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지는 양甲, 동교동 핵분열

한화갑 홀로서기 선언, 신·구파 갈등

동교동이 핵분열하고 있다. 민주당의 뿌리, DJ를 정점으로 한 계파. “DJ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대통령이 되기 전과 같이 우리는 하나”라던 동교동계다.

그러나 역시 대선 소용돌이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걸까? 이미 대선 정국에서 분화의 길을 걸었던 정치 계파의 전례를 우리는 익히 보았다.

△ 엇갈린 양甲. 민주당의 뿌리라 일컫는 동교동계가 한화갑 최고의원의 분가선언으로 구파와 신파간의 갈등으로 번지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 행사장에 참석해 뭔가를 가리키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권노갑 전고문(왼쪽)과 한 최고의원.<박서강/사진부 기자>

즉 민정계는 친YS와 반YS파로 나뉘고 상도동이 친 이회창과 반 이회창파로 갈렸듯 지금 동교동의 분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차기 구도’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동교동계는 각자 제갈길 가야"

동교동의 분화를 공식화한 것은 한화갑 최고위원이 19일 발매된 한 월간지 인터뷰를 통해 “동교동계는 제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밝힌 데에서 비롯됐다.

이보다 앞서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이 당 대표로 오면서 김근태 최고위원이 ‘동교동 해체’를 요구하는 등 이미 동교동계는 뉴스의 초점이었다.

김 최고위원은 8일 청와대가 한 대표를 지명하자 당내 쇄신 요구를 무시한 인사라며 즉각 반발했고 9일 “특정계보가당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11일엔 아예 “동교동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최고위원이 동교동을 아예 부정하고 나선 것이라면 동교동계인 한 최고위원은부정이 아닌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한 최고위원의 선언은 대선주자로서의 홀로서기를 뜻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민주화와 정권교체로 동교동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다.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못박았다.

경선 출마에 대해선 “내가 판단해서 해야지 계속 대통령의 돌봄 속에 머문다면 독립성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소신대로 할 것이며 대통령도 용인할 것”이라고 DJ로부터 자유로이 ‘마이 웨이’를 선포했다.

또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계승, 발전시키고 당의 정체성과 역사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우리 당에서 나만큼 (대선 후보의 자격을)갖춘 사람이 없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이는 당 대표 인선과정에서 자연스레 불거진 결과다. 대표직을 맡으려면 대권을 포기하라는 청와대의 권유, ‘한화갑 대표 체제’로는 공정경선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한 이인제 최고위원측의 반발을 거치며 한 최고위원은 “당권보다 대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 최고위원으로선 대선 도전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된 기회를 얻은 셈이다.


"키워준것 모르고 독자세력 운운" 비난

반면 한 최고위원은 동교동 구파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당장구파의 수장인 권노갑 전 고문의 불쾌감이 전해졌다.

권 전 고문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나. 김대중 대통령 중심으로 끝까지 일해야 할 사람들이 임무가 끝났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불쾌해 했다는 것.

다른 의원도 “한 최고위원은 동교동계라는 원의 한 점에 불과하다.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 (한 최고위원이 득표율 1위를 한 것은) 우리 모두 도와준 것이지 이를 자신의 세력으로 알고 ‘독자세력’ 운운한다면 착각”이라고 비난했다.

동교동 신-구파의 갈등, 즉 권노갑-한화갑이라는 양갑 갈등은 이미 존재했다.‘노갑이 형’으로 통하는 권 전 고문은 DJ의 뜻을 받아 다른 가신에게 전하는 통로 역할을 했고 곧 동교동계의 정점이었다.

권 전 고문과 함께 동교동 가신 1세대 속하는 한 최고위원은 그에 비하면 눈에 띄지 않는 가신이었고 이렇다 할 요직도 거치지 못하는 등 정치적 경력이 미미했다.

한 최고위원이 부상한 것으로 권 전 고문이 국민의 정부 출범 전 한보비리사건에 연루돼 정치적 공백기를 가진 시기였다.

이 때 한 최고위원이 주축이 돼 ‘동교동 신파’가 굳건히 구축되었고 특히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됐다. 신파는 구파와 차별성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개혁성향을 돋보이게 하려 애썼다. 어쨌든 한 최고위원은 동교동의 표를 몰아 압도적인 표차로 1위 득표율을 보였다.

동교동 구파라면 권 전 고문을 비롯해 김옥두 안동선 이훈평 조재환 윤철상 전갑길 김방림 의원, 남궁진 문화부장관이 꼽힌다.

또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DJ직계이면서 구파로 분류할 수 있다. 한광옥 대표와 박광태 박양수 설송웅 의원은 한광옥 계보로 분류할 수 있지만 친구파 성향을 띠고 있다.

동교동 신파는 한 최고위원과 문희상 설훈 조성준 배기운 배기선 정철기 장성민 조한천 의원 등이다. 이에 반해 김홍일 정동채 최재승 김덕배 정세균 이협 이강래 의원 등이 동교동계이면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구파 이인제 대세론, 신파 "분가 만이 살길"

사실상 동교동 구파는 처음부터 한 최고위원에게 대권 또는 당권을 줄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범 동교동계이면서 친 구파라 할 수 있는 한광옥 대표를 세웠고 대표 부임 후 당 지도부 인선에서 한 대표는 한 최고위원이 사무총장으로 밀었던 문희상 의원을 젖히고 김명섭 의원을 총장으로 낙점했다.

동교동 구파의 정서는 ‘이인제 대세론’이다. 분화를 거치며 동교동 구파는 더욱 급속히 이인제 최고위원과 가까워지고 있다.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카드가 이인제 후보라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 입장에선 당에 뿌리가 없는 형편에서 동교동 구파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동교동 신파는 앞으로 ‘한화갑 후보’를 띄우며 독자 행보를 걷게 된다. 평소 “다음 대선엔 전라도(한최고위원이 전라도 출신)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해왔던 설 훈 의원은 한 최고위원의 마이웨이 선언 직후 “조금이르기는 하나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분가의 불가피성을 드러냈다.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동교동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적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논리다.

동교동 신파는 또 다른 대선후보군인 노무현 고문, 김근태 최고위원과 연대하면서 개혁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길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신-구파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경선이 달아오를수록 분화는 급속히 가속화하고 그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의 분화는 전혀 다른 반전을 겪을 수도 있다. 어느 계파보다 수장 즉 DJ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그룹이라는 점 때문이다. 경선 막판 DJ의 의중은 동교동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쳐 다시금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부 김희원기자

입력시간 2001/09/26 19:12


정치부 김희원 h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