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괴담] 바이러스 괴담, 유흥가 된서리

유흥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혹심한 불황으로 국내 경기가 꽁꽁 얼어 붙은 데다 ‘에이즈 접대부 소문’과 보건 당국의 ‘자궁암 바이러스 창궐 발표’ 등 연이은 외부 악재들로 유흥업소들이 전례 없는 혹한기를 맞고 있다.

◁ 불빛만 휘황찬란한 서울의대표적인 유흥가인 강남.

이로 인해 문을 닫거나 전업하는 업소가 속출하고 있다. 불황과 함께 접대 공화국의 화려한 무대였던 유흥업소들마저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련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 괴담, 텅 빈 강남룸살롱

5일 오후 9시30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C룸살롱 입구. 검은 정장을 한 건장한 청년 10여명이 무전기를 든 채 간간이 차에서 내리는 손님을 맞았다.

이 곳은 강남에서도 가장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급 룸살롱. 무희들이 춤을 추는 홀을 제외하고도 룸 100개에 여자 접대부 280명을 보유하고 있는 초대형 업소다. 주차 관리원과 주방, 웨이터, 마담, 총무 등의 남자 종업원까지 합치면 총 350명이 넘는 인원이 종사하고 있다.

지난해 초 국내 증시가 활황 장세를 구가할 당시 이 업소는 돈을 주고도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인기를 구가 했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실력 있는 마담과 미모의 접대부들이 몰려 들었고 그 영향을 ‘아가씨 물이 좋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장안 최대의 룸살롱으로 자리를 굳혔다. ‘하루 매출이 1억원을 넘어 웬만한 중소기업은 비교도 안 된다’는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던 이 곳이 한달 전 업소명까지 바꾸는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 작업을 했다. 엄청난 불황 때문이었다. 이날도 예전 같으면 빈 자리를 없을 시각인데 썰렁한 느낌 마저 들 정도로 대부분의 룸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 곳이 때 아닌 된서리를 맞게된 것은 올해 4월 ‘이 업소 아가씨 중 4~5명이 에이즈에 걸렸는데 이들이 손님들과 무차별인 성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강남 유흥가에 돌면서부터다.

이 소문이 한 달여간 퍼지면서 이 업소의 매상은 평상시의 20% 이하로 대폭 줄었다. 손님이 급격히 줄자 궁여지책으로 아가씨 전원을 보건소로 데려가 성병 검사를 받게 한 뒤 검사증을 코팅해서 목에 건 채 룸에 들어가도록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였다.

결국 이 ‘룸살롱 에이즈 괴담’은 경찰이 확인에 나선 결과 터무니 없는 거짓 소문으로 판정 하면서 가까스로 진정 됐다.

하지만 강남 전 유흥업소에까지 미친 이 소문의 여파는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업소의 한 간부는 “IMF 직후 잠시 불황기가 있었지만 이런 심각한 상황은 처음 본다”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이후 상호까지 바꾸며 전직원이 새 각오로 나서고 있지만 경기 불황으로 매상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손님은 간데없고 무희만. 평소 같으면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겨우 술자리를 얻지만 요즘은 어디를 가도 텅텅 비었다.

에이즈 보균 종업원이 있다는 헛소문 하나로 서울 강남 유흥가가 꽁꽁 얼어 붙는 것을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 의학계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에이즈는 단순한 신체 접촉을 통해서는 옮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룸살롱 같은 고급 유흥업소를 찾는 손님 중 상당수가 업소 아가씨와 ‘2차’를 가는 비율이 높다는 한 반증이다. 이 업소를 찾았던 대부분의 손님들이 경찰의 조사가 있기 전까지 ‘혹시나’ 하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강남 룸살롱의 한 여종업원은 “처음 이 업계에 들어오는 여자들은 모두 2차는 절대 안가겠다고 맹세하지만 몇 개월 있다 보면 마담이나 손님과의 어쩔 수 없는 관계로 2차를 나가게 된다”며 “만약 끝까지 거부하면 이 업계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궁암 바이러스’까지 겹쳐 폐업 속출

이 여파는 곧바로 유흥업계로 전체로 확산됐다. 강남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등의 고급 업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강북의 중저가 술집들과 사창가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IMF에 버금가는 경기 불황의 여파까지 가세, 상당수 술집들은 아예 문을 닫는 곳까지 속출했다.

