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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82)] H2 로켓

[재미있는 일본(82)] H2 로켓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지사는 일본 보수파의 논객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의 선동적인 연설을 참을성 있게 듣고 있자면 금세 엉성하고 헛점 투성이인 논리 전개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논객보다는 선동가에 가까워 같은 보수파라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총리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와의 격차는 아득하다.

그에 대한 비판은 이념적 내용을 제외하면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데 모아진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이후 꾸준히 외쳐 온 미국채 매각론이다.

일본이 개미처럼 일해 쌓은 막대한 외화가 미국채 매입으로 미국에 흘러 들어가 베짱이처럼 놀고 지낸 미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만큼 일본이 미국채를 팔게 되면 미국 경제는 속수무책이라는 요지이다.

일본 국민의 자신감을 북독우려는 의도가 지나쳐 미국경제가 재채기만 해도 일본 경제는 몸살을 앓게 되는 세계 경제의 구조를 외면했다.

일본의 자부심을 자극하려는 그는 자주 미국의 군사기술도 일본 기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한다. 걸프전 당시 미군 관계자가 토마 호크 미사일을 두고 "일본 전자 기술의 덕을 많이 봤다"고 밝혔다는 얘기가 거의 유일한 논거이다.

미일양국간에 실제로는 엄청난 기술 격차가 있고, 세계의 두뇌가 제발로 몰려 와 미국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그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상식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 과학기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예가 H2 로켓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은 독일의 V2 로켓 기술을 기초로 대량의 폭탄을 운반하는 유인 로켓 개발에 나섰다. 패전과 동시에 계획은 중단됐으나 기술 수준으로는 세계 정상급에 이르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패전후 항공연구가 전면 금지돼 52년에야 풀렸다. 개발 단계에서의 이 7년의 격차는 나중에 수십년의 격차로 벌어졌다.

일본이 길이 26cm의 '연필 로켓' 발사 실험을 본격화한 57년 구소련은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고 이에 자극받은 미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에 나섰다. 미소 양국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도 로켓 개발에 힘을 쏟았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일본 우주개발사업단(NASDA)은 75년 미소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당시 이용된 3단식 N1 로켓은 미국의 델타로켓 기술에 의존해 개발한 것이었다. NASDA는 81년 N2 로켓, 86년 H1 로켓의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산화 비율과 운반 능력을 꾸준히 끌어 올렸다.

그에 힘입어 86년에는 2톤의 인공위성을 정지궤도에 올릴 수 있는 2단식 H2로켓의 100% 독자기술 개발에 나섰다. H2로켓은 94년 첫 발사에 성공한 이래 연속 5회의 발사에 성공했다. 일본의 로켓기술에 대한 국제시장의 신뢰가 높아져 각국에서 위성발사 주문이 밀려 들고 우주개발의 꿈도 함께 부풀었다.

그러나 98년과 99년 잇달아 발사에 실패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패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H2 로켓은 미국의 '델타2', 러시아의 프로톤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자랑했지만 비용면에서 2배에 가까워 시장 경쟁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NASDA는 95년부터 비용을 국제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신형 H2A 로켓의 개발에 들어갔다. 엔진을 비롯한 핵심 부분의 부품을 줄이는 설계 변경 등이 H2 로켓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된 결과가 실패를 불렀다.

결국 H2A 로켓은 엔진 연소실험 등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애초의 예정보다 2년이나 늦은 8월에야 발사실험에 성공했다. 그것도 발사 직후 로켓의 지상 관제시스템이 일부 제기능을 하지 못한 불완전한 성공이었다.

NASDA는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17개 민간기업이 참여한 조직으로 그동안 연구·개발 비용을 100%국고에 의존, 비용이 더 들더라도 완벽한 로켓만 만들면 됐다. H2 로켓의 초기 성공은 NASDA의 이런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많은 비용을 들여 세계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같은 비용으로 어느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느냐, 즉 어느 정도의 시장성을 갖춘 기술이냐가 문제이다. 국내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 전자·자동차산업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일본 과학기술이 안고 있는 이런 한계는 후발국의 독자기술 개발이 안고 있는 위험 부담을 드러낸다는 점에 서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11/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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