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해의 中國통신](8) 양안경제교류 길목의 신호등

중국과 대만을 상호 경제교류 정책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어느 편이 더 개방적일까. 정답은 중국이다. 중국은 개혁ㆍ개방 노선을 채택한 이래 외자, 특히 화교자본에 대해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문을 활짝 열어 특혜를 부여했다.

반면 대세에서 밀린 대만은 안보적 측면을 강조하며자국 기업의 대륙투자를 제한해 왔다. 대만의 이 같은 대륙투자 제한정책이 마침내 슬금슬금 풀리고 있다.

대만정부는 11월7일 지금까지 견지해 온 대중국 경제쇄국정책에 중대한 돌파구를 열었다. 1996년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제창, 실시해 온 대중국 투자제한 정책인 ‘지에지용런(戒急用忍) 정책’의 완화방침을 밝힌 것이다. 지에지용런 정책은 대만 기업의 과도한 중국투자가 초래할 대중국 경제종속을 막기 위해 나왔다.

이날 대만정부가 발표한 완화정책은 재계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다. 주요내용은 우선 대만 기업의 대륙 직접투자 허용이다.

정부규제를 피해 제3국에 자회사를 설치, 자회사의 명의로 대륙에 우회 투자해야 했던 지금까지의 번거로움을 없애준 것. 단일항목에 5,000만달러이상 투자를 금하던 투자상한선도 폐지키로 했다. 개인 및 중소기업의 대륙 누적투자금액 상한선도 종전의 신대만폐 6,000만위엔(약 20억원)에서 8,000만위엔으로 높였다.

제도적 측면의 완화대책도 나왔다. 대륙투자 업종 분류기준을 현재의 금지류, 허가류, 특별심사류 등 3종에서 금지류와 일반류로 단순화한 것이다. 금지류에 속하지 않은 업종의 투자항목은 정부 심사를 거쳐 곧바로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양안간 직접금융 채널을 트기 위해 역외금융센터(OBU)와 대륙의 금융기관이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대륙투자 완화 정책은 내년 1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대만정부는 하지만 이번 완화정책이 무조건적인 개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개방과 함께 투자에 대한 ‘효과적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개방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대륙위원회(통일부) 차이잉원(蔡英文)위원장의 말을 빌리면, 효과적 관리는 ‘양안경제교류의 길목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이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을 조작함으로써 투자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신호등 조작을 위한 일차적 고려요소는 물론 과도한 경제의존 방지와 안보가 될 것이다.

대만정부의 이번 조치는 떼밀려 내놓은 인상이 강하다. 20여년만의 최악 경제불황과 실업률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대륙과의 경제교류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재계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이번 조치는 지난 8월 말 폐막된 총통직속의 초당적인 ‘경제발전자문위’의 권고를 수용해 정부가 구체안을 만드는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경제발전자문위 위원의 다수가 재벌총수나 친 재벌 학자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굴복했다는 인상은 피할 수 없다.

이번 조치는 아울러 타이상(臺商ㆍ중국투자 대만기업인)들의 기존 투자를 추인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타이상들은 지금까지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제3국을 경유해 제한액을 훨씬 초과하는 투자를 공공연히 해왔다.

이번 개방정책은 결국 민생과 경제부흥을 명분으로 내건 재계의 요구에 정부의 안보논리가 밀린 형국이지만 재계의 불만은 가시지않고 있다. ‘적극개방’과 동전의 앞뒤를 이루는 ‘효과적 관리’가언제든 정부에 의해 규제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수시로 신호등의 불빛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재계는 이와 함께 관료조직의 타성에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보논리에 파묻혀 온 관료조직이 기업의 대륙투자에 대한 심사과정에서 경직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다.

대만의 이번 개방정책은 반세기를 넘는 중국과의 대립사에 비추어 의미있는 조치임이 분명하다. 앞으로의 관심은 대중국 투자개방이 장차 어느 방향으로 진전되는 가에 있다. 천쉐이비엔(陳水扁) 총통의 말대로 기업들이 “대만을 충분히 가꾼후에 바깥을 경영”할 지, 아니면 대륙을 위해 아예 대만을 내버릴 지가 문제다.

배연해 기자

입력시간 2001/11/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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