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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공적자금, 빚잔치 악순화

부실 공적자금, 빚잔치 악순화

‘빚수렁’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만기가 집중적으로 몰려오는 공적자금의 상환을 연장하기 위해 만기 10~20년짜리 정부보증채권을 새로 발행(차환발행)할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얻는 악순환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정부의 당초 설명은 달랐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대부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부담은 채권 발행 기간에 지급해야 할 이자에다 투입한 원금의 일부 손실액을 더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해왔다.

거대한 빚을 내서 수술비(공적자금)로 쓴다 해도 몇 년안에 고장난 경제가 치료되고, 큰 휴유증도 남지 않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벗어나는 좋은 방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공적자금의 회수율에 일차적인 답이 있다. 재정경제부가 8월31일 발간한 2차 공적자금 백서에 따르면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97년 11월부터 올 6월까지 모두 137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했으며, 이중 보유주식 및 자산매각, 대출금 회수 등을 통해 34조2,000억원을 거둬들였다고 밝혔다. 회수율이 24.9%에 불과한 것이다.


빚 갚으려 또 전부보증채권 발행

회수율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책임있는 발언은 없었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잘하면 70%, 안 되도 50%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빌려 준 돈을 되돌려 받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24.9%의 회수율은 도가 지나치다. 기업의 채권추심팀의 회수율이 이 수준이었다면 벌써 해고됐을 수준이다.

국민들이 공적자금이 부실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적자금은 대부분 진행형 상태여서 부실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언제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다.

이 때문에 재경부는 지난해 12월20일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을 만들었다. 감사원도 지난 3월 80명의 감사반을 재경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5개 관련기관에 보내 공적자금 특별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로는 회수율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원칙과 무책임이 최고의사 결정단계에서 실무선에 이르기까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결탁과 부정까지 개입된 경우도 적지 않다는 풍문도 돌고 있다. 게다가 감사원은 아직 특별감사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어 발표 지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과 이강두 당 공적자금국조특위 위원장은 최근 정책성명을 통해 "공인회계사 등을 포함해 80여명에 이르는 방대한 인력을 투입해 지난 6월15일 공적자금 현장감사를 종료한 뒤 두 달이 넘도록 결과발표가 지연되고 있다"며 "감사결과에 대해 관계기관간에 사전조율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8월29일 농림부가심재철(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축산발전기금 지원 부적정’이라는 감사원 감사자료는 정부의 공적자금이 얼마나 부실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자료에 따르면 농림부는 축협과 통합한 농협이 구 축협의 주식투자 손실액, 상호금융특별회계 결손금 등을 보전하기 위해 요청한 2,748억원의 공적자금을 축산발전기금채권 양도 형식으로 지원하면서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을 완전히 무시했다.

농림부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따라 농협으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된 구조조정계획과 필요한 경우 노조의 동의서 등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서를 받아야 하지만 선언문 하나로 대신했다.

또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지원한다는 이유로 이자율 차이에 따른 차액까지 지원하고 2,748억원이라는 거액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등 상식이하의 관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60조원 날리고 또 공적자금 조성할 판

이 같은 부실운용까지 가세하면서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회수불능의 공적자금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한빛ㆍ제일은행 등 부실금융기관의 출자금 53조 원중 13조3,000억원은 감자(減資) 등으로 날려버려 국민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된 상태다.

또 금융기관 출연금 12조2,000억원과 퇴출 금융기관의 예금 대지급 20조원도 대부분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50~60조원의 공적자금이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정부도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대주주등에 재산압류 및 손해배상 등을 통한 회수 규모는 현재 8,690억원에 이른다. 증발될 것으로 보이는 50~60조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

국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대목은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12월 2차로 조성한 공적자금 50조원(회수분 10조원 포함)중 29조6,000억원을 부실은행 추가출자, 보험사ㆍ금고 추가 구조조정, 부실종금사ㆍ한투ㆍ대투출자등에 이미 투입했다.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서울보증보험, 현대투신, 대한생명 등 금융기관의 부실해소에 추가로 쏟아부어야할 돈도 20조4,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2차 공적자금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하이닉스반도체가 법정관리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정부는 “추가소요가 발생하더라도 추가조성보다 회수분으로 충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회수실적을 볼 때 공염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의 주식매각도 커다란 차질을 빚고 있어 공적자금의 추가조정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경부는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제일ㆍ조흥ㆍ외환은행 등 정부소유 금융기관의 주식매각 등 민영화를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증시침체 등으로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주식 매각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루트가 막히고 있는 셈이다.

현재 공적자금의 여유분도 15조원에 불과하다. 반면 투입해야 할 공적자금 소요액은 여유분 보다 많은데다, 경기침체로 새로 쓸 곳도 늘어나고 있다.

재경부는 “지난해 추가로 조성된 50조원 중 8월말까지 30조6,000억원을 썼다”고 밝혔다. 19조원이 여유분이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가 회수하기로 한 10조원중 실제로 회수한 돈은 5조8,000억원에 그쳐 즉시 동원 가능한 액수는 15조2,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단기채권으로 원금상환 부담 증가

정부가 차환발생으로 만기를 연장하려고 하는 채권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 공적자금으로 2002년 5조6,000억원, 2003년 21조9,000억원, 2004년 17조7,000억원, 2005년 17조9,000억원, 2006년 16조6,000억원 등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국공채는 거의 대부분 20~30년짜리 장기채권으로 발행하고 있다. 재정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장기채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데다 정부의 신용도도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 공적자금을 만들었다.

공적자금관리위 김경호 사무국장은 “5년 만기를 중심으로 채권을 발행하다보니 내년부터 공적자금의 원금상환 부담이 집중되고 있다”면서“10~20년짜리 정부보증채를 새로 발행해 상환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다음 정권과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차환발행보다는 상환에 주력, 회수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 이만우 교수(경영학)는 “정부가 국회의 감시(동의)를 피하기 위해 상환기간을 장기로 변경하려 한다”면서“그러나 지금같은 전세계적인 저금리시대에는 상환기간을 단기화해 이자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철환 경제부기자 chcho@hk.co.kr

입력시간 2001/09/0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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