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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환경운동가 겸 사진작가 석동일

[인간탐구] 환경운동가 겸 사진작가 석동일

"양심없는 지식인이 환경의 최대 적"

'지금이 딱 좋다'고 했다. '나는 지금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단계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을 믿을수 없었다. 말과는 달리 그는 많은 걸 잃은 사람이었다. 가정도 조각나고, 인간에 대한 애정도 부서지고, 얻은 것이라곤 자유, 그리고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 못한 필리핀으로의 이민 생각뿐이다.

"동강을 살리고 저는 동강났습니다. 동강살리기 운동 와중에 이혼을 맞았고, 한동안 잠적해 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모든게 알맞습니다. 아내와도 편안한 친구 사이로 관계가 정립됐고, 오히려 어디에도 매이지않고 일할 수 있으니 더 환상적입니다. 옛날부터 일하다가 죽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지금이 딱 좋습니다. "

그러면서도 얼마전 두달동안 회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일을 해봐야 뭐 하나, 해도해도 끝이 없고, 생활도 안되고, 기껏 애써 놓은 것들은 죽 쒀서 개 주는 꼴밖에 안된다는 생각에 속이 바짝 말랐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제자리에 돌아왔다. 어쨌든 '해야 할 일은 해야겠어서'.


동굴, 동강에 이어 바닷가 모래지키기

사진작가 겸 환경운동가 석동일(50)씨, 동굴과 동강에 이어 그는 요즘 바닷가 모래밭에 사로잡혀있다.

지난 10월부터의 일이다. 틈만 나면 안면도 등지의 해안사구를 살피러 다닌다. 사라지는 모래사장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 잘못이다. 가만히 두면 괜찮을 것을 그 위에 콘크리트 옹벽을 친 탓에 모래가 바다로 쓸려나가고 있다.

보기에도 허허롭지만,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 당장 털게와 콩게 등 모래에 의지해 살던 생물들이 사라지고, 이것과 연쇄적으로 바닷속 생물들의 먹이사슬까지 줄줄이 파괴된다.

"OECD국가중 해안에 옹벽을 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선 철저하게 모래사장을 보호해 거대한 정수장 효과까지 얻고 있는데, 우린 있던 모래까지 스스로 없애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까지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한편으론 이 모래가 포구에 쌓여 배의 진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일부러 돈을 들여 모래를 퍼내는 준설작업까지 해야하는, 어리석은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해결방법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겁니다. 옹벽만 없애주면 금새 원상회복됩니다. 겨울 한 철만 지나도 파도가 다시 모래를 실어다 줍니다. 자연에 손대면 손댈수록 탈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석씨는 애초 바다가 아니라 산에 반해있던 사람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도 오로지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이 꿈이었다. 그중에서도 사진작가가 되어 직접 히말라야의 비경을 담아오고 싶었다.

산만 바라보던 어느날 산악회의 한 선생님이 '한번 동굴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별 생각없이 뒤따랐던 첫 동굴탐사에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빛도 없고, 계절도 없고, 밤낮도 없는 좁고 캄캄한 동굴, 그러나 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천지였다. 빼곡히 들어찬 종유석들은 보석 그 자체였다.

등산배낭 대신 동굴탐사장비를 챙기는 날이 많아졌다. 나중엔 죽기살기로 동굴탐사만 다녔다. 한창때인 1979년엔 1년중 9개월을 동굴에서 보냈다. 좁은 굴을 빠져나오지 못해 기절한 적도 있고, 65m 수직동굴 속에서 탈진한 채 쓰러져 남의 손에 끌려나오기도 했다.

