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양희은 (下)

'금지'를 먹고 산 불멸의 노래 30년

데뷔 때부터 주무대였던 명동 오비스케빈 등에서 당시 기자초봉의 세배가 넘는 4만원의 월 개런티를 받았던 양희은.

1972년 10월엔 TBC 라디오 <팝송다이얼> DJ로 영역을 넓혔다. 대학생, 가수, 방송 DJ등 1인3역 이상의 활동으로 눈코 뜰새 없던 와중에 터진 73년초 서유석과의 결혼설. 불발탄이었지만 당시 양희은과 서유석의 인기만큼이나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73년 정부에 의해 건전가요로 선정되었던 <아침이슬> 이 금지곡 목록에 오르면서 시작된 양희은의음악적 시련. 1, 2집의 ‘그날’, ‘엄마! 엄마!’, ‘서울로 가는길’, ‘작은연못’, ‘백구’등도74년어느 날부터 방송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발표한 200여곡 중 금지곡만도 무려30여곡.

그러나 독재정권이 통제를 가할수록 금지된 노래들은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더욱 해방감을 안겨주며불멸의 생명력을 키워갔다.

오랜 기간 대중매체에서 사라진곡들이었지만 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소외된 노동현장에서, 국민들의 각종모임에서 더욱더 질기고 강한 생명력으로 시퍼렇게 불리어졌다.

아직도 양희은을 저항의식이 강한 ‘운동권 가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때문. 정작 양희은 자신은 ‘결코 운동권이 아니었고 암울한 시절의 시대상황이 내가 부른 노래까지 어둡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런 해프닝의 연속이지요. ‘퇴폐가사’, ‘시의 부적합’,‘허무주의 조장’이란 명분인데도 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양희은의 회고처럼 당시 수많은 금지곡들은 아전인수식 판정으로 양산되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은 왜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였고, <작은 연못>은 정권을 비꼰다는 이유에서, <아침이슬>은 가사 속의 붉은 태양이 북측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 해석이 내려졌다.

퇴역을 앞둔 늙은 선임상사가 군 복무 중이던 김민기에게 막걸리두 말을 내고 자신의 30년 군인인생을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

노병의 애환과 설움을 담은 이 노래는 <양희은-서라벌,SLK1041,78년> 음반이 발표되기전인 76년 겨 울에 이미 만들어져 병영에서 병영으로 구전되어진 졸병들의 애창곡이었다.

그러나 ‘병영에서 괴상한 노래가 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국방부 장관이 ‘군기해의’,‘사기저하’를 이유로 전군에 노래 금지령을 내렸다.

또한 문공부 장관에 연락해 사상최초의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 곡은 80년 이후 집회현장에서 <군인>을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어지면서 대표적인 운동가요로 탈바꿈했다.

<늙은 군인의 노래> 삭제여부는 음반사의 상업논리까지 개입되며 동일음반에 무려 6가지 이상의 변형버전을 양산되는 초유의 결과까지 빚어냈다.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히자 늘 도청과 감시가 뒤따랐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던 중 정보부요원들에게 끌려가 빵집에서 추궁을 당하기도 하고, 77년 기독교 방송 ‘우리들’진행도중 사장으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지만 당분간 쉬라’는 말을 들었을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양희은은회고한다.

그 후 방송출연교섭은 고사하고 78년 어렵게 출연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른것을 끝으로 83년까지 노래판을 떠나야만 했다.

8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봉제 수출업체인 아비스상사에서의 직장생활. 암수술과 교통사고로 인한 투병생활 등 고난도 많았다.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외국으로 훌쩍 배낭여행도 떠나 보았지만 늘 노래에 대한 갈증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그의 목을 타게 만들었다.

83년 자신이 작시한 ‘하얀 목련’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애절하게 드러냈던 재기곡.

KBS라디오 ‘양희은과 함께‘의 DJ로 복귀한뒤 84년에야 그녀의 모든 금지곡은 해금 되었다. 87년 재미사업가 조중문씨와 결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93년 귀국 때까지 가끔 고국을 드나들며 서정적 멜로디의 맑은 노래들을 발표하며 노래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양희은은 김민기로부터 방의경, 신중현, 서유석, 김광희, 이주원, 김정호, 하덕규, 이병우 등 끊임없이 새로운 작곡가와 음악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곡은 앞으로 부를 새로운 곡’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로 과거의 히트곡보다 새로운곡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어쩌면 데뷔곡 <아침이슬>을 능가하는 노래를 부르고픈 음악적 부담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데뷔 30년을 맞아서도 매일 4시간 이상 노래연습을 하고 끊임없이 대중들과 새로운 음악적 호흡을 갈망하는 양희은. 1만 번도 넘게 불렀다는 <아침이슬>에게 국민들은 <가장 즐겨듣는 대중가요1위> 라는 사랑으로 화답했다.

그녀의 음반 중 마니아들 사이에 가장 희귀음반으로 대접받는 <양희은-당신의 꿈,유니버샬,KLS56,73년>은 록의 대부 신중현과의 새로운 음악적 만남의 결과물이였다.

‘비브라토 없이 5시간 내내 함께 노래를 하며 하프연주 등을 넣는 등 신중현과의 포크록 작업은 흥미로왔다’고 양희은은 기억한다. ‘작곡에는 뜻이 없고 작사는 계속하고 싶다’는 그가 만약 한 대수, 김민기, 방의경 처럼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가진 싱어송 라이터 였다면 어떤빛깔의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을까?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9/04 21:4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