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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 트로트 또는 뽕짝, 그 영원한 매력

[트로트 열풍] 트로트 또는 뽕짝, 그 영원한 매력

국민적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

“하루라도 너를 못 보면 죽을 것 같고 너를 안고 싶어 환장하겠으니, 좋은말로 할 때 나한테 시집 와라. 죽어도 니가 해 주는 밥을 먹어 보고 싶다만, 정히 부엌일에 취미가 없다면 내 친히 빨래와 더불어 밥도 해 보마.” 극단 느낌의 ‘쨍하고 해뜰날’.

억수와 달수가 꿍짜작 쿵짝, 트로트 장단에 맞춰 처자에게 애끓는 열정을 호소한다. 악극식의 복고주의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감각주의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두가지 모두다. 극단측이 이 작품을 두고 ‘트로트 뮤지컬’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정확한 판단이다. 총각들의 절박한 노래를 좀 더 들어 보자.

“밤마다 나는 니 꿈을 꾸느라 미칠 지경이다. 잠도 못 자고 아침마다 얼굴이 말이 아니다. 뭐 그리 잘 났다고 튕긴단 말이냐. 시집 오면 밥은 안 굶길 테니 걱정말고, 아이 낳고 살림하다 펑퍼짐해 질지라도 여전히 이뻐할 터이다” 진솔과 저속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젊은이의 공연 양식, 뮤지컬에 트로트의 옷을 입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종섭 작ㆍ연출, 김주현 박아롱 양꽃님 등 출연. 9월 30일까지 대학로 리듬공간, 화~금 오후 7시 30분,토ㆍ일 오후 4시 7시 30분, 월쉼(02)762-0810.


세대를 뛰어넘는 트로트 바람

트로트 바람이 일고 있다. 정통트로트에서 민요를 접목한 트로트 디스코와 테크노 트로트까지, 트로트는 세대를 초월한 국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굳혔다.

남인수ㆍ배호ㆍ이미자ㆍ김부자등 1세대에서 정지원(‘슬픈 기대’를 부른 모델 출신의 가수)ㆍ장민(트로트풍으로 개조한 민요 메들리 디스코 가수) 등 기대주까지, 트로트의 재생산 구조는 확고하다.

최근 나훈아가 보여 주고 있는 변신은 달인의 경지다. KBS1-TV 9시 뉴스 직전, 황금 시간대의 연속극 ‘우리가 남인가요’의 주제가에 그의 현재가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뽕짝이 아닌 격렬한 소울 리듬속에 간간이 랩이 끼어 드는 음악이다. 기존 이미지와 판이한 음악 장르를 배경으로 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욱 구성져, 이채를 띤다.

나이 54세. 본명 최홍기, 별명트로트의 황제.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이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ㆍ‘물레방아 도는데’ㆍ‘갈무리’ㆍ‘잡초’ 등 2,600여곡 취입. 자작곡 800곡 이상. 매력 포인트-짙은 눈썹ㆍ살며시 깨무는 앞니ㆍ호소력 짙은 가창력. 나훈아에 대한 사전적 정보다.

‘장모님 상경길에 꼭 모시고 싶으니 못구한 표를 구해주면 후사하겠다’는 등 오늘도 그의 홈페이지에는 사연이 만발하다. 갈수록 확대되는 팬덤, 여타 장르의 음악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과 변신의 모습 등 황제가 보여 주는 행로는 바로 현재 한국의 트로트가 겪고 있는 재탄생의 풍경이다.

트로트, 즉 뽕짝의 정서는 개인의 차원을 뛰어 넘어 사회적 통합력을 띤다. “홍탁에 취해 웃고 정든 님 정에 울고/용두산 높이 올라 오륙도 바라보면/저멀리 수평선엔 영호남이 따로 없네.” 신인 뽕짝 가수 전미경이 최근 발표한 ‘영호남 연가’는 지난 시절 한반도를 동서로 갈랐던 지방색을 주제로 하고 있다(김동찬 작사, 박헌진 작곡).

김미성 역시 같은 계열. 1977년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활동하다 1978년 ‘아쉬움’이 히트치면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 트로트 가수다.

최근 그녀는 통일 열망을 담은 ‘경의선 열차’를 발표, 옛 명성을 복원하는 데 열심이다. 특히 이번 곡은 빠른 템포의 신나는 트롯으로, 뽕짝 특유의 흥겨움을 살려 내는 데 힘썼다(김상길 작사, 김상길ㆍ공정식 작곡).

반도 남쪽만이 아니다. “서울에 믿음직한 사내, 속타는 걸 알고 계실까/평양 아가씨 애틋한 정에 이끌린 남쪽 머슴아/올가을 단풍철에 금강산에서 사랑을 나눠 볼꺼나”. 신인 위금자의 ‘평양 아가씨’는 무명치마 저고리의 평양 아가씨와 서울 청년과의 연정을 노래한다(오해균 작사ㆍ작곡)

연하의 남자와 연상의 여자 커플을 이상시하는 최근 풍속도를 뽕짝이 놓칠 리 없다. “연하의 남자, 나만을 아껴주는 사랑의 매신저/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나는 좋아”. 신인 장서연이 불렀다(김민 작사ㆍ원종락 작곡).

