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번역서비스가 돈을 몰고 온다

글로벌시대 영어비중 축소, 비영어권 현지어사이트 구축으로 큰 수익

번역서비스가 성업중이다. 영어를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달라는 의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임원들은 영어가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국제언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세계 인구는 60억명. 이중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영어를 보조언어로 구사하는 인구까지 포함해 지난 20년간 2배 가량 증가했지만 여전히 세계인구의 3분 1 정도에 불과하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공항과 호텔에는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있는 사람이 있고, 놀라울 정도로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비영어권 지역의 회사 임원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서비스업종 중 유일하게 호황

미국 사람에겐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외국인 웨이터와 인사말을 나누는 것과 해외에 물건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기업들은 돈을 덜 쓰면서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고 있다.

기업들은 해외의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 주식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번역하고 있다. 이 덕에 번역서비스회사들은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브라운 글로벌 솔루션(BGS), 라이온브리지 테크놀로지, 벨리츠 글로벌네트 등주요 번역 회사들은 테러리즘 전쟁의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인근 국가와 계약을 많이 맺을 것이며 이 때 아랍어나 파슈툰어 번역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는 이 신흥 업종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번역서비스는 더욱 번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업들이 이제 외국을 상대로 거래를 해서 이익을 남기려면 고객의 모국어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고있다.

BGS의 마케팅 담당 이사인 도날드 플럼리는 “외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그 지역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현지의 기업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당신이 설령 좋은 제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고객들이 이 제품을 이해할 수 없다면 질 수 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현지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비중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2000년 센서스(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만 전체 인구의 18%가 집에서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개 주이면서도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경제 주체인 캘리포니아 주는 이 수치가 무려 40%에 달한다.

인터넷 상에선 바벨탑이나 마찬가지다. 탑을 쌓아올리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됐다는 성경의 이야기처럼 인터넷에는 세계 각국의 온갖 언어들이 등장하다.

1997년에 웹사이트를 서핑하는 사람의 77%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48%로 뚝 떨어졌다. 한 조사업체에 따르면 이 같은 비중 2003년까지 32%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사람들은 웹사이트가 친숙한 언어로 꾸며져 있을 경우 더욱 강한 구매의사를 나타낸다. 아마존, 이베이, 야후 등 인터넷 쇼핑의 선두주자들은 이 같은 성향을 일찌감치 간파해 현지어로 된 해외사이트를 만들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아직도 비영어권 고객을 상대로 한 인터넷 쇼핑사이트를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다. 한 리서치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포춘 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 중 37개 기업은 영어로 된 사이트만 운영할뿐 외국어 사이트를 갖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번역서비스를 찾는 미국 기업도 늘고 있다. 2006년까지 번역서비스시장 규모는 12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며 번역서비스 기업들은 매년 30%씩 초고속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외시장 개척에 필수 요소

견인차는 인터넷과 기술관련 서비스다. 어센쳐, 시스코, 오라클 등 세계 각지에 직원을 둔 기업들은 인증서와 교육교재를 번역해 ‘기업 대학’으로 불리는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소프트웨어구입자들도 웹사이트를 통해 자국어로 된 도움말과 사용설명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웹사이트를 다국어로 운용하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경우 웹사이트 상의 매장을 포르투갈어와 중국어를 포함한 11개 언어로 꾸며 두었다.

캘리포니아 주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기업인 ADAC연구소는 얼마전 자사의 기술자료를 이탈리아어로 급히 번역해야 할 일이 생겨 당황했다.

하지만 벨리츠에 의뢰, 10일만에 번역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거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와 프루덴셜도 최근 라이온브리지에 의뢰해 조사보고서와 시장자료를 일본어와 독일어 등으로 번역했다.

라이온브리지의 로리 코완 사장은 “수십억달러짜리 계약과 관련된 문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컴퓨터 기업인 IBM도 노트북 사용자를 위한 기술지원 웹사이트를 22개국 언어로 운용하고 있다. 효과는 만점이다. 다국어 웹사이트 덕에 지원센터에 배치해야 할 인력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완 사장은 “IBM은 아마도 연간 2,000~3,000만 달러 정도의경비를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번역은 큰돈이 되지 않는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번역서비스업체들이 고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분야는 영문으로 된 소프트웨어나 웹사이트를 각국의 언어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운영논리까지 전환시켜야 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크다.

업계에서는 이를 현지화라고 부르고 있다. 라이온브리지 등 상당수의 번역서비스회사들은 매달 외국어로 된 고객의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현지어로 된 고객의 자료를 관리해주는 콘덴츠 매니지먼트도하고 있다.

BGS의 최대 고객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는 250억 달러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번역서비스 업체에게는 세계 최대의 현지화 서비스 고객이라고 할 수 있다.

MS의 모든 소프트웨어 제품과 웹사이트, 도움말 자료, 3만3,000건에 달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은 수십 종류의 언어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선보인 윈도우XP만 해도 25개국어로 시판됐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MS의 현지화 예산은 3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번역서비스는 미국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가속화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통신으로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랜즈 엔드는 35~45%의 수익을 외국에서 올리고 있다. 외국어를 구사하는 유럽 등 외국 현지의 직원이 주문을 받아 미국본사로 넘겨주고 있다.

이 회사는 얼마전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웹사이트를 개통, 주문처리에 투입된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있다. 호화유람선회사인 로열캐러비언은 일본인 등 외국인 승객을 더 유치하기 위해 승무원들이 24시간 외국어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번역서비스를 제공받기로 했다.


고도의 전문성 필요, 시장 갈수록 확대

번역서비스 회사들은 점차 특화되어 가고 있다. 라이온브리지는 비영어권 사용자를 위한 소프트웨어 인증과 테스트에서, 벨리츠는 마케팅 분야에서 명성을 쌓고 있다.

또 영국의 SDL과 이탈리아의 로고스는 유럽지역에서, 교세라와 소니를 주고객으로 확보한 일본의 토인과 홍콩의 리얼 아이디어는 아시아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업체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고도의 전문성과 언어의 다양성 때문에 특정회사가 세계 번역서비스 시장을 독식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번역서비스 시장은 갈수록 커질 것만은 분명하다. 기업에 더 많은 이윤을 안겨 줄 수 있기때문이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11/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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