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남발, 신용불량자 공화국 만든다

카드빚 폭발적 증가, 개인파산자 속출

이혼후 20년만에 함께 살게된 친딸의 명의를 도용,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8,000만원을 탕진한 51세의 어머니가 딸(28)의 고발로 구속기소돼 최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카드 세 장은 기본이 된 세상. 신용카드 사용이 무분별하게 늘면서 카드빛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김명원/사진부 기자>

20년전 세딸을 두고 이혼한 어머니는 1999년 엄마노릇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며 딸들을 설득, 다시 한 집에서 살게 됐지만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결국 딸들과의 동거가 깨졌다.

잠시 함께 사는 동안 어머니가 큰딸의 명의를 도용, 5개의 신용카드를 만들어 마구 쓰는 바람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카드빚을 진 딸은 신용불량자로 몰릴 위기에 처하자 어머니를 수사기관에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고발했다.

모녀의 얘기를 접하며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었듯이 카드빚을 탕감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기우일 것이다. 왜 그 같은 걱정을 하게 되었냐는 우리의 신용카드 현실이 너무 무분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드 사용이나 발급이 늘어나면 대한민국은 신용불량자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들의 신용카드 사용이 작년의 2배이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카드사는 떼돈을 벌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91.8%, 작년 하반기보다는 149.8% 늘어났다니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고전을 하면 당연히 소속원들의 주머니 사정도 나빠진다. 그런데도 카드 사용이 늘어났다면 이는 카드로 빚을 내 쓰는 것이다.


카드발급→사용액 증가→연체 악순환

6월말 현재 발급된 신용카드도 작년보다 43% 늘어난 6,837만장으로 15세이상 경제활동인구(2,249명) 1명당 평균 3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19개 카드사의 상반기중 카드 사용액은 199조2, 79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3.5%, 작년 하반기보다 38.5나 늘었다.

문제는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 대출기능이 129조7,567억원으로 카드사용액의 65.1%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빚이다. 주머니 사정은 분명 나빠지고 있는데 빚이 늘어나면 결과는 뻔하다. 1인당 카드를 평균 세장씩이나 갖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빚을 쉽게 얻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이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 같은 우려를 보여주는 수치가 바로 카드사의 카드자산 연체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업카드사의 연체비율은 5.3%로 작년보다 0.1% 포인트 높아졌다. 은행카드의 경우 연체비율이 전업카드사보다 높아 8.7%에 이르고 있다.

겨우 그것 가지고 뭘 걱정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작은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폭발적인 카드발급 현황과 사용액 증가는 경제가 빨리 호전되지 않는 한 폭발적인 연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6월말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개인이 90만명으로 3월말 72만명에 비해 3개월새 18만명이나 늘어났다는 금융감독원의 자료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신용카드와 관련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경우는 법인이나 일반사업자를 제외한 순수 개인 신용불량자 240만명의 37.6%인 9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3월말의 72만명에 비해 불과 3개월새 18만명이나 늘어난 것이며 전체 신용불량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포인트 높아졌다.

이중 순수 신용카드거래만으로 연체된 경우는 40만명으로 3개월전에 비해 27.5%인 9만명이 늘어났으며 신용카드와 함께 기타 금융거래가 동시에 연체돼 신용불량자로 등재된 경우도 3월말보다 24.1%인 9만명이 증가한 50만명으로 집계됐다.

▷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앞 뒤 안재는 카드 빛 증가로 개인 파산자가 속출하는 등 신용카드로 인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김명원/사진부 기자>

카드사용이 급증한 것은 카드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한도 확대,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 도입 등 정부의 카드사용 권장정책과 카드사의 공격적 마케팅에서 비롯됐다. 신용사회에서 신용카드의 사용확대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미 지난 5월말까지 150여만명에 대한 신용사면조치가 있었는데도 불구 8월 현재 275만명이 신용불량자로 경제생활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계 빚은 260조원에 달한다.

최근 현대캐피탈이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면서 카드업계에 새로 뛰어드는 등 앞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규진출이 잇따를 전망이어서 경쟁 가열에 따른 카드발급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에는 저금리기조가 이어지면서 사채업자들이 신용카드 연체대납을 통해 고금리를 챙기고 있어 신용불량자 양산을 부추기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대납’은 고객이 연체한 카드대금을 대신 갚아주고 카드거래정지에서 풀어준뒤 다시 현금서비스를 받게해 고리의 이자를 뜯는 일종의 ‘현금깡’으로 전단배포나 광고 등을 통해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 사채업자들은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장소를 옮기는 금융시장의 ‘떴다방’으로 통한다.


손배배상 예외규정 악용, 소비자 일방적 피해

정부는 최근 잇따라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금감원은 신용카드사들에 대해 무분별한 카드발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이와함께 학생 노인 등 부적격자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준 뒤 높은 수수료를 착복하는 카드발급 대행업체들도 조사중이다. 서울에만 수백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업체는 허위 소득확인, 재직증명서 등을 만들어 하루만에 카드를 발급해준 뒤 사용한도액의 15~35%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가능한 것은 회원 늘리기에 급급한 카드사들이 전화로만 근로소득자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카드사들의 그 같은 관행을 악용, 미리 직원을 대기시켜 전화를 받도록 해 카드발급을 돕고 있다. 바로 신용불량자 양산의 현장이다.

또 금융감독위원회는 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회원모집 경쟁에 나서면서 분실, 도난, 위ㆍ변조에 대한 책임을 상당부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올해안에 고쳐 소비자보호 관련 조항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분실신고가 늦거나 카드 뒷면에 서명을 하지 않고 비밀 번호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책임을 지거나 천재지변에 대해서는 카드사의 책임이 없다는 조항 등의 내용이 바뀔 전망이다.

금감위는 신고시점이 언제든간에 도난, 분실, 위ㆍ변조로 인한 피해에서 소비자는 일정액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피해에 대해 고객은 50달러만 책임지는 ‘50달러룰’이 적용되고 있다.

또 고객의 고의적인 손실 유발 행위에 대해서는 카드사가 책임지지 않지만 고의성이나 중과실성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은 카드사가 지도록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그간 방만한 영업에도 불구하고 각종 분쟁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소비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가 비일비재했다며 “이 같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되면 카드사들의 카드발급이 한결 신중해질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대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의 확고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비판 여론이 있으면 대책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가 흐지부지하거나, 관련 업계의 로비에 알맹이가 빠져버려 문제를 악화시킨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9/19 17:2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