지난해 트로트계의 수확은 트로트에 대한 시들지 않는 관심을 반영한다. 6년만에 컴백하며 앨범 ‘화살을 쏘고 간 남자’를 발표, 1달만에 2만5,000장을 기록한 트롯 여가수 안다미(29).

또 그해 5집 ‘말해봐’를 발표, 부모(고복수-황금심)의 유지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던 고영준(45) 등. 댄스, 힙합, R&B 등 새로운 유행 음악의 발호속에도 트로트는 항상 일정 지분을 주장해 왔다.

그것은 트로트 음악은 홀로 조용히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함께 즐기고 부를 때 더욱 신나는, 공동체 문화를 지향한다. 트로트 장르에 유달리 메들리 양식이 발달한 것이 그 때문이다.

1999년부터 김용임(32)이 시리즈로 발표해 오고 있는 ‘트로트 대백과‘는 최근의 좋은 예. 1~4집까지 리어카 음반 행상(길보드)을 포함, 공식ㆍ비공식 음반 시장에서 판매고 1위를 여지껏 고수하는 주인공이다.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장거리 수송 운전자에게 그녀의 노래는 최고의 벗이다. 현재까지 이 메들리 앨범은 100만장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서울예전 무용과 학창 시절부터 특유의 뽕짝 메들리로 캠퍼스를 주름잡던 인물이다. 1989년 KBS1-TV의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 빛을 보기까지의 별난 이력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트로트의 현재를 웅변한다.


신바람 '이박사'가 불 지핀 메들리

최근 트로트계가 건져 올린 최대의 수확은 단연 신바람 이박사. 그에게 바쳐진 언론의 별칭은 그를 정확히 반영한다.

테크노 뽕짝, 뽕짝 레볼루션, 뽕짝 메들리의 황제…. 관광 버스는 물론, 부천 LG 백화점에도, 강원대 백령 문화관에도, “좋아, 좋아” 그의 발랄한 괴성은 멈추지 않는다.

관광 가이드 생활로 달관의 경지에 오른 그만의 뽕짝 메들리. 스스로 이름 붙인 ‘유치 뽕짝’의 신바람 앞에서 자기 혼을 제대로 붙들고 있는 관광객은 없다.

지난 5월 22일은 홍대앞 테크노클럽에서는 대학생이 그의 유치찬란한 뽕짝에 괴성을 질러댔다. 8월 의정부에서 열렸던 ‘이박사 팬클럽 단합대회’는 부산에서 올라온 초등학생팬의 사인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에서의 열띤 호응은 일본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1996년 일본의 역사적 공연장 부도칸(武道館)에서 가졌던 콘서트에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일본의 10~20대 젊은이가 ‘사랑해요 이박사’라는 피킷을 들고 괴성을 질렀고, 그는 탬버린을 흔들며 ‘경기민요’, 강원아리랑’ 등을 불러댄 것.

당시 관객 1만여명. 이후 그는 TBC, NHK, 후지 TV 등의 라이브 쇼가 즐겨찾는 인기인이 돼 있었다.

‘코리아 원조 봉짝’이라는 신조어가 그를 추인했다. 한복입고 꽹과리 들고 가슴엔 태극 마크를 달고, 그는 항상 이렇게 허두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나는 대한민국의 신바람 이박삽니다!”

일본 소니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등 본격 유명 궤도에 오르자, 그는 하루에 14시간 인터뷰 공세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이박사 팬클럽’이 생긴 일본서는 1996년 긴쵸사등 대규모 회사의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 신바람 이박사의 어깨를 축처지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학교 어디까지 나오셨습니까?” 한국 기자들이 별 생각 없이, 그러나 완강하게 캐묻는 질문이다. 그래서 한번은 “중학교도 못 나왔다”고 얼버무렸더니, 중학교 중퇴라고 신문에 씌어진 적도 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는 그 사실을 7월 5일 인터넷에 연재중이던 ‘박사님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이로써 그는 본의 아니게 중학교 중퇴로 ‘상향 왜곡’시켜 미안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떳떳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트로트에는 어쩔 수 없이 한과 슬픔의 정서가 묻어 난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애절한 엔카(演歌)가 “쿵짝 쿵짝”을 반복하는 서양의 폭스 트롯 리듬과 결합, 뽕짝이란 양식이 생겼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제국주의 치하에서 트로트가 유입됐다는 시기적 특성과도 단단히 결합돼 있다.

이에 대해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씨는 이렇게 분명히 한다. 그는 일본의 엔카가 “목에서 간들거리는, 굴리는 노래”라면서 “내 노래는 그보다선이 굵은, 한국적 한이 서려 있다”고 차이를 밝혔다. 한때 왜색풍의 노래로 몰려 방송금지까지 당했던 그가 최근 국민가수로 거듭나기까지의 세월 40년은 최초의 뽕짝 뮤지컬이 등장하기까지 필요했던 시간이다.

그 시간은 트로트에서 최초의 빅 쓰리가 출현, 뽕짝의 정수를 펼쳐 보이기까지 필요했던 세월이기도 하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1/09/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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