더이상 가보지 않은 동굴이 없을때 쯤에야 손을 놓았다. 그간 찍은 동굴사진만 9만여컷. 누가 어떻게 뒤섞어놓든 한 눈에 이름을 댈 수 있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러나 사진속의 동굴 80%는 촬영후 사라져버렸다. 발견후 사람의 손을 타자마자 금새 훼손된 것이다. 요즘도 어딘가 뉴스에서 새 동굴 발견소식이 들리면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지구속의 보물, 차라리 꼭꼭 숨어 들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년전 강원도 평창에선 소위 남근석 사건이란 것도 있었다. 원래 문화재청의 정식허가없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돼 있는 미공개 천연기념물 백룡동굴에 당시 그 지역 경찰서장이 간부들과 유지들, 부인들까지 대동해 14명이 무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남근모양의 기형종유석을 경무과장이 따서 서장에게 준 뒤 이것을 몰래 들고나왔다가 이후 관리인의 항의로 들통나면서 문화재관리법 위반으로 여러명이 징계를 당한, 웃지못할 사건이었다.

동기야 어쨌든 명백한 도굴, 처음 이 사실을 밝혀낸 것이 석씨였다. 자칫하면 엉뚱한 사람이 처벌을 받을 뻔도 했다. 이미 제보를 통해 석씨가 훤히 정황을 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본인은 뒷짐만 진 채 엉뚱한 희생대타들만 나서고 있었다.

처음엔 거짓자백을 했다가 강도높은 처벌에 놀라 스스로 번복하고 퇴장해버린 레미콘업체 사장, 나중엔 경무과장 부인까지 떠밀려 나왔다.

결국 보다못한 석씨가 훼손전 동굴 사진들에다 직접 실험까지 해보이고서야 진위가 밝혀졌다. 하지만 그 처리 결과란것도 허탈했다. 무단반출, 은닉으로 직위해제가 되었던 경찰서장은 얼마뒤 바로 복직이 됐고, 그나마 석씨 혼자 강연이란 강연때마다 실명까지 공개하며 꼬집는 것으로 끓는 속을 삭혀야했다.


자연에 바친 인생 “동굴은 지구속의 보물”

동강살리기 운동에 뛰어든 것도 동굴이 끈이 되었다. 동강 유역 4km 일대는 특히 그가 동굴탐사를 위해 수도 없이 드나들던 곳. 댐이 만들어진다면 당장 육안으로만 봐도 족히 80개는 넘게 수몰될 천연동굴을 당국에선 고작 6개 정도로 눈가림해 발표했다.

실제로 조사해보니 무려 244개나 되었다. 환경영향 평가까지 속여가며 밀어붙이려는 댐건설을 더이상 믿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동강을 수장시키는건 그 자체로 죄악이었다.

"제가 가장 화나는 것은 파렴치한 지식인들입니다. 동강이든 해안사구든, 위선적인 지식인들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는 겁니다. 동강댐 문제때도 한번은 제가 직접 문화재 전문위원들을 안내해 현장을 보여주자 그들 역시 곧바로 문제의식을 느끼고는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환경부에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곧 재조사 프로젝트가 시행됐는데, 어이없게도 그 재조사 용역을 받아 또다시 댐건설계획에 긍정적으로 써 준 사람들이 누구냐면 바로 앞서 재조사를 주장했던 전문위원들이 대부분이었었습니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따라줄 사람에게만 프로젝트를 맡기는 당국도 문제지만,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 사실까지 왜곡하는 학자들이 더 나쁩니다.

또 그런 부도덕한 프로젝트를 많이 딸 수록 유능한 학자로 대우하는 사회분위기도 크게 잘못돼 있습니다. 환경운동? 양심없는 지식인들만 없으면 저절로 됩니다. "

한편에선 신변의 위협까지 닥쳤다. 심지어 자신이 돕겠다고 나선 현지 주민들까지 그에게 반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댐 건설 계획이 이미 착수된 상황에서 막판 보상금에 기대를 걸고 있던 주민들로선 훼방꾼처럼 보이는 그의 개입이 반갑지 않았던 것.

"주민들마다 손에 몽둥이, 톱, 낫 등을 들고 나와 바리케이드를 친 채 '당신은 여기 못 들어온다'며 막았습니다.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등, 정말 살벌했습니다.

실제로도 한참동안 들어가지 못하다가 나중에 밤새 주민들을 설득하며 오해를 풀기도 했지만, 그중 가수리의 경우엔 아직도 제가 못 들어갑니다. 어쩌다 다른 곳에 가느라 피치못해 그 앞을 지나야할 때도 그땐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저는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지나갑니다. 제 소원중 하나도 언젠가 다시 제 발로 가수리 땅을 밟아보는 겁니다."


