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26) 서울대 재료공학부 유한일 교수(上)

"세라믹 소재는 응용분야 무궁무진"

“제가 무슨…”

서울대 재료공학부의 유한일 교수(50)는 정말 겸손한 사람이다. 상투적인 겸양지사(謙讓之辭)의 수준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 “훌륭한 분도 많은데 제가 뭘”이라며 인터뷰를 정중하게 거절하다 간곡한 요청에 어렵사리 응했고 기자의 은근한 부추김에도 불구, 끝내 ‘자기자랑’을 하지 않았다.


과학계 정설 깬 새로운 발견

그러나 유 교수는 괄목할만한 연구자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초전도체(Superconductorㆍ전기저항이 0인 물질로 극저온 상태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를 제외한 어떤 물질에 온도 차이가 발생하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과학계 정설을 깨는 새로운 세라믹 물질을 발견, 세계적 권위의 과학잡지인 네이쳐 지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고, 올해에는 국제세라믹스평의회(ICC)가 선정한 세계 대표 과학자32인에 뽑혔다.

뽐낼 법도 한데도 그는 이에 대해서도 ‘어쩌다 발견하게 됐다’, ‘세계 대표 과학자란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사실 저도 굉장히 당황했어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해 전형적인 세라믹인 티타늄탄화물(Ti3c)과 규소탄화물(SiC)로 새롭게 만들어낸 티타늄규소탄화물(Ti3SiC2)이란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던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온에서 열기전력이 ‘0’을 가리키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물질은 양 끝에 서로 다른 온도의 열을 가하면 내부에 전기, 즉 열기전력(thermoelectromotive force)이 발생한다. 이 같은 현상을 열전(thermoelectricity)현상 또는 19세기 후반 이 현상을 발견한 독일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제벡 효과(Seebeck Effect)라고 부른다. 전기제품에 널리 사용되는 열전소자도이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예외라면 초전도체 뿐이었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어 열기전력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온네스(Onnes)가 발견한 초전도체는 극저온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나타낸다.

물론 80년대후반부터 란타늄 이트륨 비스무스 등 산화물계 고온 초전도체들도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고온은 기존의 초전도체에 비해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일 뿐 여전히 극저온이나 다름 없다.

꿈의 소재로 일컬어지던 초전도체에 대한 관심이 주춤하게 된 것도 초저온을 조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냉각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뭔가 잘못 된 것 아닌가’하고 반신반의하며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초전도체가 아닌 티나늄 규소탄화물이, 그것도 상온에서 550도의 고온까지 넓은 범위에서 열기전력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보통의 세라믹은 높은 온도를 잘 견디지만 갑자기 차가워 지면 쉽게 깨진다. 변형도 잘 안되고 외부충격에 약하다. 반면 금속은 마모가 잘 되고 높은 온도에서 쉽게 녹는다.


세라믹과 금속의 장점 겸비

티타늄규소탄화물은 세라믹과 금속의 장점을 겸비하고 있다. 세라믹이면서 전기와 열을 잘 통하고, 큰 온도변화를 줘도 잘 깨지지 않는다.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하기도 쉽다.

열에도 강하고, 마모도 잘 견뎌야 하는 항공모터나 높은 효율이 필요한 정밀 전자회로, 반도체 리드선, 연료전기 커넥터 등 많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현상과 소재가 발견되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응용이 창출돼 온 것이 과학기술의 역사입니다. 응용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응용분야는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지만 그 현상에 대한 이유를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전의 이유로는 광범위한 온도범위에서 열기전력이 0이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엔트로피(열역학에서 사용되는 상태함수의 하나)의 합이 같아져 열기전력이 상쇄된다는 가설을 세계 과학계에 제안해 두었지만 아직 자신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저의 한계인지 몰라도 쉽지 않네요. 규명을 하기는 해야 할 텐데…”

그의 세계적인 발견에도 불구, 국내의 후속 연구는 활발한 편이 아니다. 이에 비해 선진국의 많은 연구자들은 ‘쌍심지’를 켜고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응용분야에서 무궁무진한 ‘대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재료공학은 공학 분야 중 기초과학에 가장 근접한 학문분야다. 물리와 화학을 융합ㆍ응용하자는 취지에서 1960년대 미국에서 태동했다. 공대 소속이면서도 재료공학부의 영문이름(school of materialscience and engineering)에 과학(science)이란 말이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만큼 학문간 협조가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고체산화물연료전지 연구에 몰입

이런 점에서 유 교수가 국가지정연구실사업에서 탈락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계 인사들은 “유 교수의 연구분야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장비가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라며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분야전문 학술지인 네이처 지(2000년10월호)에 학술논문이 실렸고, 세라믹 신소재 발견 공로로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이달의 과학기술자상(20001년2월)을 수상한 그가 내리 3년 1차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1차 평가는 5쪽 분량의 기술제안서를 놓고 평가하기 때문에 연구의 질이 떨어져도 글짓기 능력이 뛰어난 연구자들이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받고, 세계적인 업적을 쌓고도 자기PR능력이 부족한연구자들은 탈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어디서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냐”며 “할말이 없다. 지금 연구하는 것도 국가의 돈(서울대는 국립대임)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5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유 교수는 검정고시로 70년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한 뒤 84년 미국의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5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는 세계 재료공학의 ‘비조’로 꼽히는 칼 와그너 교수. “제가 공부했던 MIT 교수를 역임하셨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60년대까지 재임하신 까닭에 사실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 놓은 학풍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에 대해 배운 셈입니다.”

“단전호흡과 등산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학교 연구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요즘 차세대 에너지로 꼽히는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lid Oxide FuelCell)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11/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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