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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이장희(下)

[추억의 LP여행] 이장희(下)

'동방의 빛'으로 연 음악적 절정기

이장희는 음악친구 강근식의 군제대와 때를 맞추어 늘 꿈꿔오던 새로운 록그룹을 결성했다. 자신은 작곡과 보컬을, 강근식은 기타와 편곡, 베이스는 정성조악단에서 명성을 날리던 친구 조원익, 드럼은 HE5의 배수현을 영입해 4인조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때는 그룹이름도 없이 음악적 탐구에만 전념했던 시기였지만 이들은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록그룹 <동방의 빛> 1기라 할 수 있다. 리더 강근식과 새로운 음악적 지향점을 찾으며 한축을 담당했던 이장희는 자신이 DJ를 맡고 있는 동아방송 A스튜디어에서 그룹멤버들과 매일같이 밤을 세우며 음악탐험여행을 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는 록그룹이 지향하는 그룹사운드의 음악성보다는 가수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풍토가 더욱 강했다. <동방의 빛>을 이장희 개인세션그룹쯤으로 과소평가 되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초로 신디사이저를 록에 접목하며 환상적사운드 시대를 연 <동방의 빛>은 무심하게 잊혀지기엔 그들이 남긴 음악적 영향력은 너무도 지대했다. 표절시비가 거셌던 공전의 히트곡 <그건너>, <촛불을 켜세요>, <자정이 훨씬 넘었네>등 레퍼토리들은 이때 만들어져 사랑을 받았던 명곡들.

처음 음반사들은 '너무 젊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곡들'이라며 시큰둥했다. 실망한 멤버들은 음반발표가 난항을 겪게되자 몇달동안 키워온 꿈을 접고 해체일보직전까지 갔다. 구세주는 있었다. 이들의 새로운 음악에 매료된 성음제작소 기술부장 나현구였다.

그의 열열한 지원으로 발표된 이장희의 3집 <그건너-성음,SEL20-0015,73년6월20일>음반. 그룹이름이 아닌 이장희 독집으로 세상빛을 본 아쉬움이 있지만 포크록의 명반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대중들은 발표직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 음악을 무시했던 모든 음반사들이 땅을치며 후회했을 만큼 상상을 초월한 호응은 몇달후에야 요동을 쳤다.

<그건너> 등 수록된 9곡 모두는 당시 젊은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3집은 외국원판에 버금가는 뛰어난 음질을 뽐낸다. 국내 최초로 무그신디사이저 음악의 새장을 활짝 열어제친 새롭고 신비로운 사운드로 무장된 이 불후의 명반은 이장희를 명실상부한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올려놓았다.

<동방의 빛>은 74년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영화 <별들의 고향-성음,SEL20-0029,74년4월>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며 정식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74년4월 이화여대 강당 리사이틀은 이장희의 개인 리사이틀 형식으로 치러졌지만 사실은 한달간 서린호텔에서 합숙훈련하며 준비한 <동방의 빛>의 데뷔무대였다.

AFKN의 미국인 팝DJ 보비 직스가 사회를, 송창식, 윤형주 등 음악친구들 외에도 인기절정의 어니언스가 우정출연을 한 이 공연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대성황이었다. 2기멤버는 드럼이 유영수로 교체되고, 올갠 이호준이 가세해 음악적으로 더욱 화려해진 5인조였다.

유명디자이너 앙드레김이 무료협찬한 회색 우주복 무대의상도 장안의 화제거리였을 만큼 팬들은 야단이었다. 이장희는 '동방의 빛 활동이야말로 본격적으로 진정한 음악을 추구했던 시절'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후 톱가수의 인기와 더불어 <그건너>의 주인공이기도 한 첫사랑 서혜석과 꿈같은 결혼으로 이어진 인생의 전성기는 달콤하기만 했다.

호사다마라 할까. 인기절정을 치닫던 이장희는 75년 6월 1차 가요정화운동때 <그건너> <한잔의 추억> <불꺼진 창> 등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족쇄를 차버렸다. <동방의 빛>도 자동해산, 이장희는 반년후 그룹 <영에이스>를 개편하여 5인조 록그룹 <북극성>으로 재기를 꿈꿨다. 그러나 75년 12월3일, 이번엔 윤형주, 이종용 등 인기연예인 80여명과 함께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됐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콧수염도 밀어버리고 대중앞에 사죄까지 했지만 퇴폐온상의 대표주자로 바라보는 차가운 사회적 시선은 견디기 힘들었다. 노래를 좋아했지만 가수를 평생직업으로 생각치 않았던 이장희는 결국 은퇴를 선언하고 서린동에 반도패션 종로지점을 개설, 사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업가로 어느정도 성공적을 거두자 이장희는 음반제작쪽으로 방향을 선회, 가수들의 뒷바라지에 전념하며 음악적 갈증을 해소했다. 그가 기획, 제작한 음반중 <한동안 뜸했었지>로 선풍적인기를 모았던 사랑과 평화의 데뷔음반은 클래식과 록을 접목한 새로운 음악으로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과 찬사를 받았던 명반으로 기억된다.

이장희는 81년1월 보다 큰 야망으로 품고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초기, 한인방송의 방송국장과 더불어 작곡,노래를 계속하며 <동일>이라는 연예회사 설립과 함께 소극장형식의 카페 <로즈가든>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LA에서 한인방송 라디오 코리아 대표로 성공한 이장희. 88년엔 14년만에 자신의 신곡앨범을 들고와 하얏트호텔에서 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노래가락들은 가요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한 콧수염에 중절모를 눌러 쓴 그의 모습과 <그건너>와 <한잔의 추억> 등 명곡들은 아련한 추억의 책장속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입력시간 2001/09/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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