환경운동과 바꾼 가정

동강에 바친 2년. 어느날 새벽 집에 들어가 문을 열려고 보니 갑자기 열쇠가 맞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족들이 집 자물쇠를 바꿔버린 것이다.

오로지 동강밖에 모르는 남편과 아버지. 가족으로선 이유있는 의사표시였을 것이다. 가정과 동강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마지막 통첩앞에 석씨는 결국 가정을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뒤 이혼의 길을 밟았고, 홀로 섰다. 기자들의 추적을 피해 8개월간 잠적해 살았다. 역시 동강안에서.

보람과 이름이라면 얻을 만큼 얻었다. 동굴의 비경을 담아 펴낸 '한국의 동굴' 사진집은 화려한 찬사와 함께 출판계의 이름난 상마다 죄 휩쓸었고, 1998년엔 교보환경문화상과 환경기자클럽이 제정한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 멋진 사진집을 냈던 출판사는 상업성에 실패해 문을 닫았고, 환경운동으로 받은 상금은 그간 밑빠진 독처럼 들어간 환경운동 활동비를 갚는데 얼마간의 보탬이 됐을 뿐이다.

동강운동에만 자비 7,000만-8,000만원이 들었다. 몇번이나 경제적인 고비를 맞았지만, 틈틈이 자연생태사진등을 찍으며 번 수입으로 아슬아슬 파국을 넘겨왔다.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인간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도 순박해보이던 깊은 산골, 맑은 물가의 사람들마저 이웃에 사는 친구집에 민박손님이 몰리는 것에 시샘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경찰에 신고하며 음해하는등, 실망스러운 일을 많이 보았다. 인간의 본성 자체에 조금씩 회의가 들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채 아들과 함께 필리핀 이민을 준비한 적도 있다. 싸울만치 싸운 나이, 남은 시간이라도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필리핀은 세계 오지 촬영을 다니며 눈여겨 봐뒀던 곳이었다.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들 심성이 착하다는 것, 특히 '인상쓰는 사람들이 없다'는게 가장 가슴을 울리던 곳이었다.

마닐라 소재의 아파트까지 알아보며 거의 행동으로 옮기기 직전 주윗사람들이 '아직도 여기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주저앉히는 바람에 계획을 보류했다. 마침 아들의 군입대까지 겹쳐 불가피했다.

요즘도 1주일에 서너번씩 군인이 된 아들을 면회가는 지극정성의 아버지. 필리핀 이민의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1년전부터 인터넷 사업 '그린 존 닷컴'을 시작했다. 평생 찍어온 사진들만 슬라이드까지 합치면 30만여컷. 마땅히 기증할 곳을 찾지못해 고민하다가 디지털세계에서 답을 얻었다. 인터넷에 자료를 올려 데이터 베이스화 했다. 가진 것 모두 세상과 공유하기로 했다.

이 땅을 떠나든 떠나지않든, 머무는 동안엔 목숨 걸고 일하기로 했다. 요즘은 해안사구를 전공한 서울대 지리학과유근배 교수와 단짝을 이뤘다. 방치됐던 백사장 문제가 표면화한 것도 이론과 추진력을 합친 두 사람의 협공 덕이다.

특히나 올해부턴 '더 못돼 지기로'결심한 석씨다. 대상은 이미 정해져있다. 양심을 파는 학자들부터 확실하게 몰아내겠다는 것, 국책사업별 환경영향평가 실무자의 이름을 밝히는 실명백서까지 준비중이다.

일하다 죽기가 소원인 사람의 투지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피플테리언(투견의 일종)'으로 불리는 사나이. 사실 그를 취재하기로 마음먹은건 석씨와 함께 해안사구 여행을 다녀온 뒤 가슴 뭉클한 소감을 올려놓은 취재인물의 홈페이지를 우연히 훔쳐본 뒤였다는 것을 끝으로 밝힌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1/09/0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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