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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자유기고가 정영주의 '자가 인터뷰'

[인간탐구] 자유기고가 정영주의 '자가 인터뷰'

'그들만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독자들에겐 참 외람된 짓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이번 인터뷰는 나와 나 자신과의 인터뷰다. 사실 이것은 본지의 ‘인간탐구’가 막을 내리는 날이 오면 그 마지막 기사로 내려고 준비했던 아이디어였다.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묻고 싶을지 모른다. ‘자신도 그렇듯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까지 당신도 이름을 알리고 싶어 안달하는 류인가?’ 아니면 ‘취재할 인물이 동이 났나?’ 취재할 인물이 없어 이번 인터뷰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나머지 질문은 본문으로 답을 대신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될만큼 이 글이 충실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것뿐이다. 더불어 불안한것은, 부담감이 크면 클수록 결과는 반대로 튀어나가는 징크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물을 엎질러 버렸다.


‘성공한 사람’이 아닌 ‘자기방식을 가진 사람들’


▲이건 독자들에 대한 테러아닌가? 다중인격자도 아니면서 자신과의 인터뷰라니. 본심이 뭔가?

△ 그간 인간탐구를 취재해오면서 지면밖에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다. 어떤 것은 지면의 한계상 부득이 생략해야 했던 것들이고, 어떤 것은 설령지면이 남아돌더라도 그 안에 담기 어려운 뒷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취재 이면의 허상에 대한 것들이다.


▲ 그간 어떤 사람들을 얼마나 만났나?

△ ‘인간탐구’란 제하로 첫 기사가 나간 1999년 1월부터 오늘까지약 130명을 취재했다.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다.


▲ 모두 잘 나가는 사람들?

△ 결과적으론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원래 이 지면은 ‘성공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자기세계와 자기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가능한 한 특정한 기준에 맞춰 인물을 고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래야 성공한다'가 아니라 ‘그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점잖은 소감은 생략하자. 솔직히 이 일이 재미있었나?

△ 보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항상 그런건 아니었지만. 한편엔 이런 후유증도 있다. 주초엔 섭외하는 꿈을 꾸고, 주말쯤 되면 기사를 쓰거나 기사를 막지못해 한바탕 난리를 치는 ‘악몽’을 꾼다. 어떨땐 개인적으로 맞선을 보러 나간 자리에서도 정신을 차리고보니 데이트가 아니라 ‘인터뷰’를 하고 있더라.


▲ 개인적인 얘기가 많이 실렸는데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놓던가? 가장 취재가 힘들었던 사람은 누구였나?

△ 첫회 현몽스님때부터 애를 먹었다. 기사를 읽은 독자는 알겠지만, 소설 만다라의 실존 모델이자 행적이 남다른 ‘땡초스님’이다.

그런데 정작 듣고 싶은 얘기엔 ‘하도 길어 다 못담는다’며 말도 막은 채 인도얘기만 잔뜩 꺼내놓았다. 낮부터 저녁까지 계속 눌러앉은 것도, 피곤하지만 인터뷰 후 술자리를 마다않은 것도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꼭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님은 진짜 ‘강적’이었다! 웬만큼 기분좋게 취한 뒤에도 예의 질문만 던지면 조금 얘기하는듯 하다말고 금새 말꼬리를 돌려버리곤 했다. 저녁 늦게서야 더이상 대답할 분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자리를 파했다.

그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춥던지. 평촌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스님이 은근히 얄미웠다.할수없이 다음날 가까운 측근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뒤 기사를 내보냈는데 나중에 글을 본 스님이 전화를 걸어서는 ‘어떻게 알았냐’며 한참동안 껄껄 웃으셨다.

남산 도깨비 김재연씨를 취재할 땐 때아닌 야단도 맞았다. 작은 오해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는데 나는 나대로 예상했던 취재방향과 현장이 달라 취재를 취소할 것인가 말것인가 절박하게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대답도 워낙 단답형이라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인사후 얼마간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으론 ‘양해를 구하고 돌아가 가능한한 빨리 다른 인물을 찾아 인터뷰 한다면 마감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없을까’ 정신없이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내게 꾸중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애꿎은 그집 파출부 아주머니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얼떨떨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상황에 이르자 비로소 실마리가 잡혔다.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지 촛점이 보였다. 야단을 맞고도 속으로 기분이 좋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밤늦은 시각까지 머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겉으론 대단히 ‘과격’한분이지만, 알고보니 정도 참 많은 분이었다. 거의 하루종일을 소비한 인터뷰였지만 성과는 있었다. 그외에도 애를 먹인 취재원들? 한 두 분이 아니다.


