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서 우선 당권 잡고…"

민주당 예비주자들 치열한 샅바싸움

김대중 대통령이 11월 8일 전격적으로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뒤 새 총재 및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문제를 둘러싸고 여당 대선주자들 간에 치열한 ‘샅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총재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해졌으며 대선후보 가시화 시기도 앞당겨질 개연성이 높다.

전당대회와 관련한 주요 쟁점은 ▲전당대회 개최 시기 ▲대의원 수 증원 ▲총재ㆍ후보 분리 문제 등이다. 이 가운데 전당대회 시기는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다. 때문에 지방선거 전에 한차례전당대회를 열어 대선후보와 총재를 동시에 선출할 지, 아니면 내년 1월께 총재를 선출한 뒤 지방선거 후에 별도의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후보를 뽑을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선 후보’를 화두로 설정해 경쟁을 벌일 경우에는 이인제 상임고문이 최강자이지만 ‘총재’ 를 놓고 대결할 경우 이인제ㆍ한화갑 상임고문 중에 누가 더 유리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김 대통령은 총재직을 사퇴하고 평당원으로 돌아가면서 “당무회의결의 하에 내년 있을 전당대회를 포함한 제반 일정과 여타 주요 당무를 성공적으로 처리할 비상기구를 구성해 정권 재창출의 기틀을 마련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침에 따라 총재권한대행을 맡은 한광옥 대표는 11일 조세형 상임고문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약칭 특대위)’를 구성했다.


전당대회시기, 팽팽한 줄다리기

이인제 상임고문 측근은 “내년 2~3월 전당대회를 한 차례 열어 총재와 대선후보를 동시 선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상임고문측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당 간판인 대선후보를 6월 지방선거 전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상임고문측은 지방선거 전에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야 국민 지지도가 높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최대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반면 한화갑 상임고문은 “내년 1월 예정된 정기 전당대회에서 총재를 선출하고, 대선후보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 7~8월에 선출해도 늦지 않다”며 ‘2단계 전당대회론’을 주장하고 있다. 당내 기반은 탄탄하지만 대중 지지도에서 열세인 한 상임고문은 대권 경쟁을 뒤로 미루려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실시된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한 상임고문은 총재 경선을 먼저 실시할 경우 자신과 이인제 상임고문 간에 박빙의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ㆍ김중권 상임고문 등은 지방선거 전에 한 번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와 총재를 선출하자는 것으로 이인제 상임고문의 입장과 유사하다. 노무현 상임고문은 “1월이든 3월이든 전대를 한 번 열어 후보와 총재를 분리 선출하자”고 말했다. 김중권 상임고문도 “3~4월쯤 전대를 한번 열어 후보와 총재를 뽑자”고 주장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내년 1월 예정된 정기 전당대회에서 총재를 뽑고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잘 치른 뒤 7~8월쯤 대선후보를 선출하자”고 주장해 한화갑 상임고문과 비슷한 입장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내년 1월 정기 전당대회를 개최해 총재 등 당 지도부를 선출하고 지방선거 직전인 5월쯤에 후보 선출을 위한 전대를 한번 더 개최하자”고 말했다. 정 상임고문은 ‘2단계 전대론’이라는 점에서 한화갑 상임고문과 비슷하지만, ‘지방선거 전 후보 선출’이란 측면에서는 이인제 상임고문과 맥이 같다.

현재 여권에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로는 이인제 한화갑 노무현 김중권 김근태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있고, 민주당 소속인 고건 서울시장도 종종 거명된다.

총재 경선에는 이인제ㆍ한화갑 상임고문의 출마 가능성이 높고, 김중권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상임고문 등도 출마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광옥 대표가 막판에 다른 사람에게 경선을 관리할 총재대행 직을 넘기고 총재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의원수 증원 불가피 전망

현재 민주당 대의원은 9,354명으로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당시의 대의원 수(1만 2,431명)에 비해 적다. 민주당 대의원 수를 신한국당 보다는 많게 할 것이란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 증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지방의원도 당연직 대의원이어서 지방 의원이 많은 호남 지역 대의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수도권에서도 호남 출신 대의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전체 대의원 중 호남 출신이 70% 에 육박하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현 대의원 제도는 특정지역출신 후보와 특정 계파에서 지원하는 후보에게 유리하므로 대의원수를 10만명까지 늘려 시ㆍ도별 예비선거를 순차적으로 실시하자”고 제의했다.

김근태 상임고문도 예비선거제 도입과 대의원수 대폭 증원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후발 주자들은 기존 우열구도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민심 반영’을 명분으로 대의원 대폭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화갑 상임고문측은 “현행 제도에 별 문제가없다”며 현행 대의원 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동교동계로서 당내 기반이 강하고 지난 해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했던 한상임고문은 기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

이인제 상임고문측은 “대의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 지지도가 높은 이 상임고문이 유리하지만 현실적으로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며 대의원을 5만명 선으로 늘리자는 입장이다.

이 상임고문측으로선 국민 지지도를 감안하면 대의원을 늘리는 게 좋지만 선두주자로서 기존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증원하는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총재ㆍ후보 분리하나?

총재ㆍ후보 분리 문제는 당권ㆍ대권 분리론과 연결된 것으로 정치적 연대 뿐 아니라 대의원들의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이다.

이인제 상임고문측은 “1971년 대선 당시 신민당에서 유진산 총재와 김대중 후보로 분리되는 바람에 대선 운동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며 총재ㆍ후보 분리에 반대하고 있다.

이 상임고문측은 ‘대선후보는 이인제, 총재는 한화갑’이라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전략이다. 이 상임고문측은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대선후보가 총재직을 겸해야 지방선거와 대선을 승리로 이끌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화갑 상임고문도 “총재와 대선후보가 일치해야 효과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상임고문은 총재를 선출하는 1월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뒤 8월 전대에서 대선 후보까지 따낸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 상임고문측은 그러나 총재와 대선후보의 분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한 상임고문측이 당권ㆍ대권 분리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권 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김중권 상임고문도 당권ㆍ대권 분리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상임고문은 총재ㆍ후보 분리를 선호하고 있다. 당권ㆍ대권 분리를 통해 ‘반(反) 이인제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노무현 상임고문측은 “당정분권화를 위해 후보와총재 분리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특대위가 원ㆍ내외위원장들의 의견을 듣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한 뒤 전대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일정 및 지도체제 문제 등에 대한 당내 의견을 수렴해 당무회의에 제안하는 역할을 맡은 ‘특대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대선후보 및 총재 경선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김광덕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1/14 18:34


김광덕 정치부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