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는 사회] "우리느 사이버 철학관으로 간다"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은 인터넷 운세사이트

‘197X년 10월16일 유(酉)시에 출생한 여자 대학원생입니다. 비전 없는 공부를 하려니 경제적 이유도 그렇고 정말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합니다. (중략)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 오래 만났으나 정리가 잘 안됩니다.

그나 저나 이혼 같은 극단적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고 노력하는 데마음 대로 안됩니다. 도대체 제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의 생년월일은 196X년 4월25일 입니다…’(모 인터넷 사주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다양한 운세 서비스, 가격도 철학관보다 저렴

2~3년전부터 인터넷에서 자리 잡은 문화 콘텐츠의 하나가 바로 ‘사이버 철학관’이다. 예전 같으면 부채 도사나 처녀 보살을 만나기 위해 미아리 고개를 올라야 했지만 요즘 젊은 층사이에서 그런 풍경을 찾기는 힘들다. 대신 요즘은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 함으로써 자신의 운세를 파악한다.

인터넷 운세 사이트가 인기를 끄는 데는 몇가지 비결이있다.

우선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하릴없이 점쟁이나 찾는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가격도 기존 운명 철학관 보다 싼 1만원 내외다. 사이트 마다 간단한 운세 정도는 무료로 서비스해 주고 있어 심심풀이로도 그만이다.

97년 10월 오픈한 낭월명리학당(www.gamlo.com)은 인터넷 철학관의 터주대감 격이다.

인터넷을 통해 역학을 널리 알리면서 이미 두터운 마니아 층를 확보하고 있다. e메일과 전화를 통해 주로 상담하며 직접 상담을 하려면 계룡산 기슭의 감로사까지 방문해야 한다.

사주닷컴(www.sazoo.com)도 사이버 공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버 철학관이다. 재치 넘치는 운세 풀이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사이트에는 20~30대의 젊은 역술인 1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 몇 개 대학에 동아리까지 갖고 있는 구통도가측에서 운영하고 있는 토탈오즈스타(www.totalozstar.com)도 비교적 정확한 운세 풀이와 온라인 상담으로 네티즌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이트다.

이 곳은 구통도가의 창시자이자 천상어록의 저자인 안중선(53)씨가 운영하는이 사이트는 압구정동과 종로 3가, 이천, 광주 등 4곳에 사주를 봐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사이트를 연 홍정자연오행학술연구소(www.hongjung.com)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역술 상담을 해 주고 있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명리학 강의 자료도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는 전언이다. 최근에는 사람 뿐 아니라 기업의 운명을 알려 주는 철학관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독특하게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술왕국(www.fortunekingdom.co.kr).

강남구 압구정동 본점을 비롯해 강남점, 두타점, 신촌점 등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점술왕국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사주를 통해 자금 흐름을 파악,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절 문을연 김민정철학관(www.kmj119.co.kr)도 테헤란 밸리 벤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이트다.

김민정 철학관에는 요즘 위축된 경기 때문인지 투자 유치에 성공할 수 있는가 여부와 사무실 이전 방향과 위치를 묻는 질문이 많다고 한다. 이 밖에 현재 운영 중인 운세 사이트는 80여개, 운세 사이트의 일일 평균 접속 횟수도 5만 여건에 달한다. 대략적인 수치지만 네티즌이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관심이 높은 지 가늠할 수 있다.


첨단과학기술과 주술의 만남

인류가 최초로 점을 치기 시작한 것은 BC 4000년 경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중국인들이 거북 껍질과 짐승의 어깨 뼈를 이용해 신의 뜻을 헤아렸다. 후에 중국에서는 음양오행과 괘효 이론에 따른 주역점이 대표적인 점술로 자리를 잡았는데 동양 역술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주와 작명, 이름풀이 등이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우리나라는 상고 시대 때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 거북 껍질이나 뼈, 소의 발톱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

거북 껍질을 통한 주술 행위로 시작된 점이 인류가 발명한 가장 획기적인 첨단 기술인 인터넷과 만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강병준 전자신문 인터넷부 기자

입력시간 2001/11/14 11:1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