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911 테러 대 참사] 문명충돌… 3차대전으로 번지나?

감정적 대응으로 반미연대 구축 "합리적 응징" 신중론

미국의 테러대참사가 세계적인 대혼란과 격전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보수강경파와 친유태계 성향의 여론이 이번 참사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결이란 문명의 대결 구도로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 마저 제기되고 있다.

△ 예루살렘 인근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미국의 테러소식이 전해지자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며 기뻐하고 있다.


노스타라다무스 예언 급속 확산

“엄청난 번개(agreat thunder)가 내려치리라. 두 형제(two brothers)는 혼란 속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위대한 지도자(the greatleader)는 굴복하리라. 큰 도시(the big city)가 타오를 때 3차 대전(third great war)이 시작되리라.” 노스트라다무스가 1654년에 했다는 이 예언이 인터넷을 타고 네티즌 사이에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글에 나타난 엄청난 번개는 여객기 충돌로 인한 폭발을, 두 형제는 폭발로 붕괴한 쌍둥이 빌딩이었던 세계무역센터(WTC)로 해석하며 대예언가의 예언이 섬뜩하리만큼 정확하게 적중했다고 흥분하고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위대한 지도자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의미하며 ‘큰 도시가 타오를 때 3차 대전이 시작되리라‘라는 구절은 이번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시적 은유를 사용한 예언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사건에 따라 짜맞춘 듯한 견강부회적 성격이 강하다. 이 예언의 출처 자체도 불분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예언에 솔깃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대참사에 대한 ‘해몽’보다는 오히려 대참사 이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이슬람 지역을 사실상 이번 참사의 근원지로 지목하고,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이번 대참사가 범인들에 대한 ‘응징’을 넘어 이질적 문명에 대한 ‘보복’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던지고 있다.

독일의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은 14일 슬픔과 분노에 빠진 미국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요즘의 각국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보복조치가 불안정을 더욱 자극하거나 무분별한 방식으로, 또는 단기적인 견해에 의거해 실행에 옮겨져서는 안 된다”며 “서방과 이슬람 간의 충돌은 문명충돌을 촉발하는 것이 목적인 극단주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미국이 지금처럼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보복을 하면 문명의 충돌이 촉발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외무장관이 국제무대에서 ‘간’이 크기로 정평이 난 북한까지 테러를 규탄하며 미국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애쓸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를 무릅쓰고 꺼낸 문명의 충돌이란 무엇인가.


"이슬람 대 기독교 갈등이 세계질서 위협"

문명의 충돌이란 말은 사실 책 제목(The Crash ofCivilization)이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새뮤얼 헌팅턴이 1993년 유명한 외교전문지 포인 에페어즈(ForeignAffairs)에 문명의 충돌론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뒤 책으로 펴냈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에 따르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지금, 충돌의 계기는 국가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이다.

헌팅턴은 세계의 문명을 종교를 구심점으로 해 서구기독교문명, 동방정교문명, 이슬람문명, 유교문명, 힌두문명, 불교문명으로 나누고 다시 일본문명, 아프리카문명, 라틴아메리카문명 등을 독자 문명권으로 설정했다.

그는 탈냉전시대의 국제분쟁이 문명의 대립, 그 가운데서도 종교적 갈등이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헌팅턴은 또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서로 뭉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안에서 질서 부여기능을 할 수 있는 핵심국이 두드러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핵심 메시지는 문명간의 대립이 서구기독교문명이 주도하고있는 현 세계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또 속편 격인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에서 이념이 대립이 사라진 탈냉전 시대에는 대립의 축이 문화 혹은 문명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동아시아에 적용, 중국과 일본을 두 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헌팅턴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동아시아의 세력으로 중국을 꼽고, 중국에 대항하는 전선, 즉 미국과 일본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9세기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졌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일본은 형편없는 아시아에서 벗어나 선진국인 구미로 들어간다)론’의 부활을 충고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두 책의 요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 대 이슬람문명 또는 대중화문명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몽골의 세계지배이후 유럽에 팽배했던 황화론(黃禍論), 즉 이교도인 황인종이 백인종을 몰살시킬 수 있으니 기독교인이여 단결하자라는 논리의 현대적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충돌론에는 미국적 오만과 비약이 많이 개입되어 있지만 국제정세의 실상을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있고, 많은 서구인들이 동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대전 혹은 제3차 세계대전의 예언서가 될 수도 있다. 헌팅턴의 이 신종 예언은 적중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배제할 수는 없다. 적어도 1989년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걸프전 당시보다는 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걸프전은 주적이 국제적으로도 분명했고, 이라크는 당시 이슬람 진영에서도‘왕따’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장의 확산을 억제할 수 있었다.


반 이슬람분위기 고조

이에 비해 이번 미국의 선전포고는 ‘얼굴없는 전쟁’이란 말처럼 싸울 대상이 애매하다. 빈 라덴과 라덴을 비호하고 있다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을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주적으로 지목된 라덴은 소수가 암약하는 테러리스트여서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의 전쟁상대로는 격이 맞지 않는다.

또 그가 테러대참사를 자행했을 것이라는 심증 단계에서 이미 범인으로 지목하고 개전을 준비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당시 미국 정부는 이슬람계 소행으로 예단했다가 진범이 멕베이란 민병대 소속의 미국 백인으로 밝혀져 망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의 공격이 응징이 아니라 ‘미운 놈(반미 이슬람세력)을 차제에 패대기라도 치자’는 식의 즉흥적인 보복으로 비쳐질 경우 반미 연대가 이슬람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대전화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아프가니스탄 공격의 통로인 파키스탄의 경우 미국의 ‘정명가도(征明假道)’요청을 국제연합(UN)의 합의라는 단서 하에 허락하기는 했지만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은 같은 이슬람 수니파다.

또한 미국의 보수파와 이스라엘 등 대 이슬람 강경파들이 전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테러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는 테러리즘에 맞선 3차 세계대전의 전조일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고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의 이슬람에 대한 보복전을 ‘충동’하고 있다.

미국 국내에서도 중동인에 대한 구타와 협박이 잇따르는 등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자원입대와 성조기 판매가 급증하는 등 애국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이슬람교도 위원회의 이브라힘 후퍼는 "미국 내에서 유사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아랍계 사람들이 공격받는 일은 흔하지만 이번에는 끔찍할 정도로 심하다"고 말했다.


"테러 악순환" 강경대응 자제 목소리도

그러나 단기적으로 미국의 보복과 이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의 반발은 예상되지만‘문명 대 문명’의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합리적인 응징을 주장하는 신중론도 미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강경대응은 ‘문명간의 전쟁’보다는 테러조직들의 반발로 인한 테러의 악순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고,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를 만끽하고 있는 마당에 국지전이나 경제제재 같은 효과적인 수단을 놔두고 세계대전을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구소련을 사실상 패퇴시켰던 아프가니스탄은 험악한 지형에다 비정규 전투경험이 많은 이슬람 전사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결코 미국이 만만하게 상대할 수 없다는 나라다.

정규군이 지상에 투입될 경우 장기전으로 번질 수 있다. 이는 미국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전쟁을 대규모 전쟁보다는 라덴 체포작전과 같은 특수작전을 동반한 공중폭격전으로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9/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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