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84)] 쇼쿠닌(職人)(上)

동네 공장인 ‘마치코바(町工場)’는 일본 경제의 버팀목인 중소기업의 기초단위이다. 더러 컴퓨터도 불가능한 첨단 특수가공을 손작업으로 소화해 내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초기술에 치중한다. 그것이 마치코바의 참힘이자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제조업의 바탕이다.

어느 나라든 기술은 기초기술과 중간기술, 특수기술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피라미드의 바닥이 넓을수록, 즉 기초기술이 충실할수록 기술의 안정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이나 대만 등 아시아 신흥경제와 일본을 비교하는 많은 잣대가 있겠지만 기술피라미드의 모양이 크게 다르다. 한국과 대만의 기술 피라미드는 일본에 비해 훨씬 좁고 뾰족하다.

이런 차이가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는 전자제품을 비교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소니의 워크맨이 세계적 히트상품이 된 이후 국내에서도 비슷한 제품이 잇따라 쏟아졌다. 업체로서는 소형 부품과 아주 가늘지만 질긴 배선, 고음질을 실현할 전자회로의 구성, 겉모습의 디자인 등 중간기술이 큰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면서 느낀 커다란 차이는 겉모습이나 음질이 아니라 ‘재생’ ‘빨리 감기’ 등의 보턴을 누를 때의 감촉이었다. 냉방기도 마찬가지였다. 기능에서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컴프레셔의 모터 회전음의 크기가 너무 달랐다. 플래스틱 보턴을 찍어 내는 금형 기술, 모터축 가공 기술의 차이였다.

금형 제작과 주물, 선반을 이용한 절삭 가공, 표면 연마 등 기초기술은 오랜 세월의 숙련을 필요로 한다. 컬러 TV 제조와 같은 중간기술은 노력하면 모방, 습득이 가능하다.

또 특수기술은 특허료를 내면 살 수도 있고, 시간이 가면 중간기술로 보편화한다. 반면 기초기술은 살 수도 모방할 수도 없다. 오랜 세월의 축적과 전승, 기술 연마에 바친 땀이 좌우한다. 첨단기술에서 5~10년이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기초기술에서는 최소한 30년은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일본 동네 공장의 탄탄한 기초기술은 공장장을 포함한 ‘쇼쿠닌(職人)’, 즉 기능공들이 이어왔다.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이들의 몸에 밴 기술이 ‘쇼쿠닌와자(職人技)’이고 스스로의 기술·기능에 자부심을 갖고 보다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가짐이 ‘쇼쿠닌다마시(職人魂)’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인기, 장인정신이지만 범위가 훨씬 넓고 깊이도 깊다.

일본에서 쇼쿠닌은 모든 육체노동 종사자를 가리킨다. 기능공과 기술자, 전통공예 종사자는 물론 요리사와 정원사, 연주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장인 정신은 이들의 직업윤리로서 정착했고 오랜 세월 이어지면서 오늘날 일본 기초기술의 안정을 불렀다.

쇼쿠닌다마시의 핵심은 분수를 아는 것이다. 분수라는 우리말은 '4.5분', '5분'식으로 매겨 진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점수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공인된 점수, 즉 서열상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런 태도는 더러 자신의 좁은 영역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 권익을 독점하려는 ‘곤조(根性)’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무리를 하지 않는 동양전통의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이어진다.

이런 전통은 일본의 쇼쿠닌사회에 지금도 뿌리깊게 남아 있다. 도쿄(東京) 한복판인 도라노몬(虎ノ門)에 ‘시나노(志なの)’라는 유명한 국수집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 메밀 산지인 나가노(長野)현의 옛이름 시나노(信濃)를 딴 상호지만 한국 손님들은 메밀국수보다는 우동을 즐겨찾는다.

점심시간이면 30분쯤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한국적인 진한 국물맛과 쫄깃한 면발이 일품이어서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

좁은 옛날집에서 3대째 이어져 내려온 이 집은 철저하게 가족 경영이다. 주방의 요리는 할아버지와 아들이, 손님 접대는 할머니와 며느리가 이끌어 왔다. 최근 할머니가 몸이 불편해 자리를 비우자 손녀가 대신 나섰다. 낮 11~2시, 저녁 5~8시 등 두차례의 영업시간에 비는 자리가 없고 가격도 비싼 편이어서 돈을 갈퀴로 긁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점포 확장을 하지 않는다. 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이유에서다.

흔히 우리 교육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의 성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먹고 사는 기준점이 일본과는 크게 다르다. 하루 종일 서서 초밥을 만들어야 하는 ‘스시 쇼쿠닌’의 생활은 정말 밥먹고사는 수준이다. 가족 경영의 식당이나 마치코바도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이런 생활에 만족, 빨리 돈을 벌어 하던 일을 그만두려는 생각에서 벗어날수 있느냐를 따지자면 저절로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계속)

입력시간 2001/11/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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