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봐, 며칠 후 또 바뀔테니"

우왕좌왕 경제정책, 국민·기업들의 정부 신뢰도 '바닥'

중국 대륙에서 7개 나라가 솥발처럼 대립해 전국시대(戰國時代)가 한창이던 기원전 361년.

중국 대륙 변두리에 위치해 7개 나라 가운데 가장 불리했던 진(秦)나라 효공(孝公)은 100여년 후 그의 후손인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초석이 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바로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저한 법가(法家)사상가인 상앙(商 革+央)을 등용한 것이다.

상앙이 전격 등용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법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세 길이 넘는 통나무를 서울 남문에 세워 놓은 뒤 “북문까지 갖다 놓으면 상으로 10금을 준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고 선뜻 그 나무를 옮겨 놓으려 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포고를 내렸다. “북문까지 옮기면 50금을 줄 것이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 나무를 북문에 갖다 놓았고 상앙은 약속대로 그에게 50금을 갖다 주었다.

상앙은 또 태자가 법을 어기자 “아무리 신분이 높더라도 죄는 받아야 한다”며 태자의 부(傅ㆍ태자를 보호하는 소임을 맡은 직위)인 공자건(公子虔)을 처벌하고, 태자의 스승인 공손가(公孫賈)에게는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을 내리는 등 법을 엄격히 적용했다.

이밖에도 상앙은 조금이라도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안에 사는 것을 금지하는 등 철저한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을 펼쳐 진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2,500여년 전 상앙의 고사는 국가의 공권력이나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즉,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얼마나 사실로 믿고 따르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01년11월 한국에서는 2,500여년전 사람들도 익히 알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조변석계, 시장혼란 가중

여야간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적 정쟁(政爭)으로 주요한 경제정책의 내용과 시행시기 등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뒤바뀌고 있다.

또 정부의 불충분한 사전준비, 여론수렴 부족 등으로 정책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시장 혼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기업규제완화, 법인세율 인하, 벤처투자 손실보전, 준조세 경감, 재래시장 활성화 등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이 특별한 설명없이 백지화하거나 시행시기가 무기 연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쟁으로 표류하는 대표적인 정부 정책은 ‘출자총액 제한제도’,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등 기업규제완화.

10월말까지만 해도 정부는 30대 그룹의 계열사 출자를 순자산의 25% 이하로 제한하는 현행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25% 초과분은 의결권을 제한해 허용하는 한편 3년 후에는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완전 폐지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11월초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1월초로 예정됐던 정부와 민주당의 당정회의가 민주당의 내홍(內訌)으로 무기 연기되면서 모든 일정이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와 관련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당의 내부분열로 정치권과 협의해야 할 주요 경제정책들의 추진 일정이‘올 스톱’상태”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내년부터 3,270억원에 달하는 기업의 준조세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지난 4월 여야가 공동으로 내놓았던 준조세 정비방안도 7개월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당시 정치권은 “기업 준조세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획예산처를 호통친 뒤 기획예산처의 협조를 받아 농지전용부담금, 폐기물부담금 등11개 항목의 준조세를 내년부터 폐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관련 법안을 마련했으나, 여야의 정쟁이 격화하면서 법안의 연내 국회통과 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정부ㆍ여당은 현행 법인세율 유지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다수 야당인 한나라당은 법인세를 10% 인하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제출, 재계를 혼란시키고 있다.


여론에 따라 춤추는 준비 안된 정책

면밀한 준비없는 정부의 조급한 정책추진도 경제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재경부는 지난 10월 초 벤처 투자가의 손실을 정부가 30억원 한도 내에서 50% 보전해주는 제도를 내년부터 실시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으나 “실패확률이 크고, 무엇보다도 시장원리가 적용돼야 할 벤처 투자에 대해 손실을 보전하는 것은 반 시장적인 조치”라는 여론의 비난이 잇따르자 아무런 설명없이 도입자체를 백지화했다.

그러나 정작 11월5일 재경부가 배포한 ‘경제정책 용어해설’이라는 자료에는 제도 도입을 백지화시키기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벤처투자 손실보전제도를 100개 유망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로 운용할 것”이라고 밝혀, 투자자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대책은 관계 부처끼리의 이견으로 사업규모가 당초의 20분의 1로 줄어든 경우이다. 정부는 지난 8월에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총 5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으나, 10월말 국회를 통과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에서는 투자재원이 당초의 20분의1인 2,5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방 정부 예산을 관장하는 행자부가 재경부 등의 방안에 반발, 당초 계획에 잡혀있던 5조원 규모의 예산지원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운 것도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정권 말기를 앞두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 역시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11/14 18:21


조철환 경제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