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으로 돌아노 바람의 아들 이종범

침체된 프로야구에 새바람 일으키며 화려한 복귀

대중들은 영웅을 기다린다. 일상에서 패배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보상해 줄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천하무적의 영웅을.

통산타율 3할3푼3리, 한국 시리즈 3회 제패, 시즌 최다 안타(196개ㆍ94년), 시즌 최다 도루(84개ㆍ94년), 경기최다 도루(6개ㆍ93년9월26일), 연속도루성공(29개ㆍ97년)….

한국 프로야구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각종 기록을 갖고 있는 이종범(31ㆍ기아 타이거즈)은 바로 그런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다. 93~97년,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을 보고 어떤 팬은 그를 ‘야구 만화에 나오는 모든 걸 다하는 주인공’ 같다고도 했고 어떤 전문가는 그가 팀 전력의 4분의 1 을 차지한다고도 단언했다. 그는 ‘야구천재’였다.

◁ 역시 이종범이었다. 4년만에 국내로 복귀한 이종범은 야구계의 기우를 날려버리는 푹풍이 되어 2라운드를 취저으며 침체된 국내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이호영/사진부 기자>


지친 '타이거즈' 일으켜 세운 전국구 스타

올 7월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3년 반을 방황한 이종범이 지친 표정으로 현해탄을 다시 건너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그가 몸담았던 해태는 5위(98년), 리그 최하위(99년,2000년)를 거치며 ‘동네북’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가 활약하던 97년까지 경기마다 평균 6,000~7,000명이 야구장을 찾던 광주 관중들은 발길을 뚝 끊어 2000년에는 해태의 경기당 평균 관중이 1,049명으로 불명예스럽게도 8개 구단 가운데 최소였다.

그러나 해태가 역사뒤로 사라지고 옷을 갈아입은 기아에 이종범이 복귀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내 태풍으로 변했다. 8월2일 이종범의 국내 복귀전이 열린 인천구장은 홈팀 SK의 창단 이후 두번째 만원사례를 이뤘고, 홈 팬들에게 복귀 신고를 한 8월7일의 광주 구장은 2년 10개월만에 매진이 됐다.

바람 몰이는 지방에만 그치지 않았다. LG와 기아가 일합(一合)을 겨룬 8월 11,12일의 잠실구장은 4년 1개월만에 2경기 매진이란 기록을 세우며 이종범이‘전국구 스타’임을 확실히 입증시켜 주었다. 이종범이 몰고온 바람의 파괴력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

지난해 6만9,000여명의 관중이 찾았던 광주구장은 25만6,000명(9월20일 현재)이 넘는 관중이 찾아 무려 277%의 관중 증가율을 보였다.

신임 김성한 감독을 맞이한 기아가 전반기 내내 꾸준히 4위를 유지한 탓도 있지만 이종범 복귀 전후의 관중 수의 증감 추이는 팬들이 얼마나 슈퍼스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나를 실감케 해준다.

이종범의 복귀 전인 해태시절 7월말까지 올시즌 3,405명이던 광주구장의 평균 관중수가 이종범 복귀하자 4,832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종범 효과’는 프로야구 전체 관중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다. 20일 현재 총관중 286만7,291명이 입장해 지난해에 비해 17%나 증가했고 올 시즌 목표인 320만명 돌파도 무난해 보인다.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한 4강 혈투, 이승엽(삼성)과 호세(롯데)의 홈런 경쟁 등 시즌 후반기에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굴 흥행 요소들이 여러가지 있긴 했지만그 중심에 이종범이 서있다. 호세가 폭행사건으로 출장금지된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화려한 플레이, 변함없는 스타성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은 역시 스타였다. 전성기 때의 60~70% 정도의 컨디션이라고 불안해 했던 이종범이지만 복귀전인 8월2일 SK전의 안타를 시작으로 8월26일까지1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 이종범은 기아 타이거즈의 막판 4강 다툼에서 놀라운 파이팅을 보이며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이호영/사진부 기자>

복귀 다섯 경기만인 8월 8일에는 홈런포를, 16일에는 도루를 선보였다. 21일 현재 그의 성적은 3할4푼3리(166타수 57안타), 홈런 11개, 도루 6개로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 체력 저하로 링거 주사를 맞는 투혼까지 발휘한 이종범은 특히 큰 경기에 강했다.

4강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였던 18,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각각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팀 공격을 주도하는 등 4위 싸움이 막바지에 치닫는 최근 놀랄만한 파이팅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5경기 타율은 24 타수 12안타, 무려 5할 타율로 후배들을 머쓱하게 했다.

파이팅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의 도루수는 늘지않았다. 체력적인 부담도 늘었고 국내 투수들에 대한 분석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도루 시도를 자제했다.

그러나 출루하면 상대내야를 휘젓고 다니는 그의 주루 플레이는 팀에게 몇번씩이나 천금 같은 승리를 가져다 주곤 했다. 팀이 4연전에서 3패를 당할 처지였던 8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은 그의 빠른 발을 확인시켜 준 경기.

6_6 동점이던 10회말 2사후 볼넷으로 출루한 이종범이 다음 타자 김태룡의 짧은 좌익수안타 때 내쳐 3루까지 달렸고 당황한 두산 좌익수 유필선이 공을 더듬자 홈까지 쇄도하며 결승 득점을 올렸다 19일 한화전에서도 5_1로 앞서던 4회초 기습번트로 내야 안타를 만들어낸 이종범은 후속 타자 김종국이 3루수 땅볼을 치자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드는 현란한 주루플레이를 선보이기도했다.

그의 현재 통산 도루는 316개로 두산 정수근과 함께 공동 4위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국내 무대에 적응할 내년 시즌의 도루부문은 돌아온 대도(大盜)이종범과 정수근(두산), 김수연(한화), 김주찬(롯데) 등 신세대 도루왕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그 어느때 보다 뜨거운 레이스가 될 전망이다.

이종범의 홈런 솜씨는 그대로다. 191타석에서 11개의 홈런으로 평균 17.3타석에서 홈런 하나씩을 기록해, 전 시즌을 뛰었다면 25개 이상이 가능한 숫자다.

홈런의 숫자나 비거리보다도 그의 홈런이 인상적인 것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팀의 기를 꺾어놓을 수 있는 1회 선두타자 홈런이 유난히 많다는 것. 19일 한화전을 비롯 복귀 이후에만 1회초 선두타자 홈런 1개(통산9개 1위), 1회말 선두타자 홈런 2개(통산19개ㆍ1위) 등으로 1회초ㆍ말 선두타자 홈런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황제’ 마이클 조던이 NBA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타이거 우즈의 등장이 PGA의 인기를 급상승시켰으며 인기 쇠퇴를 거듭하던 메이저리그를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레이스가 구했듯이 모든 프로스포츠는 슈퍼스타를 원한다.

유망주들과 스타플레이어들의 연이은 해외 진출로 침체 일로를 거듭하던 한국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재기한 슈퍼스타 이종범이듯 기아의 4강 진출여부에 상관없이 그의 바람몰이는 올해보다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케 하고 있다.

이왕구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1/09/26 16:29


이왕구 체육부 fab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