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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싸움

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싸움

외국인 바이 코리아 국부유출, 신용등급 상향 등 '내부자거래'의혹

“그동안 외국인이 왜 그토록 왕성한 식욕으로 우리나라 대표주를 사 들였는 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결국 국가신용등급 상향이라는 초대형 호재를 외국인은 다 알고 있었는데 국내 기관들은 전혀 몰랐던 겁니다.”

“외국인들은 이미 두달전부터 알고 있었던 같아요. 그들만의 정보 독점에 무기력을 넘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상태입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BBB→BBB+로 한단계 상향 조정하던 날(11월13일) 국내 기관 펀드메니저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뒤통수 맞은 국내 기관들 뒤늦게 허둥지둥

9월말부터 외국인이 3조원 가까운 순매수를 계속하는데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국내 기관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이날 비로소 ‘아하, 그랬구나’라며 무릎을 쳤다.

외국인이 순매수를 하는 동안 국내 기관들은 오히려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1조원 가까운 순매도로 일관했다.

외국인이 ‘바이 코리아’를 외치는 이유를 국내 기관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셈이다. 실제로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발표된 날 외국인은 그동안의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매물을 쏟아 냈고 국내 기관들은 허둥지둥 거리다 뒤늦게 매수세에 나서는 한 편의 촌극을 연출했다.

국내 기관 펀드메니저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국인들이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재료를 미리 알고 선취매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S&P에 유독 유태계가 많다는 사실과 외국인 순매수 랠리의 선봉에 섰던것이 바로 유태계 헤지펀드였다는 사실은 외국인의 ‘파워 이너 서클(Power Inner Circle)’안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재료가 미리 유포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신용평가기관, 헤지펀드 뿐 아니라 미국의 세계 금융정책 입안 핵심 브레인 및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실세 등도 모두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일종의 내부자 거래 정보로 막대한 부를 취했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특히 이러한 파워 이너 서클 가운데 우리나라와 관련, 미국 칼라일그룹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파워 엘리트 집단들이 포함된 칼라일그룹이 향후 우리나라의 금융, 증권, IT산업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미 파워펀드 칼라일 그룹 동향에 촉각

칼라일 그룹은 미국의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비롯, 당시 각료였던 칼루치 전 국방장관, 베이커 전 국무장관등이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세계적인 파워 펀드 그룹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 이미 한미은행의 대주주인데다 앞으로 국내 주요 금융기관의 인수 합병이나 각종 펀드 조성에도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칼라일그룹은 원래 군수펀드 등에 전념하는 2류 펀드그룹이었으나 점차 각종 파워엘리트 그룹이 참여함에 따라 사세를 확장, 지금은 존 메이저 전 영국총리, 칼 오토 폴 전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 등도 투자하고 있는 세계 일류의 슈퍼펀드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이던 아서 레빈과 연방통신위원회 의장이었던 윌리엄 케너드가 각각 칼라일그룹 고문과 이사로 자리를 옮긴 뒤 지금까지 무기, 방위, 화학 등의 펀드 투자에서 탈피해 금융, 증권, 통신 등의 분야에도 새로운 투자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인사 중에는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가 자문역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 주요 정ㆍ관계 전직인사 가운데 2~4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기업정보·외국인에 유출의혹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문제처럼 국가별 사안만 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정보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이야 어차피 외국인이 주인인 S&P에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최근에는 국내 개별 기업에 대한 정보도 외국인들에게 사전 유출되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돼 국내 투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LG전자가 지주회사인 LGEI와 사업부문인 LG전자로 분할된다는 정보가 외국인들에게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LG전자 분할 관련 정보가 외국인들에게 미리 새 나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외국인이 발표직전 LG전자를 대거 사들인 정황 때문.

11월7일 23.31%였던 LG전자 외국인 지분율은 기업분할 발표 당일인 15일에는 25.41%까지 증가했다.7일간의 거래에서 외국인은 무려 300만주 가까이 사들인 것이다. 같은 기간 주가는 1만3,950원에서 1만7,450원까지 치솟았다.

특히 외국인은 발표 이후인 16일에는 30만주 이상 매도 물량을 내 놓으며 차익을 실현했다. 이에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의 발표 전후 매매 행태를 보면 외국인은 LG전자 분할 관련 정보를 미리 입수, 선취매를 한 뒤 발표가 나오자 판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관이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완전히 허를 찔린 꼴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LG전자 주가가 오르자 “삼성전자나 SK텔레콤을 더 이상 매수하기 부담스러워진 외국인이 점차 옐로우칩이나 2등주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궁색한 설명을 붙였다.

그러나 15일 오후 1~2시 각 증권사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이메일을 통해 기업 분할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에 대해 LG전자측은 “사전 정보 유출설이 제기돼 조사를 벌인 결과 전혀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외국인들이 분할 발표를 미리 알고 샀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책 마련 시급

물론 국내 기관 및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정보 무능력을 애꿎은 외국인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외국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국가부도에 직면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국가 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한단계 상향 조정된다는 재료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상향조정 이후에도 외국인이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반증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이미 자본시장을 개방한 상태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 국수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의 입장이라는 반박도 만만찮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음모론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 안정적인 투자를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가 바로 부를 창출하는 현대 자본시장에서 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정보 차별은 결국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제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은 외국인과의 정보 싸움에서 판판이 깨지고 있고 이러한 정보력의 한계가 결국 외국인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고 있다”며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도 “반도체 팔고 자동차 팔아서 힘들게 달러를 벌어도 자본시장에서 한번 당하면 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뺏앗기는 꼴”이라며 “국가정보원이 보물선을 찾는 허황된 일 대신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고급 정보를 찾아 다니는데 힘을 썼더라면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이 오히려 외국인들만의 잔치가 돼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경제부기자 ikpark@hk.co.kr

입력시간 2001/11/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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