이런 시기에 또 한차례 유흥업소에 찬바람을 몰아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국립보건원이 부산 대구 경주 전주 등 4대 도시의 유흥접객업소 접대부를 대상으로 자궁암 유발 바이러스를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대상 지역 500명의 여성 접대부를 검사한 결과 이들 중 47%에서 자궁암을 유발할 수 있는 파필로마 바이러스(HPV)가 발견됐다.

특히 자궁암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HPV를 보유한 여성이 무려 40%에 달했다. HPV 바이러스는 남성의 경우 특별한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자신도 모른 채 다른 이성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

이것은 다시 말해 접대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남편이 전염 사실을 모른 채 아내와 잠자리를 할 경우 아내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립보건원 면역결핍연구실의 이주실 실장에 따르면 HPV는 크기가 50나노미터(㎚)로 에이즈 병원균인 HIV(100㎚)의 절반 정도 밖에 안돼 콘돔을 착용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자주 외도를 한 남성들은 HPV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강남 룸살롱의 한 마담은 “1년전만 해도 밤 8시30분이 넘으면 룸이 모두차 손님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했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룸이 찬 적이 거의 없다. 매출은 평년 같은 기간보다 3분의 1 이상 줄었다”며 “경기 불황과 흉흉한 소문 탓인지 2차를 나가는 손님은 절반 이상이 줄어 아가씨들의 수입은 거의 지난해에 비해 거의 3분의 2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강남 모룸살롱의 상무는 “테헤란밸리가 활황인 때는 자정을 넘어서도 5~6명씩 단체로 몰려오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12시가 지나면 아예 손님을 볼 수가 없다. 오는 손님도 한 테이블당 2~3명에 불과해 매상은 예전의 30%도 안 된다”라며 “주류 전용카드제 실시와 당국의 단속, 그리고 갖은 음해 소문 등으로 유흥업도 이제 좋은 시기는 끝났다”고 털어 놓았다.


음란 접대문화 바뀌는 계기 돼야

중ㆍ저급 유흥업소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미아리 청량리 천호동 같은 속칭 사창가 업소들은 상당수가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

미아리의 경우 2년전 김강자 서장의 일제단속으로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 경기 불황과 자궁암 바이러스 등의 영향으로 거의 고사 직전에 있다. 예전 같으면 자정이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장사진을 이뤘으나 지금은 썰렁함 마저 느낄 정도로 한가하다.

청량리의 한 업주는 “솔직히 요즘 같으면 굳이 윤락업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이 짓을 할 이유가 없다”며 “혹시 공창제를 실시하면 조금이나마 경기가 살아날까 하는 기대를 갖고 간신히 꾸려가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 바이러스 괴담으로 유흥업소마다 비명이지만 이를 계기로 윤락으로 이어지는 접대문화 등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김명원/사진부 기자>

유흥업소 한 관계자는 “이제 유흥업소도 탈세, 폭력, 착취가 난무하는 치외법권 영역으로 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업소들은 정당하게 세금 내고, 정당한 급여를 주는 대신, 정부도 과중한 과세율을 현실화하는 양성화쪽으로 정책 방향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전한 사교의 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접대’로 대변되는 우리의 사교 문화는 음란, 퇴폐, 호화, 향략의 범주를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

최근 유흥업계에 불어 닥친 각종 악재를 타락한 우리의 사교 문화를 바꿀수 있는 호기로 전환시킬 묘안은 정녕 없는 것일까.


룸살롱도 이제는 사이버홍보시대

룸살롱에서 사이버 홍보 전략 마케팅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의 홍보 방법은 거리에서 전단을 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흥업소를 소개하는 전문 인터넷 사이트들이 등장하면서 사이버를 통한 홍보 전략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유흥업소 소개 사이트는 나가요의 엔돌핀닷컴(www.endolphin.com)과 (주)네트로엔의 브이아이피24(www.vip24.com).

이 두 사이트에는 유명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에 대한 갖가지 상세한 정보가 들어 있다. 두 사이트 모두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하는데 술값에서 아가씨의 얼굴, 업소 분위기, 연락처와 위치, 10% 할인 혜택, 마담 소개의 글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다. 현재 VIP 24에는 약 8만명의 회원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하고 있다.

네트로엔의 정해춘 실장은 “최근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룸살롱도 고급과 저급으로 양분되는 현상이빚어지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마케팅 전략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3:37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