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15)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정형민 박사

"줄기세포 연구는 미래의학의 주축 될 것"

“미래의 병원은 자동차 정비소와 비슷해질 것입니다.”

정형민(37) 포천중문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은 ‘세포대체요법’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 사람의 장기가 고장나면 그 장기를 ‘수리’했지만 앞으로는 아예 세포를 빌려주게 될 것입니다. 심장에 탈이 나면 건강한 심장세포를 환자의 심장에 옮겨 활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정 소장의 연구팀은 지난 6월 ‘줄기세포 분화를 통한 세포대체요법의 확립과 인공장기의 개발’ 이란 연구과제로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간 3억원씩 4연간총 12억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 동안 복지부나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부분적으로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지원해왔지만 치료기술 개발을 목적으로한 줄기세포 연구에 대규모 지원을 하기는 정 소장 연구팀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과제는 크게 보면 배아 줄기세포와 생체 줄기세포중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 치료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 지 비교ㆍ분석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환자에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 대체요법을 적용하는 직전 단계까지 갈 것입니다. 아울러 인공장기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체외에서 무한대로 증식하는 만능세포

줄기세포(stem cell)는 태아의 전단계인 배아에서만 얻을 수 있고, 배아는 정자와 난자를 조작해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골수이식 수술처럼 성인에게서 줄기세포를 얻어 치료를 하는 것도 일종의 세포대체요법이다.

그러나 성인 줄기세포는 다른 세포로 자라지 않는데다 적용할 수 있는 기관도 제한되어 있다.

물론 지난해 이탈리아 국립신경줄기세포연구소가 성인 줄기세포로 그 동안 배아 줄기세포로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근육을 만들고, 미국 오리건 보건대학 연구진이 쥐의 골수 줄기세포를 간세포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등 성인 줄기세포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체조직을 배양할 수 있는 배아 줄기세포에 비해 융통성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몰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배아 줄기세포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성인 줄기세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성인 줄기세포는 체외에서 증식이 안돼 여러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고 한 가지 세포로 분화됩니다. 대신 이미 성인 줄기세포를 통한치료는 임상적으로 입증돼 병원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배아 줄기세포는 체외에서도 무한대로 증식시킬 수 있고 많은 종류의 기관으로 배양시킬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배아 줄기세포를 만능세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의 활용은 아직 연구실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는 연구를 위해 포천에 있는 대학내가 아닌 서울 강남의 차병원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을 연지(올해 3월 개소)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에 새 실험장비가 들어온 공간을 비워놓은 신생 연구소이지만 전체적인 시설은 우수한 편이다. 1개 층이 250평인 6층 건물의 1.5개 층을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 설치할 예정인 ‘줄기세포은행’ 등을 위해 연구소를 확대할 계획이다.

“보이시죠. 뭐 같습니까. 맞습니다. 줄기세포인데 심장, 정확히 말해 심장을 이루는 세포가 될 것들입니다.”

줄기세포를 현미경으로 봤다. 그냥 평범한 세포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세포를 확대ㆍ녹화해 TV화면으로 재생하자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세포는 마치 심장이 박동을 하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어떤 세포는 세포의 일부분이, 또 어떤 세포는 세포 전체가 박동을 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가 신체 장기복제에 성공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지만 사실 배아 줄기세포를 심장 등 신체기관으로 배양하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하면 원하는 신체기관으로 일정하게 유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의 실험대상은 쥐다. 폐기하려는 환자의 냉동배아, 쥐에서 얻은 배아 줄기세포나 탯줄에서 구한 성인 줄기세포를 쥐에 주입한 뒤 1~2달 뒤에 해부해 경과를 살피고 있다.

1주일에 2번 정도 해부를 하는데 기자를 만난 이날도 해부가 있었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고 귀여운 해부대 위에 대자(大字)로 단단히 묶인 쥐의 내부를 동료 연구진과 살펴보던 그는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도 실험을 위해 사용된 쥐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며 “동물애호가들은 비난을 하겠지만 연구와 인체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건국대에서 학사(수의학)부터 석ㆍ박사까지 모두 마친 정 소장은 사실 불임연구가로 명성을 쌓았다. 채취된 난자와 정자를 이식 단계까지 배양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1998년 미국 생식의학회와 세계생식의학회 공동 연차 학술회의에서 난자를 냉동보존하는 기술을 발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배아를 냉동하는 것은 상당수의 나라들이 부작용을 우려해 금지하고 있어 정자와 난자를 사용해야하는데 난자는 정자와 달리 냉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가 이 통설을 깬 것이다.

그래서 정 소장은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명과학자로 변신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불임 방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마당에 굳이 불임에서 손을 떼고 전환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한 2년간 고민도 하고, 검토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전기를 만들고, 또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커지더라구요.

그리고 차광렬 원장님의 성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불임 연구가 상당 부분에서 줄기세포연구와 직결되기도 하구요.”


배아복제기술은 산업적 잠재력도 큰 분야

정 소장은 최근의 인간복제논쟁에서 생명과학자들이 마치 범죄자처럼 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생명공학에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데 비교 우위에 있는 생명복제 연구를 과장된 윤리논란으로 그 싹이 잘린다면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입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대체요법은 퇴행성 질환을 포함한 각종 난치병 치료에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기술은 의학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도 큰 잠재력을 지닌 연구 분야입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고 365일 연구실로 나오는 그는 “줄기세포를 배양해야 하는 연구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마음을 든다”면서도 “그래도 이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3학년인 아들이 장래의 꿈을 설계하는 데 아버지의 직업이 아무래도 큰 영향을 줄 것 같아 집에서 연구자의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현재 대형 학술회의를 준비 중이다.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와 차병원, ㈜차바이오텍 공동주최로 11월 24, 25일 이틀 동안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줄기세포와 치료목적의 복제에 대한 서울 심포지엄’에는 생명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 강의를 하게 된다.

이와 함께 그는 ‘줄기세포은행’을 많들어 연구자들에게 줄기세포를 공급할 계획이다.

“20여년 전 시험관아기가 탄생했을 때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류의 큰 불행이라며 윤리 논쟁이 붙었지만 지금은 시험관 아기가 인류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결국 배아 줄기세포연구도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불치병을 치료하는 미래 의학의 주축이 될 것입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차장

입력시간 2001/08/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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