은 공로의 한 예다.


장관ㆍ총장보다 선배 기수, 예우에 곤혹

법무부는 대법원의 복직 판결이 있은 날 `법무부 입장'이란 자료를 통해 "대구고검에는 지휘부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심 전 고검장을 대검의 비보직 고검장으로 발령하되, 직급에 걸맞은 사무실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서울고검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등 고검장으로서의 예우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시 7회로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보다 선배인 그를 예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검의 비보직 고검장이면서도 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한 고충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대법원 판결 뒤 심 고검장은 "기쁘면서도 서글프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잃어버린 세월(2년7개월)을 누가 보상하고 책임지며, 누가 되돌릴 수 있겠나. 사필귀정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또 “엄격한 신분보장이 요구되는 판ㆍ검사의 지위를 행정권이 자의적 결정ㆍ강요에 의해 침탈할 수 없다는 역사적 판례"라고 뼈있는 말과 함께 "검사의 신분보장이라는 의미 확보를 위해 일정기간 근무한 뒤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명예롭게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검사의 신분보장이 조직안정이라는 말로 검찰이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심 고검장의 출근은 검찰 조직으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는 검찰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출근이 검찰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기수개념이 뚜렷한 검찰조직에 다시 들어가 일정기간 근무한뒤 그만 두겠다는 심 고검장의 말로 미뤄볼 때 후배 기수인 장관과 검찰총장을 곤혼스럽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복직후 검찰 발전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그의 말에 검찰조직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30 11:37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