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82)] 수면과 수행능력의 관계

드디어 수능시험이 끝났다.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특히 전날에 잠을 설친 학생들은 더러 시험을 망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보면 분명히 잠은 수행능력(기억)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과연 잠은 인간의 수행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의 뇌는 깨어있을 동안에 수집한 정보를 잠이나 꿈을 통하여 처리하는 것일까? 잠과 기억(수행능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 과학계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 발단은 이번 달 사이언스지에 두 가지 다른 결과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잠을 자는 동안 그리고 꿈을 꾸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많은 종류의 이론이 있었다.

수 백년 전에는 조상을 만나기 위해 꿈을 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의 이론은 잠을 자는 동안 뇌가 문제를 풀고 학습을 돕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치료학과 로봇 스틱골드 교수는 뇌(또는 정신)가 밤에도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뇌는 세상의 복잡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역할을 하는데, 뇌의 이러한 정보처리를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간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잠이 든 밤에도 가동된다는 것이다.

피험자의 한 그룹은 렘수면(가장 깊은 수면상태)에 이르게 만들고, 다른 그룹은 깨어있게 했더니, 렘수면을 오랫동안 지속한 사람의 문제해결력이 증가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뇌의 어떤 부분이 새로운 정보를 조합하는 동안 다른 부분은 꿈을 유발하여 기억을 정리하기 때문에 잠자는 동안에도 뇌는 문제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사실, 문제를 자기 마음속에 담고 잠에 빠진 사람이 다음날 일어나면서 그 해답을 가지고 깨어났다는 잘 알려진 일화에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의 시겔 교수는 꿈과 학습에 대한 연구를 수십번 행했어도 수면 중에 뇌가 정말로 중요한 처리를 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스틱골드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달리하고 있다. 렘수면 상태가 부족한 사람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되며 이 스트레스가 문제를 푸는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렘수면이 직접적으로 수행능력 향상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잠을 자는 것만으로 학습이 향상될 수는 없으며 학습은 공부를 통해서 향상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 모두 렘수면의 부족이 장시간 기억능력을 손상시키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물의 수면패턴을 보면 오리너구리는 14시간 수면 중 8시간 렘수면에 빠지고, 족제비는 14.5시간 중 6시간, 유럽 고슴도치는 10.1시간 중 3.5시간, 돌고래는 10시간 중 0.2시간, 사람은 8시간 중 2시간으로, 사실상 렘수면의 길이가 지능이 높은 동물에서 오히려 낮게 나타나기도 하므로 렘수면과 수행능력을 직결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수면부족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밤을 세운 벼락공부는 학습에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약물을 사용하여 몇 개월 동안 렘수면을 없게 했을 경우에 기억력에 장애가 없었고 오히려 향상되기도 했다는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므로, 수면이 기억형성에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주장을 두고 일반인들은 무엇을 취해야 할까? 과학은 단순하거나 한 종류의 결과로만 나타날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이렇게 상반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섣불리 일부의 연구결과만 믿고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다만 여기에도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에 일단 만족해야 할 듯하다. ‘오랫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1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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