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중허리들의 샅바싸움… 느림의 명승부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21)

당기는 자가 있지만 그들은 끌려가질 않는다. 수비바둑의 대명사들끼리의 싸움. 화끈한 난타전보다 한 점 차의 박빙의 승부에 강한 사람들의 투수전. 토끼보다는 거북의 대결. 50대와 10대의 신구(新舊) 강태공의 기다림 싸움. 그들의 빅카드는 어느덧 명승부를 자아내고 있었다.

2:2에서 맞이한 제5국. 어느 쪽이 이겨도 센세이션이란 점에서 린하이펑과 이창호의 격돌은 흥미를 바짝 끌었다. 여태 흑을 든 쪽이 다 승리를 가져갔다. 5국이라서 최종국은 다시 돌을 가린다는 규정에 따라 돌을 가린 결과, 이창호는 백이 나오자 조금 신경이 쓰이는 듯 눈을 찔끔 감는다.

흑이 승리를 할 확률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네 판을 이긴데서도 증명이 되었지만 덤이 5집반인 시절에는 더더욱 그렇다. 두 사람 같이 이중허리 삼중허리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지막 판이 될 뻔한 4국을 이겨냈다는 것과 홈 링이라는 이점은 분명 이창호에겐 강점이었다.

초반전은 약속이나 한 듯 집차지로 흘러간다. 어느 하나 물 샐 틈 없는 정석의 조합으로 한판이 이어져 간다. 두 사람은 지난 네 판과 더불어서 누가 먼저 도발할 것인가를 경쟁하는 듯하다. 아니, 누가 먼저 도발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평정심을 지키며 인내할 지를 경쟁하는 듯하다.

필시 이런 바둑은 먼저 서두르는 쪽에서 걸려들기 십상이며 또 지나치게 기다리다 판이 그냥 끝나버리는 경향도 있을 수 있다. 타 들어가는 수류탄을 손에 쥐고서 불꽃이 거의 타들어 갈 즈음 목표물을 행해 던져야 하는 것이다.

먼저 린하이펑이 좌변을 짚어왔다. 그것은 도발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평정 심에 돌멩이를 던져보았다. 그러나 이창호가 아래를 받는 바람에 오히려 흑의 작전이 성공한 듯 보인다.

이창호는 실전 흑의 기막힌 응수를 생각지 못 했다. 흑의 기막힌 응수란 흑집을 지키면서 백을 견제하는 일석이조의 수였다. 바로 이런 점이다. 먼저 쳐들어가서도 응수를 제대로 못해 잘 못 받으면 당한다.

이번에는 이창호가 조금 당했다고 느꼈는지 제2선으로 저공비행 한다. 이런 2선에 침입하는 저공비행은 필시 응수타진이다. 훗날 이창호의 전매특허가 되는 응수타진. 고도의 응수타진은 제대로 받으면 본전이고 제대로 응징을 못하면 당하는 지뢰밭이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침입인데 린하이펑이 난전을 피하기 위해 온건하게 받아주어 이창호가 갑자기 20집 가까운 실리를 확보하여 실리로는 추격에 성공한 모양이다. 다만 그 대가로 세력을 허용하여 알쏭달쏭한 형세.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백이 벌어들인 실리는 안팎으로 35집에 해당하는 큰 실리인데 그 대가로 허용한 세력이 35집이 되는가? 그러나 '이중허리'의 위력을 잘 아는 고로 늪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늪이다. 선(先) 실리는 이창호가 벌어들였으나 이제부터 고생은 각오해야 한다. 후(後)타개가 재대로 되어야 하는데 이 거대한 세력에서 린하이펑은 자신의 주특기인 '포대기 작전'을 전개하는 것이다. 큰 세력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집 부족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이창호는 좀 둔탁한 행마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린하이펑은 급전을 감행한다. 아마도 예전에 린9단의 기풍으로는 예상하기 힘든 발상인데 그것도 50에 이른 체력 탓일 게다.

흑은 적극공세에 백의 곡예가 시작될 무렵, 백은 그만 또 완착을 범하고 만다.

이중허리의 초급공을 보고서 당황했음일까. 절대유리의 상황이 절대 불리로 바뀌어버린다.


[뉴스화제]



·조치훈 무관탈출 시동

조치훈 9단이 왕좌전에서 2연승을 거두며 타이틀 획득을 목전에 두고 있다.

11월1일 일본 오사카에서 벌어진 제49기 왕좌전 도전5번기 제2국에서 도전자 조치훈 9단은 왕좌 왕리청(王立誠) 9단을 맞아 284수만에 백7집반승을 거두고 2연승을 기록, 무관탈출에 1승을 남겨놓고 있다. 조9단은 최근 2년 동안 연속으로 왕9단에게 도전했다가 두 번 모두 1승3패로 물러선 바 있다.

이번에 조치훈 9단이 왕좌 타이틀을 획득한다면 사실상 무관인 조치훈 9단이 다시 타이틀 보유자 대열에 끼게 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지난 2년간 준우승의 아픔을 안겼던 왕리청 9단에게 설욕함과 동시에 왕9단의 4연패를 가로 막게된다. 상대전적에서도 35승32패 1무로 격차를 벌이게 된다. 우승상금은 1,300만엔이다. 한편 제3국은 제3국은 11월 14일 후쿠시마에서 속개된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11/1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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