▲ 고생은 했어도 다 결말이 좋지 않았나?

△ 그것도 아니다.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인터뷰’도 있었다. 요즘도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공직에 계신 한 분은 아직도 씁쓸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취재를 간 건 한창 그가 여론의 영웅으로 떠오른 시점이었는데, 훌륭한 대외적 이미지와는 달리 ‘이렇게 제대로 준비도 안 된 분이 왜 취재요청때 무조건 인터뷰를 하겠다고 응했을까’ 답답했다.

상당히 불성실했다. 일종의 소영웅주의에 빠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했다. 질문부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질문만 골라서 대답할 뿐, ‘무적전사’의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거의 무반응이었다.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혁혁한 공적에 관계된 것들 뿐이었다. 그날만큼 인터뷰가 지루하고 힘들었던 적이 없다. 당사자에게도 그랬을것이다.

한편으론 취재당일 여러 언론사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더 매력적인’ TV 촬영팀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자 예정된 취재 순서도 무시한 채 그들부터 맞아들였다가 타 취재진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그날 인터뷰한 녹음테이프를 녹취할땐 고스란히 같은 불쾌감을 되풀이해야했다. 도도한 ‘영웅’의 성의없는 대답, 더구나 저녁식사와 함께 인터뷰가 진행된 터라 대답한 단어 수보다 더 많고 요란했던 ‘쩝쩝’ 소리, 철제 배식판에 숟가락 부딛치는 소리 등, 그날 이후 나는 가능한 한 녹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 유명의사와의 인터뷰도 비슷했다. 시간개념이 없는 것은 물론, 뒤늦게서야 인터뷰를 시작하고도 한참동안 사소한 일로 간호사들을 야단치느라 손님의 마음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었다. 분위기도 살벌했다.

도저히 그 상황에서 취재를 할 수 없어 ‘차라리 다른 때에 뵙겠다’며 철수하려하자 그제서야 ‘지금 시작하자’며 붙들었다.

대화중엔 유익한 내용도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학벌이나 수입, 능력 등 지나친 우월감으로 듣기에 따라 거부감을 사기 쉬운 대목이 많았다. 약속시간에서 40분이나 대책없이 기다리게 했던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터뷰중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한번에 두세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시간활용법에선 누구보다 뛰어나다’. 죄송한 얘기지만, 그렇게 여러가지를 하시니 한번에 한가지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열정이 있는 사람 인터뷰땐 나도 신이 나


▲ 반대로, 다시 해보고 싶은, 그런 기분좋은 인터뷰는 없었는가?

△ 물론 대부분의 경우 좋았다. 행위예술가 심철종씨를 취재할 때 특히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 가슴속에 뭔가 폭발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좋다.

꿈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에겐 번뜩이는 힘 같은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즐거우면 대체로 글도 수월하게 풀렸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받아적으면서 혼자 키득키득 웃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옥수수박사로 알려진 경북대 김순권 교수의 경우도 기억에 남는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만큼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안팎이 다름없이 참 소탈하고 가식없는 분이란 느낌을 받았다.

‘언론스타’는 자의든 타의든 대체로 조금씩 거품이 있기 마련인데, 어쩌면 한결같이 천상 농부처럼 흙냄새만 풀풀 풍기시는지 존경스러웠다.


▲ 어쨌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따로 있던가?

△ 고집, 성실, 끈질김, 그런 공통점은 워낙 일반적이고 한편으론 이런 것들이 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위로해주는 자기가 하나더 있다.

대기업 임원에서 호텔 웨이터가 된 서상록씨의 경우 항상 거울앞에 서서 자신에게 이야기를 던지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는 얘기,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생이 된 서진규씨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는 얘기 등이 가슴에 와닿았다.

‘겸손’을 말하는 분도 많았다. 단지 인간적인 도리라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다. 너무 앞서가면 주위에서 ‘태클’도 많은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먼저 스스로 낮추면 적이 없다는 얘기다.

고졸출신 생산직 사원에서 임원까지 올라간 금호그룹 윤생진 상무나 서진규씨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다.

