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망연자실, 희망은 어디에…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수확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여름내 피땀흘린 농민들은 정부의 인색한 추곡수매정책에 한숨지으면서도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그나마 시름을 잊고 있다.

자연의 절기와는 달리 우리경제는 수확은 커녕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조락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뒹구는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와 같다”는 김광균 시인의 절망이 우리경제에도 확산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면서 여름내내 별로 흘린 땀이 없기 때문이다. 베짱이처럼 노래부르며 ‘룰루랄라’했으니, 튼실한 벼이삭은 고사하고, 속이 텅빈 쭉정이를 걷을 수 밖에 없으리라.


미국 장기불황, 세계경제 동반 침체로 몰아가

우리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여건은 어디하나 희망을 가질 만한 게 없는 내우외환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경제의 견인차 미국의 경제는 갈수록 장기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경제를 동반침체로 몰아가는 괴물로 변해버린 게 요즘 미국경제의 실상이다. 미국의 2ㆍ4분기 성장률이 0.2%로 급락한 것이 이를 웅변한다.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 전세계 증시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주 후반 다우지수 1만선, 나스닥지수 2,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물론 2ㆍ4분기중 재고가 다소 감소하고, 7월 중 공장주문 증가 등 일부 경제지표 호전 소식으로 미국증시는 지난 주 말 소폭 반등했으나, 추세반전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미국기업들의 재고감소는 기업들의 생산재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줄기 빛을 던져준다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국내 지표도 온통 빨간불이다. 산업생산, 설비투자, 수출, 소비 등 실물지표가 환란당시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7월 중 산업생산은 지난 해 같은 달에 비해 5.9%나 감소했다. 이는 6월보다 2배이상 확대된 것으로, 1998년 10월(마이너스 8.8%)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8월 수출도 전년동기 대비 19.4 %나 격감했다. 6개월째 감소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8월 수출감소는7월(마이너스 20%)에 비해 감소폭이 다소 둔화했지만, 우리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설비투자, 소비도 잔뜩 움추러들고 있다. 이로인해 3ㆍ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일각에선 7월 산업생산 감소가 전월에 비해 다소 둔화했음을 들어, 우리경제가 바닥을 쳤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침체가 예상밖으로 길어지면서, 우리경제도 바닥을 치기는 커녕 지하 1층, 2층 등으로 더 추락할 것으로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직 희망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제가 이렇게 악화하자, 진 념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은 ‘3대쇼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외환위기 쇼크에 이어, 지난 수년간 저물가, 고성장을 주도하면서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한다고 할 정도로 미국 등 세계경제의 호황을 주도해온 정보기술(IT)부문의 급격한 침몰에 따른 IT쇼크, 그리고 전세계 자금을 마구 빨아들이며 고성장(올해 8%)을 구가하는 중국쇼크 등이다.

진 부총리의 3대 쇼크론은 우리국민들도 고성장의 거품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인 저성장체제에 적응해야 할 때임을 ‘교화’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리경제는 3~4%의 성장만 해도 경기과열론이 제기되는 미국 등 선진국경제체제로 변하고 있으며.경기사이클상 호황-불황은 시계추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게 재경부 관료들의 시각이다.

진 념부총리는 IT부문의 침체가 지속될 경우 20년대 세계대공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주 최대 관심은 한국경제의 ‘악성종양’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방향에 모아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살리기위해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 지원을 중단하라며 하이닉스죽이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채권단은 이번 주에도 하이닉스에 대해 신규자금지원을 통해 살릴 것인지, 안락사시킬 것인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다. 11조원의 거대부실을 안고있는 하이닉스는 어떤 방향으로 처리되든지, 금융기관을 피멍들게 하고, 국내증시를 쥐락펴락하는 골칫덩어리가 되고있다.


증시‘3각파도’로휘청, 500선 붕괴위기

증시도 하이닉스암초, 산업생산부진, 미증시 침체 등의 3각파도를 만나 500선 지키기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이번 주 증시는 자칫 500선이 붕괴돼 480~500의 박스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내다보고 있다.

경기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6일 열리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추가금리 인하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침체를 떠받치기위해 추가인하를 할 것이라는 전망과, 추가금리를 해도 경기가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물가안정에도 부담을 주므로 더이상의 인하는 힘들것이라는 예상이 팽팽히 맞서있다.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는 대우차 처리문제는 8월말 처리시한을 넘긴 상태에서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재경부관계자는 “GM과의 이견을 상당부문 좁혔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AIG가 현대투신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체결 하룻만에 협상결렬을 시사한것을 감안할 때, 대우차 처리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대우차 처리가도에는 여전히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9/04 19:3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