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17세 '어린왕자'의 세계무대 첫 걸음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22)

형세는 이창호의 절대 유리에서 절대 불리로 바뀌었으나 바둑은 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처럼 서로 실수를 번갈아 가면서 해댄다. 이러다간 마지막 실수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검토실의 분위기는 잠시 한눈을 팔고 나타나면 승부가 바뀌어버리는 기묘한 상황까지 다다른다. 누구도 어느 쪽이 이겼다는 말을 감히 못 꺼낸다. 그 얘기는 반집 승부였다는 말. 반집 승부도 종반으로 치달으며 흑이 가져갔다가 백이 가져가기를 반복한다.

흑이 반 집을 끝내 유리한 상황까지 만든다. 그러나 한가지 길을 이창호가 찾아간다면 반집은 이창호의 몫이 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하는 건 이창호의 끝내기 솜씨. 지금껏 잘 치고 잘 받은 것은 모조리 이제 와서는 소용없다. 마지막 한고비를 이창호가 넘어가느냐 만이 문제일 뿐이다.

과연 17세 한국의 '어린왕자' 이창호의 세계무대를향한 첫 걸음은 웅장했다. 이창호는 경이의 완벽한 끝내기 수순으로 1집 반을 남긴다.

"한마디로 대단한 기사다. 특히 중반 이후 형세판단과 끝내기 솜씨는 당대 제일이다. 다만 기량이 10대에 느는 것이라 생각되는 만큼 이창호도 남은 3년이 기량향상의 마지막 시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진하기를 바란다. 기사는 이미 20대가 되면 기량이 원숙해지므로 좀처럼 기량 향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스승 조훈현은 이창호를 높이 샀다.

드디어 해냈다.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한 10대 세계챔프. 그것도 국제기전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그 바둑을 정통성을 자타가 공인해 온 린하이펑을 맞이하여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어차피 '천재소년 기사'는 양에 찰 수 없는 비유였다. '신동' '괴동' '애늙은이' '강태공' '능구렁이' 등은 세계타이틀을 따내기 전 만해도 이창호를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그러나 17세에 한 손으로 세계를 들어버린 오늘 무시무시한 표현들이 따라다닌다. '터미네이터' '외계인' '기신(棋神)' '신산(神算)' 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또 어떤 이는 "그 옛날 중원 천하를 표표히 떠돌며 기성의 경지를 추구하던 비운의 바둑고수가 가슴에 한을 품고 환생한 넋"이라고 이창호를 설파했다.

17세의 5단 세계챔프가 된 이창호의 라마다 올림피아 호텔에서의 즉석 인터뷰다.

"백을 쥔 게 승인이었다. 바둑을 장기전으로 이끌었던 것이 주효했다. 마지막 1~2집 끝내기까지 시종 불리하다고 생각했으나 나도 모르게 상황이 역전되어 있어서 놀랐다. 최종 순간에 가서야 반 집, 1집반 정도 유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린선생의 기보는 거의 다 보았다. 린 선생의 기풍은 옛날에는 전투를 앞세운 매우 격렬한 바둑인데 요즘은 싸움을 피하고 견실 위주로 나가다가 끝내기 쪽에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그런 면에서 나하고 비슷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창호는 마지막 대목이 시사하는 바 있다. "나무랄 데 없는 바둑을 한번 두어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다."

나무랄 데 없는 바둑이란 것이 무언가. 지금도 가끔 이창호에게서 듣는 그 '나무랄 데 없는 바둑'은 이창호의 목표다. 이창호가 승부사로서는 감히 타 기사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상당한 성과물을 거두어 들였지만 그가 아직도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기에, 후회 없는 바둑을 두어보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후배기사와도 맞붙는 일이 잦아진다.


[뉴스화제]



·류시훈 7단, 기성전 도전권 획득

류시훈 7단이 일본랭킹 1위 기전 기성(棋聖)전 도전자로 나섰다. 류시훈 7단은 11월8일 일본 도쿄 일본기원에서 벌어진 제26기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조치훈 9단과의 '형제대결' 끝에 194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도전권을 획득했다.

기성전은 지난해부터 양대 리그 제도로 본선을 치러오고 있는데, 류7단은 A조에서, 조9단은 B조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기성전 타이틀 보유자는 타이완 출신의 왕리청(王立誠) 9단. 왕9단은 24기 대회에서 조9단에게 기성을 쟁취한 이래 지난해에는 조선진 9단을 도전자로 맞아 2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류시훈마저 꺾는다면 한국기사킬러로 자리매김 할 터.

기성전의 우승상금은 4,200만엔(한화 약 4억5,000만원)이며, 도전7번기 제1국은 2002년 1월 10, 11일 이틀간 영국 런던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11/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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