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볶는 민주당…세력쟁투 점화

최고위원 사퇴·소장파 세 규합·합종연횡 조짐 등 당권 다틈 본격화

10ㆍ25 재ㆍ보선 참패. 패인에 대한 당내 갈등. 그리고 당권을 둘러싼 세력다툼.

민주당내 갈등은 예견된 결과였다. 25일 저녁 일찌감치 선거 결과가 가닥잡힐때부터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하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

26일 긴급히 소집된 최고위원회의부터 쇄신 요구가 폭발했고, 예기치 못한 최고위원 일괄사퇴에 이어 전당대회와 후보선출 논란으로 확산됐다. 시작은 “민심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였지만 논의가 진행되며 대권주자간 이해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물밑에선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세력 싸움이 진행됐다.


예비주자들 이해득실 따라 노선 달라

대권후보 결정을 앞둔 정당 내에서 당권투쟁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번에 단적으로 부각된 양진영은 기득권 세력인 동교동계와 개혁파를 자처하는 소장파다.

선거 다음날인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오후 대표가 청와대 보고 후 “당정개편과 전당대회 등 일정을 연말에 논의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이인제 최고위원이 절로 ‘대세론’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날(27일) 청와대에서 “연말 논의는 청와대 입장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28일 한화갑 김근태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이 “쇄신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반해 이인제 노무현 최고위원은 “쇄신보다 후보가시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대권주자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노선차이가 물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후발주자인 한, 김 최고위원은 가능한 한 늦게 후보를 선출하기를 원한다. 이 최고위원은 자신에게 유리한 당내 구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조기에, 즉 지방선거 전 3~4월께 자신이 후보로 확정되길 바란다.

노 최고위원의 경우 조기 가시화에 반대했었으나 청와대의 의중이 자신에게 쏠릴 것을 기대하며 조기 가시화에 도박을 했다.청와대 지원만 확실하다면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하기 전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이쯤 소장파가 세를 규합하기 시작했다. 29일 열린정치포럼, 중도개혁포럼, 바른정치모임 등 당내 소장파 모임들이 각각 회의를 열고 쇄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30일 한국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의원 85명 중 60%가 ‘즉각 쇄신’, 57%가 ‘지방선거전 후보선출’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게 확인됐다.

30일 밤 열린정치포럼의 이호웅의원, 바른정치모임의 신기남 대표, 새벽21의 박인상 대표, 여의도정담의 장영달 의원, 대안과 실천의 신계륜 대표, 국민정치연구회의 이재정 대표와 김태홍 의원, 중도개혁포럼의 강성구 의원 등 당내 모임의 대표자들이 김근태 최고위원과 심야회동을 했다.

소장파 개혁모임과 중도적 성향의 중도개혁포럼까지 연대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당내 최대세력으로 떠오른 순간이다.

31일 오전 열린정치포럼, 바른정치모임, 새벽21, 여의도정담, 국민정치연구회 등 5개 모임 대표자들은 쇄신 결의문을 발표하고, 당내 서명운동을 벌이는 연대행동에 합의했다.


동교동계ㆍ소장 개혁파 정면충돌

동교동계도 가만 있지 않았다. 특히 30~31일 이 모임들에서 구체적으로 권노갑 전 최고위원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쇄신대상으로 지목한 데에 분노했다. 11월1일 당무회의는 동교동의 반격과 쇄신파의 반박으로 4시간이나 난투를 벌였다.

동교동 구파인 김옥두 의원은 개혁연대모임을 주도하고 동교동계 해체를 주장했던 김근태 최고위원을 가리켜 “소득격차완화특위 위원장이면서 회의는 두 번밖에 열지않고 한 일이 뭐냐”는 등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격을 퍼부었다.

또 당내 소장파 모임들에 대해선 “스스로 해체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동교동계와 소장파 갈등이 본격화한 이 즈음 당내에선 1월 전당대회론이 급부상했다. 동교동계와 소장파 모두 “링 위에서 붙자”고 나선 것이다.

소장파 주장은 이렇다. 1월 정기 전당대회에서 당의 대의원 구도를 바꾸고, 지방선거후 개혁 후보를 내세운다. 2단계 전대론이다. 전제는 1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 당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 즉 대의원 수를 현재의 10배인 10만명으로 늘려 동교동계의 절대적 장악력을 희석하고 대표를 직선제로 바꾸자는 계획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 의원이 천정배 의원이다. 개혁연대를 주장해온 천 의원은 “개혁세력이 결집해 민주당이 차별된 모습을 보이는 길만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노무현 김근태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당내 개혁세력이 결집해 당권을 접수한 뒤 그 안에서 대선후보를 뽑자는 것이다. 개혁연대모임의 실질적 대표 역할을 한 신기남 의원도 “결의문 발표의 다음 수순은 당헌 당규 개정”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동교동계 구파인 이훈평 의원 등도 “1월 전대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좋다. 붙어보자”는 것이다. 현 구도대로라면 당연히 동교동계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소장파 공격을 정면돌파하려는 방어태세다.


소장파ㆍ대권주자 합종연횡이 최대 관심사

그러나 1월 전당대회 주장은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에서 며칠만에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아직까지 소장파의 당권 찬탈은 모험이다.

현재의 개혁 연대모임은 5월 정풍파동을 주도한 바른정치모임 뿐 아니라 다수의 초ㆍ재선 의원과 개혁성향의 중진을 포괄하고 있다. 그만큼 범위는 넓지만 단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7일 청와대최고위원 간담회 이후 대책에 대해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쇄신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등 의견이 갈리고있다. 어떤 대선주자를 미느냐에 따라 각자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소장파와 대권주자의 합종연횡. 그것이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다.


민주당 갈등 파문 일지

10월25일 재ㆍ보선 민주당 3곳 모두 참패

26일 오전 긴급최고위원회의서“쇄신 안해 민심 이반했다” /오후 한광옥 대표, 청와대 보고“당정개편, 전당대회 시기 등 연말 논의키로”

27일 청와대,연말 논의 부인 “당에서 건의만 했을 뿐”

28일 한화갑김근태 최고위원과 소장파 “선 쇄신” 요구/ 이인제 노무현 최고위원과 일부 동교동 구파 “선후보가시화” 주장

29일 한광옥대표 “정기국회 후 쇄신 건의키로” 정리/ 열린정치포럼, 중도개혁포럼, 바른정치모임 등 당내 포럼들 모이기 시작

30일 한국일보설문조사 - 의원들 60% “즉각 쇄신”, 56% “지방선거전 후보가시화”/ 6개 개혁모임 대표자 심야회동 쇄신세력 결집

31일 긴급 최고위원회의 쇄신방법 등 싸고 격돌/ 정동영 김근태 “특별기구소용없다. 즉각 쇄신”/ 이인제 노무현 “쇄신당장 되나. 특별기구 만들자”/ 새벽21 등 소장파 “권노갑, 박지원 물러나라” 적시/ 개혁모임 대표자 회의 “쇄신 안 받아들이면당내 서명운동 벌이겠다”

11월1일 장장 4시간의 당무위원회의 동교동계의 대반격 “동교동 잘못 있으면 물러난다. 최고위원 한 일 뭐냐. 포럼 스스로 해체하라” -정동영 최고위원 사퇴 표명 개혁모임 대표자 회의 “당정청 즉각 쇄신” 결의문 발표

2일 오전긴급 최고위원회의 일괄사퇴/ 내년 1월 전당대회 개최 등 논의 급반전/ 밤: 청와대서 3일 최고위원 간담회 7일로 연기

4일 개혁모임대표자 모임 “다시 쇄신만이 살 길이다”

김희원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11/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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