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초강수에 한나라당도 당혹

'총재직 사퇴' 진의파악 분주, 정치권에 미칠 '후폭풍'에 촉각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는 정치권 전체에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졸지에 구심점을 잃은 민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에게도 엄청난 충격파였다.

한나라당은 그 동안 틈만 나면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를 요구해 왔지만, 막상 김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총재직을 내던지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당장 김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총재직 사퇴 이후 장차 몰아닥칠 ‘후폭풍’의 모양새나 위력에 대해서도 예측이 힘든 까닭이다.


DJ 포위 구도에서 昌 포위구도로?

총재직 사퇴 전의 정국 구도를 가장 단순화시키면 ‘DJ 대 반 DJ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DJ 포위 구도’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보다 더 유리한 구도가 없고, 따라서 당연히 내년 대선까지 이 틀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왔다.

그런데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이 같은 정치 지형은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적어도 겉으로는 김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지대로 나와 앉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지만 반 이회창 세력이 총 결집, ‘昌 포위구도’를 만들 가능성이 이전 보다 높아졌다. 실제 민국당 김윤환 대표 같은 이는 벌써 오래전부터 DJ의 총재직 사퇴-정계개편-반 이회창 연대 결성을 주장해 왔다.

당 기획위원회도 “여권이 3김과 민국당 김윤환 대표 및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 그리고 일부 민주당 대선주자 등을 모아 이회창 총재를 포위하는 정계 개편에 나설 수도 있다”며 “이 경우 향후 정국 구도는 지금까지의 김대중 대 이회창 구도가 아닌 이회창 대 반 이회창 구도로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세가지 시나리오 상정, 대책마련 부심

한나라당은 DJ의 총재직 사퇴 이후 일어날 수 있는 몇가지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이에 맞는 대책을 짜느라 부심하고 있다. 주요 당직자들이 전망하는 시나리오는 대충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김 대통령이 몸을 추스리고 재충전한 뒤 수렴청정에 나설 가능성이다. 이는 김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와 관련, 당내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은 “(김 대통령은)총재직을 버림으로써 한나라당이 누리던 반 DJ 반사이익을 상쇄하고 여야를 초월한 중립대통령의 모습을 과시하면서 사정, 정계개편, 여당 대선후보 만들기 작업을 가속화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 대통령의 ‘원기 회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0ㆍ25 재ㆍ보선 패배도 결국은 경제와 민생에서 비롯됐다.

민심이 떠난 것은 살기가 힘들어진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거기에다 현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북정책도 이전만큼 민심을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김 대통령이 원기 회복을 하려면 경제가 살아나야 하고, 대북정책이 순조롭게 풀려야 하는 데 현재로서는 그 전망이 아주 불투명하다.

두번째는 김 대통령이 “이회창은 절대로 안된다”며 대규모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다. 이 또한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정권 재창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염두에 둔 시나리오.

한나라당이 가장 내켜하지 않는 상황이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자신의 방패막이 될 당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이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에서는 “총재직 사퇴는 정치 9단의 노련한 노림수 일수 있다”며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10ㆍ25 재ㆍ보선 참패 이후 터져나온 여권의 자중지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꺼낸 초강수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치밀한 계산 끝에 내놓은 고도의 승부수가 아니겠느냐는 짐작이다.

이와 관련, 이회창 총재의 한 핵심 측근은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포기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총재직 사퇴로 오히려 행보가 훨씬 자유로워진 만큼 앞으로 상황을 보아가며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이고 이는 신당 창당을 통한 정권 재창출 플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계 개편의 여러 모양새 가운데 한나라당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DJ 신당’이다. 얼개는 이렇다. 김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최적의 타이밍을 선택, 개혁 성향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을 새로 만든다.

민주당내의 개혁세력이 주축이 될 테지만 여기에 한나라당내 일부 개혁 적 인사들도 참여한다. 모양은 ‘헤쳐모여’이지만 내용은 ‘DJ 중심의 새판짜기’인 셈이다. 실제 김기배 사무총장은 “DJ가당내 반발 세력을 털어내고 신당을 만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김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보다는 성공적인 임기완수쪽을 택할 가능성이다. 중립적 내각을 새로 구성하는 등 남은 임기동안 국정에 전념하며,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관리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한나라당이 가장 바라는 모습이다.


여권과의 차별성 부각에 주력

한나라당은 일단 김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 볼 것이다. 그것은 연말쯤으로 예정된 새 내각이 어떤 모습으로 짜여질 것인지, 앞으로 대북정책의 기조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등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와는 별개로 앞에 든 세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것이 되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 기획위원회의 한 당직자는 “그 동안 미뤄뒀던 숙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지금까지 이 총재가 내세워 온 ‘국민 우선 정치’를 더욱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내분에 휩싸여있는 여권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에 더 없이 효과적이다. 여기에다 첨예한 정국 대치 상황에서 당분간은 떨어져 있는 만큼 대권후보로서의 이회창 총재의 비전을 구체화, 가시화하는 작업도 본격 착수할 방침이다.

최성욱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1/14 11:25


최성욱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