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다시 타오르는 이중섭의 불꽃인생 外

소, 게, 목련, 호박꽃, 물고기….거기엔 언제나 불알을 딸랑이며 노는 어린이가, 가난한 부부가 체온을 나누고 있다. 삶의 밑바닥에서, 장난스런 붓놀림으로 “그래도 살아 있어 세상은 좋은 것”이라고 일깨워 주던 우리의 화가 이중섭.

그의 삶은 보통 사람이 예술가에 대해 품는 생각을 에누리 없이 충족시킨다. 그것을 환상이라 해도 좋고, 기대라 해도 좋다. 극도의 가난, 굶어 죽을 지언정 작품에 매달리는 불꽃 같은 열정,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순수 또는 광기. 그것은 어떻게 삶의 시간과 어우러지고 마찰했는가. 마침내 죽음은 어떤 식으로 찾아드는가.

그것이 불꽃이라면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섬광이다. 바로, 이중섭은 불꽃이었다. 이중섭이 살아 온다. 서울시극단의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이 한국전쟁 중 40살로 생을 접기까지의 질곡과 주변인이 엮어 보이는 한편의 풍경화이다.

이중섭의 대표작 앞에서 한국무용가 국수호씨의 ‘환상무’가 펼쳐지면, 소리꾼 박윤초씨가 장순님의 시 ‘꿈이로소이다’를 판소리로 토해낸다.독일서 공부한 무대 디자이너 오윤균씨가 큼직큼직한 설치 미술로 공간을 메꾸면, 음향전문가 김벌레씨는 토속색 물씬 풍기는 음향으로 답한다. 이 연극은 우선 시청각의 대가들이 빚어 올리는 이미지의 향연이 인상적이다.

식민시절-한국전쟁-분단초기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정국 아래, 상상을 초월하는 가난에 포위된 삶과 예술의 운명이 펼쳐진다.

이 극은 말장난 아니면 뮤지컬에 정신 팔기 일쑤인 최근 연극계에 대한 유쾌한 일갈이다. ‘관객모독’, ‘햄릿 시리즈’ 등으로 언제나 기성 연극게의 허를 찔러 왔던 기국서씨의 연출력이 강신구 이은미 박봉서 등 서울시극단의 탄탄한 인력과 만난 덕택이다.

원로 희곡 작가 김의경씨가 인생과 예술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커다란 위로로 다가올 작품이다. 하루 한끼로 힘든 세월을 버탱겨내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이 기름진 시대 사람은 알 수 있을까.

‘세일즈맨의 죽음’에서의 비프, ‘벚꽃 동산’의 료빠힌, ‘민중의 적’에서 벌링 등 대작에서 개성적 연기를 보여준 배우 강신구가 이중섭으로 분, 기대를 받고 있다. 마사코역의 이은미는 당찬 연기로 극단의 기대를 모으는 신예.

이 극은 또 시도때도 없이 흐렸다 개었다 하는 한일 문제를 되짚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식민 치하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일본인 특유의 성정, 일본인 아내와의 사랑과 이별 등의 소재는 한일 관계에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길떠나는 가족’이란 1954년 이중섭이 남긴 걸작의 제목이다.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며, 팍팍한 현실 너머 어딘가에는 있을 평화와 행복의 나라로 찾아 가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제 8회 베세토 연극제에 참가, 지난 8월 25일부터 도야마현 도가 산방 등 일본 극장에서 상연, 호평을 받고 있다. 베이징, 서울, 도쿄의 영문 표기 앞글자를 따 이름 붙인 이 연극제는 세 나라의 심성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대회의 한국 작품으로는 ‘길떠나는…’ 밖에도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다(임영웅 연출). 21~10월 7일 세종문화회관소극장. 화~목 오후 7시 30분, 금~토 오후 3시 7시 30분, 일 오후 3시, 월쉼.(02)399-1647~8


[전시]



ㆍ 진도 10년 '순수의 세계' 엿보기

사진작가 허용무씨가 진도행 10년을 정리했다. 진도의 일상 풍경에 간직된 순수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담은 사진들이다.

‘서울경제’, ‘조선일보’, ‘샘이 깊은 물’ 등 언론 매체의 민완사진 기자 출신이 본 진도의 오늘이 투명하게 담겨져 있다. 일상 풍경속에서 기하학적 조형미를 읽어내는 렌즈의 시선은 따스하다.

문필가 김훈씨는 “허씨의 사진은 진도의원형을 삶의 총체성이라는 렌즈로 읽어낸다”며 “사람의 모순을 부당하게 강조하거나 생략하지 않는 그의 사진은 곧 다큐멘터리 정신”이라고 평한다.

김씨는 한국의 숨결 시리즈(이레刊) 첫째권으로 ‘원형의 섬 진도’ 간행 작업을 허씨와 함께 했다. 전통과 단절되고 원형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이 시대 삶속에 도사린 원형 회귀의 욕망들을 렌즈에 포착했다. 21~10월 7일 금호미술관.(02)720-5114


[콘서트]



ㆍ 협 스트링 앙상블 '4계' 전곡연주

협 스트링 앙상블은 제 15회 정기연주회의 하일라이트를 비발디 ‘4계’ 전곡 연주로 장식한다(지휘 이종협, 바이올린 최민재).

이밖에 마르티누의 ‘세레나데’, 투리나의 ‘투우사의 기도’, 왈록의 ‘카피올’ 등 평소 듣기 힘들었던 소품도 함께 한다. 2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83-6295.


ㆍ 경기도립 팝오케스트라 연주회

경기도립 팝스오케스트라는 재즈, 팝, 뮤지컬 하일라이트를 엮은 ‘빅밴드와 뮤지컬의 밤’을 공연한다. 전반부에는 ‘Fly Me To The Moon’, ‘Hey Jude’ 등 팝과 재즈를, 2부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명곡 모음이다. 19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031)230-3242~7


[연극]



ㆍ 극단 김금지 창단기념 공연

극단 김금지가 창단을 기념, ‘다섯 하늘과 네 구름 동안의 이별’을 공연한다. 숙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죽어야 했던 단종과 그를 사랑했던 궁녀가 환생해 벌이는 사랑 이야기다. 못다 이룬 사랑을540년 뒤에 이뤄보려 하지만 육신을 얻지 못한 영혼들은 또 다른 혼란을 겪어야만 한다.

이 공연에는 사람이 들어가 조종하는 인형 마리오네트의 등장이 색다른 맛. 배우의 심리나 전생 등을 춤으로 표현, 못 보던 무대를 제공한다. 김금지 작, 송윤석 연출, 이남희 김국진 김상희 등 출연.19~10월 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762-0810


[영화]



ㆍ 캠퍼스 레전드 2

공포 영화 ‘캠퍼스 레전드2’가 초가을을 마비시킨다. 공포영화상 히치콕상을 따내려는 영화과 졸업반의 이야기다. 영화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갈등을 벌이는 학생들, 4년째 졸업을 못 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 애쓰는 학생의 치열한 경쟁속에 전개되는 이야기다.

그들이 찍고 있는 공포 영화와 똑 같은 일이 현실화되면서 촬영장은 서서히 살육장으 변해간다. ‘케이블 가이’의 감독 존 오트만이 메가폰을 잡고, 제니퍼 모리슨 등 신인들이 전편을 이끌어 간다. 15일개봉.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9/25 19:42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