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춘향전' 프리마돈나 재일 동포 성악가 전월선씨

그녀앞에서 좌우의 얼음벽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완강한 편견은 우리 이름을 밝히는 당당함 앞에서 오히려 초라해 진다.

재일동포의 눈시울을 붉히는 가곡 ‘고려 산천 내사랑’ 의 주인공 소프라노 전월선(43)씨가 추석을 맞아 서울 무대에 선다. KBS-TV ‘일요스페셜’, 일본 TBS-TV의 시사특집 ‘뉴스 투 스리’의 주인공이 춘향이가 돼 왔다.

“고교시절 북한서 만든 영화 ‘춘향전’을 본 뒤, 언젠가 한번은 꼭 춘향이를 하고 싶었죠.” 오랜세월의 꿈은 지난해 일본 작곡가 다카기(高木)의 오페라에서 춘향역을 맡아, 어설프게나마 풀렸다. 그러나 이번은 진짜 춘향이다. “한국어로 완창하는 오페라는 처음이에요.”

베세토 오페라단이 마련한 ‘춘향전’(현제명 작곡ㆍ이서구 가사). 한국 최초의 오페라(5막 3시간)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프리마돈나 춘향으로 나와, 고국의 한가위를 사로 잡게 됐다. 간절한 소망이 곧 실현될 참이다.

△ "제게는 남도, 북도 아닌 하나의 반도만이 존재합니다." 전월선씨의 단아한 몸에는 불혹의 세월을 버텨낸 옹골참이 있다.<김명원/사진부 기자>

중국 동포 테너로 파리 국제 콩쿨1위 경력의 김영철씨 (중국 음악원 교수)가 맞상대 이도령으로 출연하니, 한ㆍ중ㆍ일 거주 한인의 합작 ‘춘향전’이 둥실 솟아 오르는 셈이다.

지휘자 니시모토 신야, 바리톤 요시다 노부야키(방자) 등 일본인 음악가는 자신이 데려왔다. 국내서도 박성원(이도령), 강화자(월매), 변병철(변사또)등 스타급이 출연, 화답한다.

1998년. 시인 김지하ㆍ판소리꾼 임진택씨 등이 도쿄 이이노홀에서 공연한 마당굿 ‘오적’에서 그녀는 ‘데모가’를 클래시컬하게 불러 2부 무대를 달궜다. ‘타는 목마름으로’, ‘금관의 예수’ 등이 리리코 스핀토의 절창으로 재탄생하던 순간이었다.

“저는 재일동포 1세의 고난을 제눈으로 똑똑히 보고 자랐어요.” 도쿄 조선 중고급학교, 토호(桐朋)대 음대 예술과에서 수학,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섭렵한 리리코스핀토로 각광받아 온 그녀. 예리하게 파고드는 최고음에서는 듣는 이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부모가 일본땅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 부모는 안 해본 장사가 없다. “무슨 곡이든 저는 ‘혼’으로 불러요.” 생활에 쫓기는 와중에도 한국 사람임을 항상 강조한 부모덕이다.

“남이나 북이나 그 어디 살아도 다같이 정다운 형제들 아닌가….” 지난해 KBS-TV의 ‘열린음악회’에서 선보였던 ‘고려 산천’의 가사는 영락없이 그의 마음이다.

일본에 돌아가면 한국 민요 연구를 계속할 작정이다. 특히 식민시대, 광복직후, 전쟁중 우리 조상의 마음을 위로했던 노래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인간으로서 가교가 돼야 한다는 의무감이 항상있었는데. 이번에 꿈을 이뤄 큰 영광입니다.” 또박또박, 한국어로 그는 말했다. 그녀의 명함에는‘田月仙’과 ‘전월선’이 병기돼 있다. 일본인들은 깨알만한 가타 카나로 어설프게 발음할 수 있다.

그녀의 남편은 일본인으로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자신이 한국에 들를 때는 남편에게 종종 안내를 요구할 만큼, 한국에 밝다. 마지막날 출연, 18일 출국한다. 오페라 ‘춘향전’은 13~16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1588-7890.

주간한국부 장병욱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9:50


주간한국부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