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마포구 삼개나루와 등대

삼개(麻浦). 마포의 본딧말이 삼개다.

‘삼개’란 섬개의 뜻. 즉 섬이 있는 갯벌이란 뜻으로, 우리말에‘섬’과 ‘삼’은 서로 넘나드는 말이다.

이 섬(삼)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사람들은 ‘섬’과‘삼’을 발음할 수 없어, ‘섬-서마(사마)-시마(島)’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을때 지석에 ‘사마왕(泗麻王)’이라 글씨가 나온다. 사마왕이란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므로 붙은 별칭으로 곧 섬왕이란 뜻이다.

삼(섬)개는 한강에서 이곳에 유독 섬(島)이 많아 삼개로 땅이름이 붙은 것 같다.

밤섬을 비롯하여 여의도와 동쪽으로는 노들섬, 서쪽은 선유도가 자리하여 크고 작은섬이 4개나 되니 삼(섬)개라는 땅이름이 붙을 법하다.

옛날 한강에 있던 한강진(漢江鎭). 송파나루, 노들나루, 삼개나루, 양화진은 대단히 큰 나루였다.

그래서 남녘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행인들이 반드시 이들 나루 가운데 하나를 택해 건너야만 했다. 또 장삿배, 조운선이 황해에서 한강을 타고 올라오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도승(渡丞)이라는 관리를 나루터에 파견해 상주 시킬 정도였다. 도승은 서울로 드나드는 사람들 가운데 수상한 자를 적발하고 강물의 수위를 측정하는 한편, 나룻배의 운항을 감독했다. 사공들이 정원과 짐을 초과한다든가 많은 뱃삯을 요구하는 비리를 적발, 곤장을 때리기도 했다.

그러나 도승들은 뱃사공들과 짜고 웃돈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 도강료(渡江料)에 대하여 조선조 ‘명종실록(明宗實錄)’ 11월 4일 기록을 보자,… “한강 잉화도(仍火島: 여의도), 남녀가 사로 안거나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 품이 야하기 그지없다.” 날이 가물어 물길이 얕아지면 사람을 업어 도강시키는 이른바 직업적인 섭수꾼이 있었다. 물을 건너준다는 뜻의 섭수(涉水)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던 1902년의 일이다. 내탕금에 굶주리던 황실에서는 한강을 건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룻배삯 말고도 도진세(渡津稅)라는 미명의 도강료를 얹어 받았던 일이 있다.

나룻배의 발, 착장에 가가를 지어놓고 도강료를 받았는데 불만이 비등하던 차에 드디어 폭발, 반란으로 번지고 말았다. 도강료를 받는 가가를 불사르고 소동을 벌였다.

1910년에는 일본 상인 우에다(上田)가 마포나루에서 여의도까지 배다리(舟橋)를 놓고 마포쪽에서는 우에다 자신이 여의도쪽에서는 우에다 부인이 거적을 깔고 앉아 도강료를 받았다. 다분히 일본 상인적 발상이었다. 한번 건너는데 현금일 경우 8전, 현물일 경우 쌀 반되값이었다하니 착취에 가까운 도강료였다.

결국은 배다리로 생업을 잃은 마포나루꾼과 삽수꾼, 거기에다가 민원까지 얽혀 폭등으로 번지고 말았으니, 삼개나루는 이 나루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

그 나루터 모퉁이 험난 물목 가장자리에 등대가 세워졌다. 정확한 연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 수많은 조운선과 나룻배, 새우젓배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등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돌보는이 없이 강가에 유령처럼 버티고 서있다.

입력시간 2001/09/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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