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정부] "봉급생활자들 언제까지 봉이어야 하나"

유리지갑의 서러움, 자영업자에 비해 높은 세금부담

“매달 뼈빠지게 일해 받은 월급으로 먹고 살고, 자식 기르고, 부모님 부양하고, 노후도 준비하고, 과도한 세금까지 내야 하면 정말 살맛나지 않습니다.”

◁ 정부는 지난해 자영업자들에게는 예상보다 세금을 거둔 반면 봉급생활자들에겐 훨씬 많은 세금을 징수해 샐러리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김명원/사진부 기자>

소득 100% 파악되고, 주유세 자동차세 면허세 등을 내고 나면 '헉' 허리가 휘다못해 꺾여버린다. 보너스 받는 달에 세금 40만~60만원 내면 정말 눈물이 난다.

자영업자도 지출 영수증만 있으면 비용으로 인정받고, 연예인은 의상비도 비용으로 인정받는다. 직장인도 옷 사입고 매일 교통비쓰는데 기초공제 금액은 100만원밖에 안된다. 네티즌들이 재정경제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원성’의 글들이다. 봉급생활자들을 더이상 ‘봉’으로 삼지말라는 말이다.

재경부와 세무당국을 보는 봉급생활자들의 눈길이 험악하다. 최근들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세금관련 뉴스들이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경부의 국정감사 자료이다.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당초 예상보다 13조원이나 많은 세금을 거두었다. 이것만 보면 환영할만하다. 일견 나라살림도 어려운데 세금을 많이 거두었으니 정부가 많은 노력을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모든 계층이 똑같이 세금을 많이 낸 것이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이 자영업자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많아진 정도가 아니라 자영업자의 경우 예상보다 오히려 적게 세금을 냈다.

당국이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세금을 쉽게 거두어 들이는 방법에 의존했다는 말로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봉급생활자들의 ‘원성’이 비등하는 이유다.


못 미더운 공평과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봉급생활자로부터 징수한 근로소득세는 6조5,188억원으로 예산상의 4조1,791억원보다 2조3,397억원이나 많았다.

반면 자영업자들이 내는 세금이 주를 이루는 종합소득세는 예산이 3조1,225억원이었으나 실제로 거둔 세금은 2조8,500억원으로 8.6%가 덜 걷혔다.

자영업자에 대한 세원 양성화는 지지부진한 반면, 유리지갑 같은 봉급생활자에 대한 세금징수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재경부는 지난해 근로소득공제를 확대하고 연금보험료에 대한 소득공제를 신설하는 방안을 통해 봉급생활자의 세금부담을 1조2,000억원 낮춰줬다고 밝힌 바 있으나 결과는엉뚱하게 나온 것이다.

재경부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봉제 실시와 성과급 보급 확산으로 고소득 임금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가 많이 걷힌 반면, 증시침체와 금리인하로 배당ㆍ이자소득이 줄어 종합소득세가 예상보다 줄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봉급생활자들은 그 같은 해명에 쉬 수긍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유리알 지갑’에 의존할 것이냐는 불만이다. 당국이 보다 더 공평한 과세를 하려는 노력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봉급생활자는 자영업자처럼 국세청에 소득을 절반 정도(조세연구원 분석치)만 적당히 신고할 수도 없고 올해 소득에 대한 세금을 다음해 5월까지 미룰 수도 없다. 전화료 인건비는 물론 웬만한 비용을 공제받지도 못한다’는 등의 불만들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을 사는 제도들을 보자. 우선 국세기본법에서 보장한 '잘못 신고ㆍ납부한 세금을 2년 안에 수정할 기회' (경정청구권)가 봉급생활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최근 '소득세를 원천납부한 근로소득자들은 5월에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정청구를 할 수 없다'고 예규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지난해 말 신설된 대학원 학비 공제처럼 홍보 부족으로 회사도 공제 대상인 줄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나중에 수정신고ㆍ환급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다.

또 매해 1월부터 봉급에서 세금을 떼는 봉급생활자는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자영업자보다 최장 15개월 먼저 세금을 내고 있다. 세금에 대한 이자를 손해보고 있는 것이다. 봉급생활자들은 연말정산을 통해 얼마를 환급받으면 공돈이 생긴것처럼 좋아하지만 실제로 더 낸 세금을 한참 뒤에 돌려 받는 것 뿐이다. 그것도 이자도 없이.

반면 자영업자들의 종합소득세는 자영업자들이 세무서에 신고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업종이나 종업원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세금을 신고하면 직접 나가 조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35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를 모두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체 자영업자 중 지난해 세금을 낸 사람은 40%인 140만명에 불과한 반면 봉급생활자는 54%가 세금을 냈다. 자영업자의 납세자 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세금 납부액도 봉급생활자의 절반도 안 된다.

이 같은 현실은 자영업자의 과표양성화가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당국이 노력을 더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은 봉급생활자가 직장을 다니는 데 쓴 생활비. 주택구입비 등 웬만한 비용을 공제해준다. 미국은 전근 비용이나 출퇴근 비용, 협회 가입비, 교육훈련비 등 직업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공제 대상이다.


허술한 세원관리, 연금재정 악화 초래

봉급생활자들의 화를 돋우는 또다른 행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예를 보자. 국민연금 관리공단이 국세청 과세자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소득이 있는 지역가입자 70만여명을 보험료 징수대상에서 누락시키는 등 지역가입자의 관리를 허술하게 함으로써 국민연금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최근 감사원이 지난해 8월부터 1개월간 국세청의 종합소득 신고자료와 국민연금 가입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세청에 소득신고를 하고도 연금공단에 소득이 없다며 납부예외자 신고를 한 사람이 70만471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뿐만 아니라 국세청에 신고한 것보다 소득을 낮게 신고한 경우가 36만3,602명, 아예 연금가입이나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미신고자도 5만1,161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불성실 소득신고자 중 납부예외자와 미신고자 75만명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징수하더라도 연간 3,600억원(표준소득월액 중간등급인 22등급보험료 4만원을 적용했을 경우)의 추가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국세청 과세자료와 국민연금 소득신고자료의 비교시점과 기준이 달라 누락자가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 악성 체납자가 많더라도 연금보험료가 적게 돌아가므로 연금재정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심 의원에게 제출한 또다른 자료를 보면 위의 해명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 5월말 현재 전체 지역가입 대상자 1019만6468명 중 53%에 해당되는 536만7,768명이 연금가입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

이는 곧 연금재정 고갈에 따른 피해가 원천징수를 당하는 직장가입자에게 돌아갈 우려가 큼을 말한다.

심 의원은 “제도보완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 수급자가 증가하는 2030년부터는 건겅보험 재정파탄의 10배 이상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는 9월3일 당정협의를 거쳐 `2001년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새로운 세원의 발굴에 나서는 대신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기업체의 세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것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이 말은 봉급생활자에게는 정부가 더 많은 놀력을 기울여 ‘봉’의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없이 좋다. 내년에도 봉급생활자들이 올해처럼 분통을 터뜨리는 일이 있다면 이는 노력의 부족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8:37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