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外

“내가 이 말을 어떻게 해야 되나? 이 말을 해야 되나? 또 은근히 기대들도 되시죠? 자…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좋습니다.”

여배우 서주희의 짐짓 다소곳한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객석의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그렇게 관객을 충분히 감질나게 했다면 연극 ‘버자이너 모노로그’의 도입부는 성공적이다. 도대체 뭐길래? 무대속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이 연극 제목이 뭐죠? 네, 버자이너 모놀로그, 맞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보지의 독백입니다. 보지. 네, 드디어 제가 이 말을 했습니다. 충격적인 단어죠.”

그래, 충격적이다. 대학로 뒷골목에선 삐끼들이 오늘도 벗기기 연극으로 사람을 꾀고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의 ‘X’ 수위는 경쟁적으로 높아만 가는 현실이지만, 아직 우리의 공식석상에서는 금기의 언어다. 저 단어를서주희는 어떻게 끌어 내 오나?

“우리의 모든 신체 부분은 각자 고유의 이름을 가자고 있지요. 머리, 팔, 가금, 어깨, 엉덩이, 항문…. 그러나 딱 한 부분, 대놓고말할 수 없는 곳이 있지요. 여러분 이곳은 보지입니다.” 우리 사회의 강고한 편견 또는 허위 의식에 대한 도전이다.

이 연극은 한 여인이 어릴적부터 알게 모르게 겪어 온 성적 차별을 10개의 성장 에피소드에서 풀어 나간다. 이 연극은 왜 여성기에 집착하는가?

서주희의 독백을 들어 보자. “이 사회는 유교적 기준때문에, 여성을 비하하는 가부장 중심 사회의 잔재 때문에, 아니면 성기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는 우리 스스로의 속박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 하고, 인정하지 못 하고 기억하지도 못 합니다.”

연출을 맡은 이지나씨는 “감춰지고 왜곡됐던 여성의 성을 솔직하고 건강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말한다. 극중 여인은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를 만들어 낸다”며 우선 역사속으로 파고 들어 간다. 이름하여 ‘보지에 관한 사실’.

16세기 마녀 재판 당시 클리토리스가 ‘악마의 젖꼭지’로 몰려,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보여주고 저주받았다는 사실(史實)이 그것이다. 이어 무대는 그 여인의 현재가 있기까지, 그녀의 성기를 둘러 싸고 벌어졌던 몇 가지 사실(事實)을 가감없이 펼쳐보인다.

남편이 싫어하니까 아픔을 무릅쓰고 음모를 밀었던 이야기, 첫 월경때의 당혹스로움 등을 말하던 이 연극은 섹스라는 테마에도 당당하게 맞선다. 여성도 쾌락으로서의 섹스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첫 데이트 때 차안에서의 애무에 자극돼 시트까지 흠씬 적셨던 일(‘홍수’), 섹스할 때 자신이 얼마나 쾌락의 신음을 지르는 지에 대한 독백(‘보지의 행복을 사랑하는 여자’), 성에 대한 벼라별 정보가 난무하는 요즘이야말로 성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보지 워크숍’) 등이 객석을 향해 난사된다.

서주희는 1996년 한국연극협회 평론가 선정 최고 여자 연기상으로 혜성 처럼 등장한 이래, 1997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최우수여자 연기상, 1999년 문화관광부 좋은 연극 만들기 최우수 연기상 등 주요 연극상을 석권해 왔다.

‘레이디 맥베스’, ‘이 세상 끝’ 등에서 주역으로 분, 또렷한 발성과 도발적 수위를 넘보는 연기로 객석에 깊은 인상을 심어 왔다.

성을 매개로 해, 유쾌하고도 진지한 담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될 기회이다. 2002년 1월 13일까지 대학로 컬트홀.화~목 오후 7시 30분, 금ㆍ토 오후 4시 7시 30분, 일 오후 4시.(02)516-1501.


[연극]



ㆍ'배장화 배홍련'

극단 물리는 ‘장화홍련뎐’을 현대의 시청각적 어법으로 새생명을 불어 넣은 ‘배장화 배홍련’을 공연한다. 현대적 영상과 음악의 힘으로 거듭난 고전 소설인 셈이다.

중견 시인 배무룡의 집에 갑자기들이 다친 비극을 꼬투리로, 이 가족 내부에 숨어 있던 비극의 씨앗들을 파헤쳐 가는 연극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중산층 가정의 실상을 볼 수 있다.

