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여름의 마지막 날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무더웠던 여름이 이제 다 지나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즈음이면 신문은 광고지로 홍수를 이룬다. 노동절 휴가에 특별히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을 위하여, 가을 맞이 상품을 내보임과 동시에, 여름철 상품의 재고를 소진하기 위하여 온갖 종류의 고전적인 마케팅 수법이 다 동원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여름이 다 지나가고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특히 자동차와 같은 내구재인 경우에는 새로운 모델 연도가 대개 9월이나 10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8월의 한여름 불볕 더위처럼 화끈하고 괜찮은 물건들(Hot Deal)이 없나 여기 저기 자동차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동절 휴가 때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새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학용품 및 기타 생활필수품을 준비하는데 보내는 휴가기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노동절 휴가 전후에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불러모아 새 학년의 학급과 담임 선생님들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에게 새학기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적은 목록을 나누어준다.

따라서 주말의 대형 문구점이나 할인점들은 조그만 수첩에 적어놓은 문구류 목록을 뒤지면서 다니는 부모와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대학가에서 흔히 보이는 카페테리아에는 처음 집을 떠나 학교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아들 딸들이 못내 걱정이 되어서, 아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려는 아버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기도 한다.

대학 구내 곳곳에는 '2005 학번'인 (한국식으로 하면 2001학번. 미국에서는 입학년도를 학번으로 잡는 한국과 달리 졸업 학년도로 학번을 따짐)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하는 행사 포스터와 현수막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학교 기숙사나 캠퍼스 주변의 아파트에는 소파나 침구류를 가득 실은 ‘유 홀’(U-Haulㆍ미국의 대표적인 이삿짐 운송 차량 대여회사로, 직접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주로 이 회사의 차량을 많이 사용한다) 트럭들이 여러 대 눈에 띈다.

한편 교내 서점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재로 사용될 책들을 과목별로 쌓아놓고서는 학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데려다 주러 온 부모들이 학교의 로고가 달린 의류나 모자, 가방, 인형 등의 기념품을 고르는 모습도 보인다.

어쩌면 저 흑인 부모들은 고향에 돌아가 학교의 로고가 쓰여진 모자를 쓰고는 자신의 자식이 동부의 명문 대학을 다닌다고 자랑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차분히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휴가를 바닷가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상당 수 있다. 노동절 휴가를 예상해 중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차량용 기름 값이 오르는 곳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번 연휴의 바닷가는 뜻하지 않은 방문객으로 떠들썩했다. 때로는 허리케인 때문에 오랫동안 계획했던 휴가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는 사람이 상어에 물려 죽는 일이 생겼다. 노동절 휴가가 시작된 토요일에 버지니아 비치에서10살 된 어린아이가 자기 허리쯤 되는 깊이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상어에 물려 죽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월요일에는 버지니아 비치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노스 캐롤라이나의 아우터 뱅크 지역에서 20대 연인들이 상어의 공격을 받아, 남자는 죽고 여자는 큰 상처를 입은 채 중태라고 한다.

공간적으로도 비슷한 지역에서, 시간적으로도 가까운 이틀 사이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영화 죠스의 식인 상어에 대한 공포를 떠오르게 하는 커다란 뉴스 거리였다. 버지니아 비치에서 사람이 도발하지 않았는데도 상어가 공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이 같은 상어의 일방적인 공격은 1973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어린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더구나 숨진 어린이의 엄마는 집에 남아 아들이 학교에 입고 갈 청바지를 고르고 있었다고 하니...

박해찬 미 HOVREY S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9/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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