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대권게임, 치고 나간 노무현

반 이인제 진영 구축할 '4자간 민주개혁 연대' 추진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이 당내 민주개혁 세력의 결집을 목표로 김근태 상임고문과의 후보 단일화 추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노 고문은 15일 기자 간담회를 자청, “우리두 사람 사이에서는 정치적 인식과 이해관계가 엇갈려 단일화 합의가 어려운 만큼 당내 민주개혁 그룹이 내부논의를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해 달라”고 전격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은 미리 준비된 것으로 노 고문은 기자 간담회에 앞서 당내 개혁ㆍ쇄신 그룹에 속하는 신기남 천정배 이종걸 김태홍 이호웅 송영길 의원 등을 만나 자신의 뜻을 전했다. 기자 간담회는 당내 개혁 그룹에 그 같은 제안을 한 이후에 배경설명을 하는 자리로 활용됐다.


이인제 고문과 ‘맞대결 포석’ 관측

노 고문이 김 고문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이 후보 단일화 문제를 기습적으로 공론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 고문은 무엇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자칫하면 후보 단일화의 문제에 있어서 실기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노 고문은 “1월 전당대회든, 3월 전당대회든 전당대회가 지방선거 이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금부터 논의해도 시간이 빠듯하다”며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 고문은 이 같은 제안이 대중적 인기면에서 다소 뒤 처져 있는 김 고문에 대한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떠한 기준으로, 어떠한 결정을 내려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내 입장 자체가 하나의 양보”라며 의도의 순수함을 부각시켰다.

노 고문은 “당내 민주개혁 세력은 그 뿌리나 인연으로 보아 오히려 김 고문쪽에 더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 “반드시 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당내 개혁세력이 패배감에서 벗어나 구심점을 갖고 당 안팎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하려는 충정이 유일한 자신의 제안 배경이라는 것이 노고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노 고문은 “이는 누가 누구를 압박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내가 양보한 만큼 김 고문도 양보하는 부분이 있어야 이 문제가 결론이 난다”고 은연중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노 고문의 정치적 진의가 어디에 있든 간에 이 같은 일련의 선수치기가 이인제 상임고문과의 맞대결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노 고문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경선이 이 고문과의 양강 구도 속에서 치러지기를 희망하고 있고 이를 위해선 이인제 대 반이인제 전선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이인제 진영의 선두에 노 고문이 위치함은 물론이다. 노 고문이 김 고문과의 사이에서의 후보 단일화를 최우선적 목표로 설정하면서도 한화갑, 정동영 상임고문 까지를 아우르는 ‘4자간 민주개혁 연대’를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전체 구도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 준다.

노 고문 진영에서는 벌써부터노 고문을 중심으로 한 연대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역할분담 논의도 무성하다.

즉 노 고문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다는 전제로 한화갑 고문은 당권을 장악하고, 김근태 고문은 국무총리를 맡고, 정동영 고문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 된다는 역할분담론이 그것이다. 이 같은 역할분담론은 이른바 민주당내에서 민주개혁 그룹에 속하는 차기 대권주자들 사이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일거에 정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런 구상이 단기간내에 실현되지 않더라도 노 고문측으로서는 별로 손해볼 것이 없다. 즉 후보 단일화의 문제를 당내 민주개혁 그룹이 결정해 주도록 선 제안을 함으로써 노고문은 자신이 비교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확연히 드러낼 수 있었고 김 고문을 뭔가 찜찜한, 수세적 처지로 몰아 넣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노 고문이 자신의 개혁노선에 걸 맞지 않게 지나치게 타산적인 정치 기술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신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있는 것도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한다.


김근태ㆍ한화갑 고문 부정적 반응

이 같은 제안을 전해들은 김 고문은 첫 반응은 허탈해 하는 웃음이었다. 김 고문은 최근에 노 고문을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때 언뜻 비슷한 얘기를 꺼낸 것도같은 데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며 허탈함의 이유를 설명했다.

김 고문은 그러고 나서 “지금은 당 지도체제 정비를 통해 당 쇄신과 제도개혁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며 완곡하게 노 고문의 제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 고문은 “연대 공론화 시점이 적절하지 않다”고 전제, “공동으로 연대의 방식을 찾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무시한 채 현재당내 위상이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주자들의 역할분담을 논하는 것이라면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 고문은 그러나 “노고문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그런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노 고문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 고문은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시기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하자는 자신의 생각이 후발주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시각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수 밖에 없다. 기세싸움에서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안을 받은 당내 소장 개혁 그룹의 반응은 상당히 엇갈려 있는 상태다. “결국 우리가 중재자로 나서 민주개혁 후보의 상처를 최소화하고 세력 결집을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도 있으나 “두 사람 사이에서 좀더 진지하고 전략적인 논의로 풀어가야지 처음부터 외부에 결정을 맡긴다는 발상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이 같은 연대 드라이브에 대한 한화갑 고문측의 반응은 훨씬 부정적이다. 한 고문의 한 측근은 “이제 막 대권 행보를 본격 시작한 마당에 특정 의도가 개입된 연대 논의엔 반대”라면서 “노 고문=대권, 한 고문=당권을 전제로 이인제 대 반이인제 구도를 의도한 것이라면 논의자체가 빨리 종식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한 고문은 오히려 최근 “동교동계의 단합에 나서겠다”며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좌장으로) 받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 고문의 경선 전략이 다시 신주류측과의 화해를 통한 경쟁력 강화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국민의 지지가 높은 후보’를 명분으로 권 전 최고위원등 신주류측과 교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인제 상임고문측은 “선두를 제치려는 연대는 잘못된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고태성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0 19:27


고태성 정치부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