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해의 中國통신](9) WTO 가입 중국시장의 虛虛實實

‘세계의 공장’ 중국이 11월1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1986년 첫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15년간의 협상과 곡절을 거쳐 이룬 성과다.

WTO 회원국 신분으로 재등장한 중국경제는 한국에겐 도전이자 기회다. 거대한 인구와 영토가 토해내는 저가의 ‘괜찮은’ 상품들은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에 지속적인 위협요소가 된다.

반면 고도성장에 필요한 기술과 원ㆍ부자재 수입증가, 경제성장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소비시장은 ‘메이드 인 코리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WTO 가입은 한국기업의 기존 중국진출 붐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중국이 약속한 WTO 가입조건이 투자여건을 더욱 우호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각종 비관세 장벽이 점차 철폐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가입 5년 후부터 외국기업에게 내국기업과 동일한 무역기준을 적용키로 한 것은 한국 기업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하다.

그러면 중국은 세계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일까. 한가지 질문을 해보자. 중국은 과연 하나의 통일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까. 대답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대외적인 장벽과 별도로 중국 내부 각 지역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인적ㆍ제도적인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부적 장벽은 ‘지방주의’를 가리킨다. 성과 특별ㆍ직할시를 비롯한 각 지방정부가지방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함으로 인해 발생한 장벽이다. 이 같은 현상은 중앙정부가 개혁ㆍ개방 초기 경제효율화를 위해 지방정부에 ‘권력을 분산하고 이익에 대한 자율적 처분권을 양도(放權讓利)’하면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젠 오히려 전국적 시장경제체제 심화에 족쇄가 되고 있다.

지방주의는 지방경제와 기업에 대한 차별적 보호나 특혜의 형태를 띤다. 지방정부가 외래상품 유입을 견제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다른 독자적 제도를 만들거나, 심지어 제품규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외지기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의도적인 차별도 적지 않다. 경제적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중재할 지방 사법기관 역시 지방정부와 보조를 같이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러한 지방보호주의는 외지 기업이 지방간, 또는 지방을 초월하는 전국적 규모의 사업을 전개하는데 큰 제약요소로 작용한다. 지방보호주의에 따른 곤란은 중국과 끈끈한 꾸안시(關係)와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대만 기업인들의 불만에서 잘 나타난다.

“중국에서는점(點)을 만들기는 쉽지만, 선(線)이나 심지어 면(面)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것이다. 이에 따라 타이상(臺商)들은 중국을 하나가 아닌 10여 개의 별도 국가로 보고 경영전략을 짜야 한다는 말을 한다.

중국 중앙정부가 올 4월21일 국무원령 303호로 ‘시장경제 활동에서 지역봉쇄를 금하는 규정’을 발표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 규정은 제1조에서 규정의 목적이 ‘전국통일의 공정경쟁과 질서있는 시장체제’를 건설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규정과 규정의 관철은 별개다. 국유기업 개혁에 따른 대규모 실업, 약체기업 대량 파산 우려 등 문제점을 감안하면 보호주의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지방정부 관리의 승진과 영전도 해당지역의 실업, 경제실적과 연동돼 있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이 WTO체제 하에서 기존 지방주의를 전술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방의 보호주의 관행에 대해 외국이 이의를 제기할경우 ‘중앙에서는 제도적으로 할만큼 했다’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방주의는 WTO 규약으로도 완전히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중국의 개혁ㆍ개방 20여년은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넌다(摸著石頭過河)’는 조심성의 연속이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지금, 조심해야 할 쪽은 한국이다. 중국을 막연히 ‘13억 소비자 시장’으로 생각하면 다친다.

배연해

입력시간 2001/11/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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