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에 시달리는 벤체, 희망이 없다고?

거품 걷힌 벤처업계 취업희망자 외면, 경력자들은 구직난

벤처업계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구직난을 보이는 반면 정보기술(IT)을 필두로 한 벤처업계는 구인, 구직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인력을 많이 거느린 업체들은 구조조정에 몸삻을 앓고 사업이 궤도에 오른 업체들은 지속적인 사업전개를 위한 신규인력 채용이 쉽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다. 그래서 요즘 벤처업체들은 인력이 남아도 걱정, 모자라도 걱정이다.


벤처업계에도 공동채용 바람

벤처업계가 구인난을 겪게 된 이유는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취업희망자들이 인터넷 및 벤처기업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도권 기업은 조금 나은 편이고 지방으로 갈수록이 같은 현상은 심해져 업계안에서도 지역간 편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벤처업체들은 요즘 공동 인력채용을 꾀하고 있다. 일단 장이 서야 사람이 꼬이듯 여러 업체가 모여 떠들썩한 분위기속에 사람들을 끌어모아 뽑아보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대덕지역의 벤처기업들. 대덕밸리벤처연합회은 지난 6일부터 23일까지 일정으로 ‘제1회 대덕밸리 채용박람회’를 개최중이다.

이들은 이 기간에 인터넷 공동 채용홈페이지(www.ddjob.co.kr)를 개설하고 연세대를 시작으로 충남대, KAIST, 한남대, 한밭대 등 수도권과 대전지역 대학을 순회하며 채용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지니텍, 지씨텍, 이머시스 등 대덕밸리에 위치한 13개 업체가 참여해 80여명의 인재를 뽑는다.

이들 업체가 찾는 인재도 반도체장비 생산 관리자에서 항공기모의비행 전문가, 산업용 카메라 전문가, 생화학 전문가, 셋톱박스 시스템 설계자, 게임 개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연합회측은 서류전형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대전시 공무원연수원에서 채용캠프를 갖고 이 자리에서 최종 인원을 선발할 예정이다.


경력자도 일자리가 없다

벤처업계에는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경력이 많은 고참 경력자들도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대기업과 외국기업 위주로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 때문에 실직한 고참 경력자들이 인력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8년이상 근무하며 알아주는 프로그램 개발자로 7,000만원의 연봉을 받던 C(34)씨는 최근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던 중 많은 벤처기업들이 경력자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력이 오래될수록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C씨는 결국 이력서에 자신의 경력을 5년으로 줄여서 적어냈다. C씨는 “많은 IT기업들이 경력 5년차 이상은 부담스러워하기때문에 대부분 경력을 줄여서 얘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해마다 관련인력을 대규모로 흡수했던 삼성SDS 등 대형SI업체들마저 구조조정으로 상당수의 경력직을 정리하고 신규채용은 전면 동결한 채 결원이 생길 때만 경력직을 소수 채용할 방침이어서 벤처업계의 구인, 구직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게임업계도 구직난

게임업계라고 인력난의 한파에서 비껴갈 수는 없다. 수시로 사람을 뽑는 게임업계의 특성상 자리는 많은데 업체에서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은 부족한 편이다. 학원에서 몇개월 교육받은게 전부이고 경력이 전무한 신규인력은 많지만 제 몫을 해낼 2년차 이상의 경력자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게임업체에 취업하려면 1년 이상의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업체 관계자들은 “취직이 힘든 상황에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온라인 게임서비스 운영자나 모니터 요원으로 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추천했다.

요즘 온라인 게임이 늘어나면서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웹젠처럼 운영자나 모니터 요원을 뽑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활용할만 하다.

업계가 원하는 직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게임업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종은 디자이너이다. 동영상이 강화되고 그래픽 기능이 화려해진 게임이 늘어나면서 업계에는 2차원(2D), 3차원(3D) 그래픽을 가리지 않고 디자이너들을 골고루 뽑는 분위기이다.

특히 최근에 모바일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그래픽 전문의 모바일 도트 디자이너를 모집하는 기업도 많다.


사람이 몰리는 대형 IT업체들

대형 IT업체 취직은 과거 대기업 입사 못지 않게 어려워지고 있다. 벤처 및 인터넷기업으로 몰렸던 우수 인력들도 대부분 대형 IT업체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규 및 경력직을 채용한 대형 IT기업들의 채용 경쟁률은 평균 50대 1에서 최대 200대 1로 예년보다 대폭 높아졌다.

신입 및 경력 구분없이 300명을 뽑는 LG-EDS시스템의 경우 1만5,000명이 몰려 5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가운데에는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1,800명으로,전체 응시인원의 10%를 넘었으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항공대 등 소위 일류 대학 졸업생들도 1,500명 이상이 몰려 들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박사급 응시생도 37명이나 되는 등 우수 인력들이 너무 많이 몰려 고민”이라며 “3차 면접을 과거보다 까다롭게 진행해 면접관 4명이 지원자 1명을 20분 이상 집중 면접하는 방법으로 엄선하겠다”고 말했다.

신입 및 경력직100명을 채용하는 한국IBM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9일간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한 결과 1만여명이 응시했다.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이었다.

SK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인 SK C&C의 신규 채용에는 3,080명이 몰렸다. 이 업체는 당초 50명을 뽑을 계획이었으나 지원자가 많아 80명선까지 채용 인원을 늘릴 방침이다.

올해 300명을 새로뽑는 한국통신의 신입사원 공채에도 6,040명이 몰려 2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의 13%인 769명은 석, 박사학위 소지자였으며 토익900점 이상의 어학능력자들도 1,124명으로 전체의 19%를 차지했다.

리눅스원은 최근 비서및 홍보담당자 1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는데 200명이 지원했다. 업체 관계자는 “취업난이 심각해 인력이 대거 응시할 것을 예상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조만간 영어 및 일본어에 능통한 해외마케팅 담당자1명을 모집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상당수 인력이 몰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력 공채에 우수 인력이 몰린다는 소문을 듣고 갑자기 채용 계획을 마련한 업체들도 있다. 쌍용정보통신은 이 달 말 엔지니어 분야의 경력자 위주로 5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원래 이 회사는 올해 채용계획이 없었으나 갑자기 채용계획을 마련했다. 갑작스런 채용 배경에는 직장을 못 찾는 우수 인력들이 늘어나자 이번 기회에 전문가들을 확보하자는 취지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관련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력난이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내년도 인력채용규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최연진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11/14 19:13


최연진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