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74)] 고도쿠시(孤獨死)

1999년 5월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의 목조 단독 주택에서 살아 있었으면 71세인 노인이 백골로 발견됐다.

10년전에 이사 온 그는 '히토리구라시'(一人暮し), 또는 '돗쿄'(獨居)라고 불리는 외로운 생활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최소한 9년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나 가족은 물론 이웃의 무관심이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가족과 친지, 다정했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는 죽음이 아니라 쓸쓸히 죽음을 맞는 '고도쿠시'(孤獨死)는 나이에 관계없이 서럽다. 다만 젊은이들이 주위와 발길을 끊고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죽어 가는 경우에는 대부분 정신적 장애나 특수한 종교적 신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들과 달리 노인들의 고도쿠시는 다른 선택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서러움이 더하다.

일본에서 노인의 고도쿠시는 90년대 들어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95년 고베(神戶) 대지진이 중요한 계기였다.

고베시 주변 곳곳에 세워진 가설주택에는 1만4,000여명의 독거노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가장 늦게까지 가설주택을 떠나지 못했고 매년 수십명씩 외롭게 죽어 갔다. 구호의 손길이 연일 끊어지지 않는 등 쉽사리 이웃의 동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설 주택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죽음은 며칠씩 지나서야 확인됐다. 그러니 대도시 독거 노인들의 운명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굳이 독거노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2월초 오사카(大阪) 다카쓰키(高槻)시의 공영주택에서도 할아버지(79)와 할머니(74)가 숨진 지 한달만에 발견됐다.

할머니는 몇 년전부터 심한 노인성 치매로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아 왔으나 결핵을 앓고 있던 할아버지가먼저 병사하자 영양 실조로 숨졌다.

20여일 후 나고야(名古屋)시의 공영주택에서도 노부부가 영양실조로 숨진 채 발견됐다.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할머니(69)를 보살피던 할아버지(79)가 숨지자 할머니도 저절로 따라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월 3만5,000엔의 집세가 몇 달 동안 밀린것은 물론 전기·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지가 한달이 넘었다. 냉장고는 마실 물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현금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노인 복지에 관한 한 선진국 문턱을 넘어 섰다고 자부하는 일본이다. 생활이 어려운 노인에게는 생활 보조금이 지급되고 각종 시민단체의 구호활동도 끊이지 않는다.

자치단체에 따라서는 유산균 음료를 매일 배달하거나 주5일 점심 도시락을 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노인들의 고도쿠시를 막으려 애쓰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제도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다.

‘심중(心中)’이라는 한자를 일본어로 '신추'라고 읽으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음속', '내심'이라는 뜻이지만 '신주'라고 읽으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사(情死)를 비롯한 동반 자살을 뜻하게 된다. 동시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란 쉽지않아 한 쪽이 먼저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고 뒤따라 자살하는 ‘무리신주(無理心中)’, 즉 억지 동반 자살이 흔히 일어난다.

98년 2월 도쿄(東京) 오타(大田)구의 한 서민아파트에서 무직의 할아버지(68)는 아내(70)의 목에 전깃줄을 감았다. 둘 다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할머니쪽이 심해 늘 누워 지냈다.

할머니는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아내가 좋아하던 라벤다 꽃을 한 다발 사다가 머리맡에 두고 향을 피우고는 칼로 손목을 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서를 찾아 와 제발 죽여 달라고 빌었다 .두 사람은 월13만엔의 생활보조비로 살았다. 집세를 내고 나면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돈이 떨어지면 같이 죽자고 다짐해 왔다.

일본 노인들의 고독사는 대부분이 병사이고 자살이 그 뒤를 잇는다. 경제적 어려움에 덧붙여 늙고 병든 몸을 맡길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해 4월 세계 최초로 '가이고'(介護)보험이 도입됐다. 민간 전문회사의 가사 보조원들이 파견돼식사와 대소변, 목욕 등 노인의 수발을 들고 그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노인 복지 보험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곁에서 돌보는 사람이나 가족이나 주위의 애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외로운 죽음을 맞는 노인들도 대개 자녀들이 있지만 저 세상으로 떠난 후에야 대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0년말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14%가 혼자, 33%가 부부만 살고 있어 고도쿠시는 일본 노인들의 숙명처럼 돼 가고 있다.

입력시간 2001/09/0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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