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제주 서귀포시

흔히 ‘서귀포 70리’라고 한다. 남인수씨가 부른 같은 제목의 옛 노래(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덕분일까. 노래 이전의 기록이 있다. 조선때 지어진 탐라지(1653년)에는 ‘정의현(旌義縣ㆍ지금의 성읍)의 서쪽 70리 지점에 서귀포가 있다’고 적혀있다.

서귀포 사람들의 견해는 또 다르다. 서귀포 해안선의 길이가 70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서귀포 앞에 떠 있는 4개의 섬을 연결하면 70리라는 주장도 있다. 해석이 구구하기 때문인지,‘70리’는 단순한 거리적 개념을 넘어서는 것 같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모든 사람의 꿈’을 의미하는 수치로 다가온다.

‘이상향 70리’의 탐구는 해안선에서 시작한다. 뜨거운 용암이 찬 바닷물과 섞이면서 만들어진 해안선은 거칠다. 사나운 짐승이 마구 할퀴어 놓은 모습이다. 그래서 신비롭다. 압권은 중문동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이다. 이 곳 사람들은 지삿개 해안이라 부른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돌 내부가 결정화했다가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전국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삿개의 주상절리는 평범하지않다. 돌의 색깔은 섬뜩하리만치 검다. 검은 돌은 육각기둥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자로잰 듯 정교하다. 수만 개의 기둥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다. 정확하게 위에서 내려다 보면 거대한 벌집의 형상이다. 바다에 가까운 것일 수록 파도에 쓸려 낮아졌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는 계단처럼 드리워져있다.

해안선 제2경은 외돌개이다. 20㎙높이의 기둥바위로 뭍과 떨어져 외롭게 서있다고 해서 외돌개란 이름이 붙었다. 장군석으로도 불린다. 고려말 제주도를 침략했던 오랑캐가 최영 장군의 군대에 밀려 외돌개 앞 범섬까지 달아났다.

최영 장군은 외돌개를 거대한 장수로 치장했고 오랑캐는 그 기세에 눌려 모두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귀포의 해안은 모두 검은 색일까. 유일하게 흰 곳이 있다. 중문해수욕장이다. 중문관광단지에 들어있는 이 해수욕장은 그래서 분위기가 독특하다. 활처럼 굽은 긴 백사장은 검은 절벽의 호위를 받고 있다. 사시사철 윈드서핑의 오색물결이 파도를 가른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폭포가 있다. 천제연, 천지연, 정방, 소정방, 엉또폭포 등 제주를 대표하는 5개의 폭포가 모두 서귀포시에 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천지연폭포. 서귀포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분쯤 들어가면 물소리가 들린다.

천지연 계곡에는 천연기념물 제163호인 담팔수가 자생하고 있으며 물 속에는 천연기념물 제27호인 무태장어가 서식한다. 무태장어는 길이 2㎙, 무게 20㎏이 넘는 것도 있다. 폭포 입구에 커다란 광장을 만들어 놓았다. 각종축제가 이 광장에서 열린다. 서귀포문화의 중심인 셈이다.

해안을 돌아봤으면 산을 오른다. 서귀포시에서 한라산에 오르는 길은 영실 코스. 아쉽지만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돼 백록담의 문턱인 윗새오름밖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4개의 한라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 송곳 같은 돌봉우리가 도열해 있는 영실기암, 거대한 주상절리 덩어리인 병풍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한라산 등반에서 중요한 것은 수시로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 오름과 들판, 서귀포 시가지, 앞바다의 섬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상향 ‘서귀포 70리’가 아득한 꿈처럼 펼쳐진다.

<사진설명>서귀포시에서도 드문 백사장인 중문해수욕장.연인들이 밀어를 나누기에 좋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11/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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