윤소정 정동환 등 중견 배우의 노련한 연기에 김영민 정수영 등 젊은 배우의 활기가 더 해진다. 타악그룹 공명의 참신한 음악에, 프랑스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송은주의 무대와 의상이 어우러져만들어 내는 못 보던 효과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 15~25일 문예회관소극장, 월~목 오후 7시 30분, 금ㆍ토 오후 4시 7시 30분, 일 오후 4시.(02)765-5475


[콘서트]



ㆍ여류 클래식 기타리스트 샤론 이즈빈 내한공연

미국의 여류 클래식 기타리스트 샤론이즈빈이 내한 공연을 갖는다. 토론토 국제콩쿨(1975년), 뮌헨 국제 콩쿨(76년) 등에서 시타리스트로는 최초로 최우수상을 따낸 사람이다. 99년 그래미상 후보로 오르더니, 2001년 ‘Dreams Of A World’로 최우수 기악 독주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타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로는 28년만에 처음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전통 민요를 5곡의 소품으로 만든 ‘애팔래치아의 꿈’, 이스라엘 제 2의 국가로도 불리우는 ‘4개의 노래’, 아프리카 민요를 바탕으로 한 ‘검은 데카메론’ 등 최근작이 공연의 하일라이트.

그라나도스의‘스페인 무곡’,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 익히 알고 있는 기타의 명곡도 연주된다.12월 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720-6633


ㆍ한일 국악관현악 축제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둔 한국과 일본이 ‘한ㆍ일 국악 관현악 축제’를 펼친다. 국악 원형 찾기와 상처 치유하기를 테마로 내건 이번 연주회는 모두 2부로 나눠진다. 1부에서는 일본의 ‘신야치요지시(新八千代獅子)’와 우리의 ‘시나위’가 펼쳐지는 전통 마당이다.

2부는 전통에 근거한 창작품들이 선보인다. 한국의 ‘가야송’과 일본의 ‘혼(魂)을 번갈아 연주하던 양측은 합동 연주곡 ‘백(白)’을 협연, 대미를 장식한다(박범훈 작곡). 한국에서는 박범훈 지휘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일본에서는 다무라 다쿠오(田村拓男) 지휘의 일본음악집단이 등장한다. 26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해오름극장.(02)2274-3507


[영화]



ㆍ공산 포로 이야기 '흑수선'

그동안 금기 구역이었다 시피해 온거제 포로수용소의 공산포로 이야기를 정면에서 응시한다. 태원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흑수선(BlackNarcissus)’은 50년을 비전향 장기수로 살아 온 황석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되돌아 본다.

이정재 이미연 안성기 정준호라는 호화 케스트 외에도, 거제시와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됐던 6,800평의 포로 수용소가 커다란 화제로 떠올랐던 영화다. 한강에 떠오른 한 구의 시신에 얽힌 비밀을 풀어 가다, 거제 포로 수용소의 비극과 맞닥뜨리는 형사(이정재). 그의 시선에 의해 이념 분쟁을 둘러 싼 우리 현대사가 살아 온다. 감독 배창호.


[재즈]



ㆍ만추에 듣는 재즈

바흐의 재즈화라는 기치 아래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의 재즈 캄보 자크 루시에 트리오가 만추의 각별한 기억을 만들러 온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G선상의 아리아’, ‘골트베르크 변주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 등 바흐의 명곡은 물론, 귀에 익은 클래식이 재즈로 연주된다. 사티의 ‘짐노페디’, 라벨의 ‘볼레로’, 드뷔시의 ‘달빛’ 등이 재즈의 날개를 탄다.

바흐 서거 250 주년이었던 2000년, 이들은 바흐의 걸작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특유의 재즈로 만들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음반 발매 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피아노에 자크 루시에, 드럼에 앙드레 아르피노, 베이스에 베노이트 뒤누아예. 30일 오후 7시 30분 현대 기아자동차 아트홀. (02)3464-4998


[무용]



ㆍ수험생들을 위한 무용공연

아하(AHA) 댄스 시어터가 수험생들의 공허한 마음을 메꿔 준다. 공부가 걸림돌이 돼 예술에의 통로가 차단돼 왔던 청소년에게는 해방의 소식이다. ‘유한하므로 그립다’, ‘의자’, ‘거미줄에 걸린 꽃잎’ 등이 공연된다.

특히 ‘거미줄…’은 ‘심청전’을 현대적 시선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한(恨)의 정서가 우리 시대에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 춘천:29일 오후7시 춘천 문화예술회관(무료), 서울:12월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교육문화회관(수험생일 경우, 수험표 지참시 무료).(02)3673-2502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7 11:16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