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동해안 석호 기행

한반도에 수많은 호수가 있지만 자연이 스스로 만든 호수는 손을 꼽을 정도이다. 사람이 물을 막아 만든 인공 호수가 대부분이다. 자연의 흥취에 푹 빠지기에는 부족하다. 자연 호수가 가장 많은 곳은 엉뚱하게도 동쪽 바닷가.

바람과 파도와 모래가 물을 가둬 놓은 석호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몰려 그들도 손때를 많이 탔다. 그렇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그 때는 엷어진다. 강원 고성군의 화진포, 송지호, 속초시의 영랑호 등이 여전히 맑은 물빛을 담고 있다. 지금 누렇게 익은 갈대가 손짓하고 있다. 늦가을 여행지로 제격이다.

화진포에는 해당화가 많았다. 그래서 옛 이름이 화담이었다. 많이 뜯기기는 했어도 여전히 해당화가 많다. 고성군의 군화가 해당화이다. 소나무도 많다. 주변 12ha의 언덕에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예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조선 팔도에 떨쳤다. 김일성 전 북한주석은 물론, 이승만 전대통령이 이 곳에 별장을 지었다. 이념이 달랐던 남북의 두 지도자가 망설임 없이 최고의 휴식처로 꼽았던 곳이다. 그 별장들은 지금은 모두 개방되고 있다. 그들이 살았을 때의 사진이나 치적과 관련한 기념물을 모아 놓았다.

강원도 지방기념물제 10호인 화진포는 둘레가 16㎞이다. 한 바퀴를 도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호수 전체는 아니지만 동쪽 호숫가를 따라 도로가 나있다. 차로 천천히 돌아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소나무가 많은 곳이란 의미의 송지호는 이제 한동안은 소나무 호수가 아니다. 해방 이후 최악이었다는 1996년 산불과 단군이후 최악이었다는 지난 해의 산불이 이곳의 소나무들을 짚더미 태우듯 쓸어버렸다. 살아남은 몇그루의 소나무와 새로 씨를 틔운 고사리 같은 아기 소나무가 빈터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7번 국도변의 호숫가는 철책으로 완강하게 막아 놓았다. 물가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소나무라도 보존하자는 뜻에서이다. 대신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높이 약7㎙의 전망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송지호의 맑은 물이, 동쪽으로 송지호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송지호의 한가운데는 섬처럼 육지가 삐죽 파고 들어와 있다. 송호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옆에 불탄 노송이 우람한 가지를 뒤틀고 있다. 송호정은 7번 국도변에서 들어갈수 없다.

송지호의 남쪽 끝에 구성리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샛길을 타고 약 500㎙를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또하나의 샛길이 나온다. 남쪽 호숫가를 따라 나 있는 호변도로이다. 절반은 시멘트 포장이고 절반은 비포장이다. 승용차로는 무리이다.

송지호의 진경을 감상하려면 이 길을 따라 가 보아야 한다. 송호정에 닿을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만날 수 있다.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갈대밭 속에는 수많은 새들이 숨어 있다. 인기척이 나면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뛰쳐 나온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제자리에 주저 앉을 만큼 깜짝 놀란다.

속초 시내에는 두개의 호수가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이다. 청초호가 더 넓고 물이 깊지만 주변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는 등 자연미를 많이 잃었다. 영랑호도 인공의 냄새가 없는 것은 이니지만 아직은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호수 서쪽으로 설악산의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화랑영랑이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남하던중 이 곳을 발견했다. 서라벌로 돌아가는 것도 잊고 이 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많은 날을 머물렀다.

이후이 호수를 영랑호로 불렀고, 화랑들의 심신수련장 역할을 했다. 영랑호의 둘레는 8㎞. 모두 포장도로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이만한 곳이 없다. 아침이면 속초시민의 조깅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11/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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