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주무르는 반도체 판도

삼성전자가 최악의 반도체 불황 속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이슈를 들고 나왔다. 삼성전자는 D램 업계 최초로 지난 9월 11라인에서 300mm(12인치) 웨이퍼 가공라인을 가동하고 10라인에서 512메가 DDR(더블데이터레이트) D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영업적자를 못견디고 구조조정에 급급한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300mm 웨이퍼 기술과 512메가 D램 양산기술을 확보함에 따라 경쟁업체와의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의 허를 찌르고 나서면서 ‘삼성독주체제’를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올들어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이 크게 높아져 삼성의 1위 굳히기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발 앞서 투자하면 두 발 먼저 간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기회복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테러사건 이후 세계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내년 경기마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 차세대 핵심기술인 300mm 웨이퍼 기술과 512메가 비트 양산기술을 조기에 확보한 데는 야심찬 삼성의 전략이 깔려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오는 2005년에 메모리반도체에서 2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인텔에 이은 세계 2위 반도체 업체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는 1위지만 전체 반도체에서는 4위에 머물러있다. 매출규모도 1위 업체 인텔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1위 전략은 시장주도권 장악은 물론 미리미리 알짜배기를 빼먹는 식의 공격적 시장 창출이다.

특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정보기술(IT)산업에서는 핵심부품인 반도체의 공급여부가 성장엔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미리 다양한 반도체 제품과 기술을 미리 확보, 한발 앞서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같은 전략으로 지난해 6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1996년 반도체 호황이 범용 D램의 수요증가 때문이라면 지난해는 삼성전자가 다양한 수요처에 맞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로 최고의 가격을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이 같은 전략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기본전략”이라며 “이번 불황이 지나면 지난해의 경영실적을 능가하는 호황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과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1위 굳힌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사업에 4조원을 투자한다. 올들어 비상경영에 돌입, 3차례나 투자규모를 줄였으며 내년에도 투자를 더 줄일 계획이다.

이에도 불구 삼성의 연구개발(R&D) 투자는 지속되고 있으며 내년에도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다.

황 사장은 “이번 발표는 생산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차세대 기술을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다른 업체와의 기술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그만큼 높은 수익을 얻게 되고 향후 시장장악력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300mm 웨이퍼 라인에서 0.15㎛(미크론) 공정을 적용해 월 1,500장의 256메가 SD램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생산량을 더욱 늘리고 0.12미크론 공정을 적용할 계획이다. 300mm 웨이퍼라인이 본격 가동되면 512메가 제품 등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 제품이 주로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 2003년부터는 0.10㎛의 극초미세 공정을 적용한 512메가 제품을 양산하고 2004년까지는 0.07미크론 공정기술을 양산에 적용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2005년까지 메모리중 S램ㆍ플래시 메모리 비중을 50%까지 늘려 D램과 함께 주력 반도체 제품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S램의 경우 연말까지 15종의 신개념 MCP(복합칩)을 시장에 내놓는 등 네트워크 시장을 집중공략, 현재 20%인 판매비중을 2005년에는 35%로 확대할 예정이다. 플래시 메모리는 지난달말 1기가 제품에 0.12㎛ 공정을 적용, 양산을 시작한데 이어 내년에는 멀티미디어 카드, 메모리스틱 등 플래시메모리 전제품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갖출 계획이다.


D램업계 판도가 바뀐다

지난해말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21%로 근소한 차이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말 삼성전자는 30%로 점유율을 높였으며 하반기에도 이 같은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황 속에서 삼성의 실력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경쟁사인 하이닉스반도체와 미국의 마이크론, 독일의 인피니온, 일본의 엘피다(NEC+후지쓰)ㆍ도시바 등은 막대한 영업손실 때문에 감원ㆍ감봉ㆍ사업축소 등 자체 구조조정은 물론 인수합병까지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인피니온은 도시바와 합작법인 설립을 진행하고 있는 동시에 모젤비텔릭ㆍ윈본드ㆍ난야등 대만 업체들과 접촉, 대형 D램업체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인피니온과 도시바는 합작회사 설립에 필요한 5억달러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독자생존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합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의 앞선 세대교체 추진으로 업계 구조조정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업계는 내년 하반기에 128메가에서 256메가로 주력제품이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56메가 비중을 올 연말까지 40%까지 늘리고 내년에는 512메가 제품으로 조기에 전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석포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시장주도권을 쥐고 있는 삼성전자가 먼저 뛰어나가면 생각보다 빨리 세대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며 “당장 256메가에 대한 준비가 안돼있는 업체는 강자의 위치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128메가 D램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마이크론은 앞으로 1위를 위협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신 인피니온과 엘피다가 이번 불황에서 버텨낼 경우 강력한 2위그룹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이 결정된 하이닉스도 국내 이천공장과 미국의 유진공장에 256메가 라인을 서둘러 도입하기로 했다.

언제 D램 세대교체가 이뤄지느냐가 업계의 판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삼성전자가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사진설명> 삼성은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경영으로 D램시장의 1위 굳히기에 나섰다.

조영주 서울경제신문 산업부기자

입력시간 2001/11/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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