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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의 경제서평] 방치되는 '꿈꾸는 이방인'의 고통

[이상호의 경제서평] 방치되는 '꿈꾸는 이방인'의 고통

■ 외국인 노동자 의료백서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청년의사 펴냄)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신분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임금 체불이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아니다.

자신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저개발 국가에서 수입된 값싼 노동력, 즉 뭔가 우리보다 저급한 족속으로 취급하는데 대한 모멸감이고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이 더 큰 고통이다.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가 발간한 ‘외국인 노동자 의료백서’는 이 같은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올해 초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그 중 20만 명이 불법 체류자이며,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전형적인 3D 산업에 종사하면서 코리안 드림을 일궈가고 있다. 목숨을 걸고 밀항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는 몸이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병원 문턱은 너무 높다.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이들이 한번 치료를 받으려면 엄청난 부담을 져야 한다. 간단한 질병으로 일주일정도 입원 치료를 받을 경우 거의 1년 치 봉급이 날아갈 정도다.

그래서 생긴 것이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다. 1999년 9월에 출범했다. 현재 450여 협력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5,500여 명의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지난 6월 현재 매월 5,000원의 회비를 내고 진료비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는 41개국에서 모였다니,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가히 ‘세계화’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그들의 아픈 점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 및 질병에 관한 실태를 사례별로 소개한 부분을 보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37개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흔히 우리 주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질병이지만, 돈 없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무관심했다는 자책감마저 든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전장에서도 부상자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의료의 본질이다. 하물며 우리가 하기 꺼리는 힘든 일을 시키면서 말이다.

과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게 되어서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 외화벌이를 하였던 과거를 잊고 이제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한단 말인가 하고 질타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한다더니, 우리가 그 꼴이 난 것이 아닐까. 또 좀 더 값 싼 노동력을 찾아 외국으로 나가는 공장들이 갈수록 늘게 마련인데, 외국에 가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신으로 들어오는 우리 기업들의 현지 노동자 학대와 착취와 국내에서의 작태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나가서도 샌다.

외국인 노동자는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순혈주의를 고수하지 않는 한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규모가 커지고, 장기 체류자가 늘면서 체류 양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에도 ‘각종 외국인 촌’이 생겨날 시기도 멀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볼 것은 아니다라는 이 책의 지적은 그래서 적절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 생산 현장에 투입한지 10년이 지났지만, 각종 문제점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가기는커녕 문제점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단지 의료부문에 관한 서술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인 제도적 해결책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의 합법화와 인권 보장의 법제화를 들었다. 통제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 집단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쉬어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그러한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상호 shlee@hk.co.kr

입력시간 2001/11/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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