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테러 참사와 여론의 관심

9월 11일 테러 참사 이후 미국의 언론이 제갈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다루는 주제에 있어서는 말이다. 테러 참사 이전의 주요 뉴스 거리를 보면 캘리포니아주 출신인 콘디트 미 연방 하원의원의 인턴이 실종된 것이 3개월에 걸쳐 연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그 다음에는 버지니아 비치에서 사람들이 상어에 물려 죽은 것이 크게 부각되어, 상어의 성질과 분포, 과연 실제로 인간에 위협이 되느냐에 대하여 온갖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가며 보도되었다.

그전에는 잠시 대통령 선거 기간을 제외하고는 클린턴 전대통령이 인턴인 르윈스키와 벌인 스캔들이 미국 언론의 주요 메뉴였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거나 사회적 심각성을 가진 주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은적은 지난 10년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미국 사회가 안정되었고 국가 질서가 잡혀 있어서 딱히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의 구미를 돋굴 수 있는 사안은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 정도일 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늘 정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정국이 어떻고 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안정된 정치 구도에서의 언론들은 이런 방면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는 구나 하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가 9월 11일 테러 참사 이후에는 언론의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었다. 이제는 테러 대 반테러, 선과 악 (누가 과연 이것을 정의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이에 따르는 전쟁,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도 못하던 병원균에 대한 생물학적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멀리 이슬람 국가 안의 부족들에 대한 인류학적 역사적 고찰도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실제로 중요한 문제가 적절한 관심과 검증도 받지 못한 채국가적 위기 상황보다 우선 순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 있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연방 법무성간에 이루어진 독점 금지 소송에 대한 합의안이 한 예이다.

알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세계 PC 운영체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기화로 하여 운영체계를 팔면서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도 팔았다는 것이 이번 소송의 핵심이며, 미 연방 정부의 입장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PC 제조사들이 경쟁사 제품을 설치하는 것을 방해하여 공익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회사를 둘로 쪼개어 운영체계를 만드는 회사와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1심은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1심 판사가 사건 당사자 한쪽에 너무 기울어져 있어 공정한 판결이 나왔다고 보기 힘드니 사건을 재심리하라고 1심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사건을 다시 받은 재판부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당사자들간에 다시 한번 협상해보라고 권고하였고, 이에 따라 협상하던 도중 이번 테러 사건이 터졌다.

결국 연방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새로 합의한 내용은 PC 제조업체가 경쟁사 제품을 설치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운영체제에서 응용 소프트웨어와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부분을 폭넓게 공개하는 것이다.

합의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분할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갔던 소가 죽지 않고 다시 나온 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게는 유리한 합의 내용인 것이다.

물론 앞으로 공청 기간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판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는 상태이고, 일부 주에서는 연방정부의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다른 결론이 날 가능성도 높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넘어야 할 장벽은 아직 많고 높다.

그러나 새로이 1심 판결을 맡은 판사가 ‘최근의 비극적인 사태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조속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9월 11일 테러 사건으로 커다란 반사 이익을 얻는 또 하나의 대기업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입력시간 2001/11/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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