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자 동맹 서막 올랐나?

DJP 결별로 태풍권에 든 정치권, 지각변동 가시화

‘1997년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로 본격화된 DJP공조가 파경을 맞는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새로운 짝을 찾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손을 잡을 것인가’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안처리를 놓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아직은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이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 지 워낙 변수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임안 처리를 놓고 JP는 DJ에게 등을 돌렸고, 한나라당과 손을 잡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그간 가능성으로만 거론되던 ‘한ㆍ자동맹’이 가시권에 들어선 것이다.

◁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 파기로 한나랑당과 자민련의 동맹설이 흘러나오는등 정국이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격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이재오 총무(위) JP·이완구 자민련 총무가 각각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왕태석/사진부 기자>


JP도박은 고도의 정치승부수

JP는 지난해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회동했을 때 “정치에 영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정치역정은 늘 이랬다. 정치적 성장과정이나 이념적으로 융합될 수 없었던 DJ와 손을 잡아 대권을 넘긴 것 처럼 JP는 임동원 장관 해임건의안을 걸어 또다른 정치적 도박을 시작했다. 내년 대선을 향해 본능적인 ‘자기 생존’의 반사신경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JP는 8월31일 강원 원주에서 열린 한상철 원주시장의 출판기념회에서 “큰 길에서는 공조지만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표결하자면 표결하자는 것”이라며“공조를 우리가 깨지는 안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언급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높아졌다. 그는 표결 전날 신당동 자택에서 소속의원들과 결의를 다지며 “표결에 들어가면 결과가 가든, 부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그답지않은 직설화법까지 동원했다.

측근들은 “JP가 임 장관의 사퇴요구를 냉정히 거절한 DJ에 대해 서운함까지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민련 이완구 총무는 9월3일 공조파기 여부에 대해 “우리가 매달리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야 어찌됐건 원하는 것만 공조하겠다는 ‘선택적 공조’는 이미 국민의 정부를 이끌어 온 중심축인 ‘공동정권’의 틀을 깬다는 의미이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공조란 어려울 때 서로 힘을 합쳐 국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며“2여 공조의 지속은 어려울 것”이라고 못박았다.

JP는 왜 정치적 도박을 시작했을까. 정가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JP가 자신과 자민련의 힘에 대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자에게 ‘위력시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손에 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정치게임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상 시계추가 내년 대선을 향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위축되는 것은 자민련이다. 자민련은 ‘JP대망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바닥권인 JP가 여권의 대선후보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사실 JP 앞에 놓인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이대로 3당 구도로 대선을 치른다면 JP와 자민련은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모두 ‘충청권 연고’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

대선 국면으로 돌입하면 자민련의 기반인 충청권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수 있고, 그 경우 자민련은 두 다리로 서있기 조차 힘든 상황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반면 JP가 민주당과 합당의 길을 택한다면 최대한의 ‘권력’을 손에 쥐어야 한다. 정치권에선 이를 통합 여당의‘당권’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민주당내에선 이에 대해 고개를 젓는 분위기가 많다.

‘총재’라는 ‘자리’를 줄 수는 있지만 당 자체를 통째로 달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JP에겐 민주당에게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자민련에선 “민주당과 청와대가 국정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도움을 청할 것”이라는 인식도 깔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느끼는 배신감과 정치적 타격이 너무 크고 이번 정기국회를 지나면 사실상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관계회복’이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는 것이다. 이번 해임안 파동이 정치권을 태풍속으로 몰고가는 것도 물론 ‘한ㆍ자 동맹’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으로 선 여권의 ‘영남고립전략’만깬다면 내년 대선의 승산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보고 있고, 가장 약한 고리를 충청권으로 보고 있다.

충청권에서 40~50% 정도의 여야 양분 구도로 간다면 ‘필승’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객관적으로 한ㆍ자동맹의 조건은 성숙되어 있는 셈이다.

만약 이 총재가 승리한다면 여전히 JP는 위력을 갖는다. 자민련이 있어야 이 총재도 17대 총선이 있는 2004년까지 ‘여대 야소’의 안정적인 정국구도를 유지할 수 있고, 이런 상황은 역으로 JP에겐 한나라당에서도 ‘통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충분하다.


한나라, 조심스런 그러나 분주한 손익계산

‘2여분열’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입장은 신중하다. 이재오 총무는 “자민련은 자민련의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 당은 우리 당대로 정도를 걷다보면 서로에게 결국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임안표결 뒤에도 DJP공조는 이적 의원들이 이탈하지 않는 한 모양이 깨어지지는 않을 것이나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는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임안이 처리됐다고 해서 DJP의 관계가 청산절차를 밟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명운이 다했다고 보는 것. 한나라당에선 2여분열이 ‘나쁠것은 없다’를 넘어 즐겁기까지 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ㆍ자 동맹의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은 조심스럽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JP를 아직 믿을 수는 없다. DJ와의 공조를 한 순간 칼로 무베듯 잘라 버릴 수 있겠는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신할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선 아직까지 내년 대선 국면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 만큼 자민련의 추이를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동맹실현 여부 국회법 개정에 달려

해임안 이후의 정국은 의외로 가파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자민련에 파견나간 민주당의 송석찬 배기선 의원등은 ‘원대복귀’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경우 자민련은 다시 비교섭 단체로 전락하게 된다.

자민련에겐 당장 수십억원의 국고보조금이 끊기게되고 국회내에서 교섭단체로서 누리던 각종 지위도 잃게 된다. 자민련으로서는 민주당에 의지해 누렸던 달콤한 혜택이 전면 중단되는 셈이다.

자민련은 다시 교섭단체가 되기위한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하고, 이 경우 원군은 한나라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국회에는 자민련이 제출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4석으로 낮춘 국회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는 상황. 지금껏 한나라당의 반대로 서랍속에 잠자고 있다.

한나라당이 협조해 준다면 자민련은 어렵지 않게 교섭단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이 경우 자칫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과 신당 창당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면이있어 부담감을 느낀다.

이 같은 상황탓에 한ㆍ자 동맹의 실현 여부는 결국 국회법 개정안의 처리 문제가 어떻게 가닥을 잡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이 해임안으로 민주당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면, 국회법 개정안으로 한나라당과 밀월 관계로 가는 관문을 여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한나라당 이재오총무와 자민련 이완구 총무가 비밀리에 접촉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이날 비밀 회동의 내용을 불문에 부치고 있다.

이재오 총무는 국회법 처리에대한 밀약 가능성에 대해 “기자들의 머리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완구 총무는 “단언코 말하건대 아직 국회법을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고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자민련간의 국회법 협상은 곧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이태희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9/04 19:51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