물론 실력은 기본으로 갖춘 다음의 이야기다. 사실상 일정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들이다. 김송자 현 노동부 차관의 경우도 여성으로서 국내 최초로 1급 공무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데는 평소 동료, 후배들 앞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등 주위의 신망을 쌓아둔 배경이있다.


▲ 그만큼 성공의 비결을 잘 안다면 왜 당신은 '성공'하지 못하는가?

△... 그렇다고 내가 실패한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마다 나름의 속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을 자극하는 질문은 삼가해주기 바란다.


삶의 힘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 당신 신원도 밝혀라.

△ 35세ㆍ미혼. 방송 구성작가 10년, 한때 신문사 기자와 프로덕션 PD로 일한 경력이 있다. 사실 이 인간탐구 연재를 처음 맡았을 땐 내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으로 한창 힘들 때였다.

창밖으로 다니는 자동차들을 볼때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을까’를 묻곤 했다. 사실상 취재의 절반 이상은 나의 삶에도 많은 해답을 주었다.

사람들 안에, 결국엔 자기 안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앞서 고민한 사람들, 앞서 문제를 풀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삶의 힘 같은 것을 독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생각만큼 제대로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 그간 당신이 취재한 사람들중엔 당신이 꽤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인 줄 아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다 알고있다. 이 참에 털어놓기 바란다.

△ 욕심이 많을수록 실수가 더 잘 나오는 것 같다. 반성한다. 저지른 사고는 대부분 ‘필적고의’, 가장 큰 사고는 말하자면 ‘과실치사’쯤 된다.

전 국회의원 이철용씨의 기사에서 본의아니게 생존해 계신 어머니를 고인으로 만들었다. 이 기회에 정정하지만, 틀림없이 생존해 계신 분이다.

앞뒤 상황을 다 말하려면 복잡하지만 어쨌든 취재중 커뮤니케이션의 오차로 빚어진 일이다. 뒤늦게 이철용씨께서 알려주셔서 알았는데, 죄송해 몸 둘 바를 모르는 내게 오히려 '그러면 더 오래 산다더라'며 위로해 더욱더 나를 죄송스럽게 만들었다.

경위야 어쨌든,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시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그외에도 꼬박 날밤을 새며 기사를 쓴 뒤 순간적인 착각으로 이름 앞뒤자를 바꿔 쓴 한국과학사물연구소 윤명진 소장, 춘천고가 아닌 원통고에서 재직중인 홍순래씨 등께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독자들에게도 죄송하다. 이 치부를 밝힐까 말까 고민했는데, 자수하고 광명을 찾는 편을 택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 그간 취재했던 분들 뒷소식은 듣고 있는가?

△ 안타까운 소식이 몇몇 있었다. 독도 어머니로 소개됐던 대구 박명희씨는 취재후 몇달뒤 불의의 교통사고로, 도깨비 박사로 불리던 민속학자 조자용씨는 채 기사가 인쇄되기도 전인 인터뷰 며칠후 심근경색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

취재때도 ‘심장이 좋지 않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본의 아니게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된 그 기사는 부음과 함께 실렸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출소후 약 1년뒤 취재했던 조세형씨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수형생활중이다.

사실상 취재때도 개인적으론 웬지모를 불안감이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일본에서의 절도행각으로 TV뉴스에 비친 그를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반면에 좋은 소식도 많았다.1999년 소개됐던 풀피리연주가 박찬범씨는 작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예의 멋드러진 풀피리 소리를 도처에서 선보이고 있다.

탈북자 출신 보험설계사 이애란씨는 진작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음식점을 개업했고, 야구선수 출신 난초재배전문가 한희민씨는 얼마전 충북 영동에서 카페를 열었다. 워낙 인원이 많아 다 싣지 못하겠다.


1년 뒤 다시 한번 ‘나홀로 인터뷰’에 도전?

이것으로 이 미흡한 1인2역 인터뷰는 끝낸다. 이만큼 협조적인 취재원과 완벽하게 입력된 자료를 갖추고도 이 정도밖에 출력이 안되다니, 찜찜하다. 자성의 의미로, 적어도 1년 이내에 이같은 인터뷰는 다시 시도하지 않겠다.

독자들이 나무라기전에 자진 반성한다. 그동안 취재에 응해주신 분들과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렇다고 다음주에 인간탐구가 쉰다는 소리는 아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김명원 사진부 기자 kmx@hk.co.kr

입력시간 2001/09/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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