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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911 테러 대 참사]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

[美 911 테러 대 참사]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

사우디 출신 대 부호, 3000여 추종자 거느린 테러리스트 대부

세계무역센터의 화염속에 미국 최고액(500만달러) 현상수배자의 목이 언뜻 언뜻 오버랩되고 있다.

CIA 최대의 긴급 수배자, 아랍 젊은이들의 영웅. 최악의 증오와, 최대의 찬사가 공존하는 사람.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 출신의 이슬람 근본주의자. 스스로를 ‘미국의 적’이라며 외치고 다니던 사람. 억만장자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44)은 생애 최대의 도박을 걸었다.

이슬람 테러 조직 ‘알 카에다’를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 3,000여 골수 추종자를 자신의 사조직처럼 좌자우지하는 사람이다. 엄청난 갑부이자 베일에 싸여있던 그가 이번 일로 미정보 기관의 1차 용의자로 떠오른 데에는 우선 화려한 전력이 말해준다.

△ 오사만 빈 라덴


미국과 철천지 원수지간

국제 사회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1995년 리야드,1996년 다란에 대한 테러가 출발점이었다. 24명의 미국인을 포함, 30여명의 생명을 앗은 사건이었다.

앞서 저질렀던 사건들은 그에 비한다면 모의 연습격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할 만 하다. 1992년 무고한 여행객의 목숨을 앗은 예멘 호텔 습격 사건, 1993년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던 소말리아 미군 습격 사건, 1995년 이디오피아에서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 등이 모두 그가 진두 지휘한것들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의 차량 폭탄 테러와 지난해 예멘항구에 정박중이던 미국함정 콜호에 대한 폭탄 공격에도 그가 지휘 본부에 있었다.

이번 타깃이었던 세계무역센터와 그는 구면. 그가 1993년 2월폭탄 테러를 감행, 3명의 목숨을 앗고 수백명을 부상시켰던 곳이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그와 미국은 바로 얼음과 불이다. 1998년 6월 그는 ABC-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 가장 악한 테러리스트”라며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미국인을 공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미국대통령을 암살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500만 달러의 몸값을 책정, 벼르고 있던 미국의 심사가 어떠했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건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세계 무대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였다. 불과 10대 후반이았던 그는 당시 전투를 수행하며 자금 조달책까지 맡는 등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그가 단련시킨 병력은 체첸 등 구소련의 싸움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세계를 ‘회교도 대 이교도’의 영원한 투쟁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이교도란 서방은 물론, ‘실용 노선’을 택한 아랍 국가까지 포함한다.

자신의 고국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당연히 여기에 든다. 회교 최대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전복한 것도 모자라,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반도 통치를 굳건히 지원하는 미국은 당연히 최대의 악일 수 밖에 없다.

냉전 시대의 갈등 구조가 미소 대결 구도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틈새에서 이른바‘성전(聖戰ㆍjihad)’을 수행해 오던 라덴 등 일단의 극렬 회교도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소대결이 종식된 지금, 라덴을 수장으로 하는 그들은 이렇듯 ‘제 2의 안티 아메리카’를 부르짖고 있다.

세계의 빅 브라더, 미국의 자존심을 들쑤신 ‘역린’의 주인공. 이제 그에게는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깨지느냐’일 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들으면 이빨을 갈겠지만, 그래도 상황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96년 수단에서 내전에 휩싸여 있던 아프간으로 이동한 이후 주변에 정교한 안전망을 구축해왔으며 수백㎞씩 떨어진 여러 거점들을 픽업트럭이나 헬기로 이동하는 수법으로 미 당국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대역'을 내세워 추적을 따돌리기도 한다. 옛 소련도 그를 추적했으나 실패했었다.

빈 라덴은 아프간 최고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귀빈'으로서 아프간의 외딴 사막지역이자 20만 명의 파쉬툰 종족이 살고 있는 칸다하르에 은신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칸다하르는 파키스탄과 연결되는 지역이자, 중동과 중앙아시아와의 주요 교역로다.

사생활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그는 적어도 3명 이상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4세라는 나이도 사실 불확실하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1/09/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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