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84)] 반도체와 인간세포의 결합

과연 공상과학과 현실의 간극은 얼마인가? 날이 갈수록 무너지는 공상과학과 현실의 장벽을 보면서 어쩌면 이제 공상과학이 현실에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된다.

반도체 칩과 생물의 신경세포와의 결합이 드디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초보수준이다. 생물학과 컴퓨터공학의 결합, 그래서 신경전자공학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와 신경세포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칩은 신경신호로 움직일 수 있는 의족(신경의족)의 생산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손상된 뇌세포의 치료(이식), 바이오센서, 그리고 나아가 생명체를 흉내낸 생물컴퓨터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지난 8월 발표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피터 프롬레르츠 팀은 달팽이의 신경세포를 실리콘 칩에 올려서, 칩과 칩 그리고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하는 전자회로를 완성시켰다. 칩에 전기신호를 주었더니, 칩과 신경세포를 타고 신호가 전달되었고 전체 회로가 작동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성공이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크리스틴 스미트 팀이 인간의 신경세포와 반도체 칩의 결합을 이루어냈다. 이들은 펩타이드(단백질 절편ㆍpeptide)를 이용해서 신경세포와 양자 점(quantum dots)이라고 불리는 작은 반도체 결정을 연결시켰다.

단백질 절편(peptide)의 한쪽은 신경세포의 표면에 달라붙고, 다른 한 끝은 반도체의 표면에 달라붙는다. 신경세포와 전자 논리 장치는 이 펩타이드를 연결선으로 해서 전기신호를 주고 받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겠지만, 신경세포는 전자적으로 조절될 수 있으며, 스스로가 전자회로이기도 하다.

펩타이드의 한 끝은 인간의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인테그린'이라는 특별 단백질을 잡는 화학적 고리를 가지고 있고, 다른 끝에는 황을 가진 화학적 그룹이 반도체의 카드뮴 황과 결합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펩타이드를 이용해서, 신경세포의 표면과 반도체의 3나노미터(밀리미터의 백만 분의 3)에 불과한 카드뮴 황 나노결정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소위 ‘기계와 인간의 결합’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 과연 이것이 장차 인공두뇌라고 할 수 있는 생물컴퓨터 개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마이크로 칩 보다 연산능력이 좋을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생물학과 전자공학의 적절한 교배는 잘 응용할 경우 신체 장애자를 위한 보다 첨단화되고 친생물학적인 장비의 개발을 가능케 할 것은 분명하다. 의족일 경우 단순한 장구의 착용이 아니라 장구자체를 신체에 이식해서 직접 뇌 신호로 이 의족을 조절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 미량의 물질을 감지하는 초고감도의 바이오센서의 개발에도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신경세포와 반도체 사이에 연결이 아직은 어설프기 때문이다. 신경세포가 성장을 계속하게 되면 돌 위의 이끼처럼 반도체의 모든 표면을 덮어버리고 전자회로는 통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성장과 함께 세포의 위치가 이동된다는 점도 난제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연결은 기계적인연결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회로자체가 불안정하다.

아직 상당부분 공상과학 쪽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서서히 현실화될 것은 분명하다. 인간과 기계의 완전한 결합, 왠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인간인지 기계인지 모호할 지경까지 가서는 안되겠지만, 장애자를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그리고 기계자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기계장치로서는 연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11/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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