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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아프간에 빠진 美 베트남전 '악몽' 현실되나?

[TIME] 아프간에 빠진 美 베트남전 '악몽' 현실되나?

지금도 미국이 탈레반을 쉽게 굴복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최근 탈레반에 붙잡힌 압둘 하크 장군의 처형소식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아프간의 험지에서 하크 장군만큼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구 소련에 대한 항쟁시절, 오른 쪽 발까지 잃어가면서 신출귀몰한 전투를 전개한 그는 전설적인 무자헤딘(성전) 용사였다. 하크 장군은 구 소련의 철군 이후 빚어진 권력투쟁에서 탈레반에게 밀리자 아프간을 떠났다.

또 그는 망명지인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의 집에서 아내와 아들이 살해되자 탈레반을 비난했다.

그가 최근 아프간 접경 지대로 돌아왔다. 아프간 남부지방에서 병사들을 규합, 반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서 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하크 장군은 보석 같은 존재였다.

그는 탈레반처럼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 출신이어서 아프간 남부와 동부 지방에서 탈레반의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남부와 동부 지방은 현재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미국 특공대가 투입돼 작전을 펴고 있는 지역이다.

하크 장군은 지난 주 아프간 전사들이 총부리를 탈레반 쪽으로 돌리도록 설득해 보겠다며 경무장한 19명의 측근과 함께 아프간으로 잠입했다.

그러나 배신자가 생겼다. 탈레반은 이틀 동안 하크 장군이 머물고 있던 집 주위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금요일 새벽, 탈레반 병사들이 3면으로 포위했다. 카이버 패스(아프간과파키스탄을 잇는 산길)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위성전화를 서둘러 꺼내 파키스탄에 사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크 장군의 신음소리는 곧바로 CIA로 연결됐다. 그가 말에 올라타 탈출로를 뚫으려는 순간 미국 무인정찰기가 나타나 하크 장군을 뒤쫓던 탈레반 병사들을 향해 헬파이어 미사일 한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빗나갔다. 곧 이어 하크 장군은 체포됐고 수도 카불로 압송돼 미국의 스파이란 혐의로 처형됐다.

미국 의도에서 빗나가는 전쟁


부시 정부인사들은 아프간에 대한 전면폭격이 개시된 직후 정교한 폭격은 지상작전을 신속하게 펼 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주쯤뒤 국방부는 미군의 폭격으로 탈레반의 군사력은 궤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주부터 이 같은 낙관론은 종적을 감추었다. 당초 구상했던 치고 빠지기 식 전쟁은 정작 현실의 세계에선 아프간의 혹독한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전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000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지만 탈레반은 여전히 싸울 여력이 충분하고, 심지어 개전 초기에 기세를 올렸던 북부동맹까지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폭격에 희생된 아프간 양민의 수는 늘어나고,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파키스탄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 전쟁은 개전한지 3주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의 관리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관계자들도 “국민들은 전쟁을 한방에 끝낼 수있는 럭키펀치가 터져나오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실제 전쟁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좀 더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21세기의 새로운 전쟁 형태라고 하더라도 전쟁의 규칙은 변하지 않았다. 규칙을 안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한 시간을 버티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란 생각을 버려야 겠다. 미국 공군은 아프간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탈레반의 전의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아프간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지상전에서 심각한 출혈을 당한 뒤에야 전의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특공대의 기습 등 제한적인 지상전만 전개함에 따라 북부동맹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개전초마자르 이 샤리프 등 거점도시를 일제히 공격, 상당한 전과가 기대됐던 북부동맹이 최근 주춤하고 있다. ‘공습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북부동맹은 지난 월요일 마자르 이 샤리프의 12마일까지 압박하는 데 성공했지만 탈레반 병사 2만명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혀 진격을 못하고 있다.

또한 탈레반의 대공포 때문에 보급루트가 거의 막힌 상태이어서 당분간 진격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북부동맹의 한 지휘관은 “거의 맨손으로 싸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당신네 미국인들이 지상전에 뜸을 들일수록 탈레반은 공습에서 살아나는 방법을 빠른 속도로 체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아프간으로 발사된 폭탄과 미사일의 85%가 목표물을 적중했다는 수치를 자랑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민가 등에 떨어져 탈레반 전력 약화라는 소기의 성과는 커녕 역풍마저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군 관계자들도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쨌든 오폭을 시인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군이 병원을 폭격했다는 탈레반의 주장을 얼마전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여자 공보관을 통해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뒷걸음질 쳤다. 또한 미국 전폭기들은 카불의 주택가에 500파운드 짜리 폭탄 2개를 투하했고, 지난 금요일에는 카불에 있는 적십자사 창고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적십자사는 벌써 2번째 미군의 공격을 받았다.

등 뒤도 조심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아프간으로 가는 노루목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점점 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반미정서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탈레반 지지자들이 중요 정보를 탈레반 쪽으로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 안에도 이 같은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다.


열감지기능 향상, 은거지 파악 수월

파키스탄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특공대는 이미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한 군관계자에 따르면 얼마전 치누크 헬리콥터가 파키스탄 남부의 한 공항에 착륙하려던 순간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공항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친 탈레반계 비정규직 직원들이 일제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치누크도 몇분 동안 응사했다.

그리고 파키스탄 군인들이 출동, 직원으로 위장한 이 매복조를 소탕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칸다하르로 잠입한 특수부대원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던 탈레반의 매복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하크 장군도 파키스탄 정부내 스파이가 그의 잠입정보를 탈레반에 건네주었기 때문에 힘 한번 못써보고 생포돼 처형됐을 가능성이 높다.

겨울도 단단하게 대비해야 한다. 늦어도 11월 하순이면 시베리아의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고 힌두쿠시 산길은 눈에 파묻힌다. 북부동맹은 추위에 관한한 탈레반 보다 한수 위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어쨌든 주요 루트가 빙판길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 미국 육군은 수년간 겨울철 전투를 대비한 훈련을 했지만 혹한이 전투력을 떨어뜨릴 것은 분명하다. 특히 대부분의 작전을 저공비행을 통해 전개하는 특공대에겐 혹한과 강풍은 쥐약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겨울은 의외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추위로 열감지장치의 성능이 좋아져 동굴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를 찾아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겨울철에는 눈 등에 흔적이 잘 남아 빈 라덴의 이동경로를 포착해 추적하기가 용이해진다.

보다 성능이 좋은 메가폰도 장만해야 한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범한 최대 실수는 군사작전이 아니라 기아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남부여대하고 있는 아프간 사람을보다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고 있는 점이다.

난민 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인도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이슬람권 국가의 반미정서를 누그러뜨리고, 미국이 이끌고 있는 반테러 세계전선의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면 이들은 반미ㆍ반전의 전도사이지만 잘 보살핀다면 자연스럽게 훌륭한 홍보 및 심리전 요원이 될 수 있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kckim@hk.co.kr

입력시간 2001/11/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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