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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세' 밀어붙이기가 대선전략?

'63세' 밀어붙이기가 대선전략?

한나라당 순수한 원칙론인가, 아니면 계산된 대선 전략인가

11월 21일 오후 4시20분.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실은 고함소리로 가득찼다. 김덕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위원장, 위원장”을 외치며 한나라당 소속인 이규택 교육위원장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1999년 DJ정부가 교육개혁 차원에서 65세에서 62세로 낮추었던 교원정년을 다시 62세에서 63세로 늘리는 내용의 교육공무원법이 상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위원장은 여당의원들의 발언을 못들은 체 했다.

그는 곧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 즉시 여당의원들은 “ 힘있다고 그러지 말라” “교육은 죽었다”고 소리치며 전원 퇴장했고, 야당의원 석에선 “표결하기로 합의해놓고 왜 그래” “정치 쇼 좀 그만해”라는 맞고함이 터졌다.

결국 표결은 전체 교육위 위원16명 중 민주당 의원 7명이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 9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고, 정치권에선 ‘거야(巨野)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개혁 되돌리기인가?” 비난 빗발쳐

그러나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교원정년을 되돌린 야당에 대한 여론의 집중 포화가 이어졌다. 교원정년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되돌리느냐는 원칙적인 문제는 어차피 사회적 논쟁거리였지만 ‘고무줄 정년’을 만들어 논 모양새가 더 여론을 긁은 셈이었다.

특히 2여공조 붕괴, 10ㆍ25 재보선의 야당 완승으로 이어진 여소야대 정국 상황에서 야당의 첫 위력 과시는 국민의 여론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더욱이 ‘교원정년 62세’는 현정부가 각종 반발을 무릅쓰면서 밀어부친 교육개혁의 상징적인 조치였기에 야당의공세는 ‘개혁 되돌리기’의 신호탄으로 비쳐졌다.

한나라당은 여론의 반발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교육공무원법 본회의 처리할 것이라는 원칙론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은 한결같다. 이는 “현정부가 개혁이란 명분으로 망쳐놓은 잘못된 개혁을 원상 회복시킨 순수한 동기”라는 것이다.

“나는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가 아니다. 여론이 나쁘다고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그만두려면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만제 정책위의장)

“우리가 절대 정치적으로 무리한 것이 아니다. 우리 당은 15대 국회에서 여당이 62세로 정년을 낮출 때에도 당론이 63세였다. 당시 여당은 우리와 63세로 하기로 합의해 놓고 갑자기 어디서 전화 한통 받고 이를 되돌렸다. 힘이 없던 우리는 당시에 법안을 통과를 지켜보며 반드시 되돌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 그걸 실현한 것이다. 잘못된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이재오 총무)

그러나 당 지도부의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 정가에선 한나라당의 강공책에 대해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나라당의 강공은 10ㆍ25 재보선 이후 보여온 당의 기조에서현격히 궤도를 이탈한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 기획조정위에서 작성해 이회창 총재에게 보고한 ‘거야 3대전략 보고서’와 비교해 보면 극명히 나타난다.

기획위는 보고서에서 “ 과도하고 무리한 대여 투쟁이나 격렬한 여야 대립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 DJ를 지나치게 궁지로 몰아넣어서도 안되고 DJ가위안 삼는 부분까지 사력을 다해 부인하는 식의 공세도 바람직하지 않다” “ 여권의 요구가 없어도 협조해 줄 것은 협조해 주고 평가할 것은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기조는 여당과의 비교우위를 전제로, 국회와 정국의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극한 투쟁을 벌이는 것을 자제, 이 총재의 화합적이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력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 보고서는 또 “선진 강국 건설, 국제 경쟁력 강화, 국민 대통합 등의 능력을 겸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적고 있고, 실제로이 총재는 이를 위해 러시아ㆍ핀란드 방문길에 나섰다. 당직자들도 줄곧 “수의 정치는 하지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이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첫 시험대에 올랐던 교원정년 문제는 가장 원치 않는 ‘수의정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20만 교원표 의식한 강공책?

한 당직자는 “ 총재 비서실에서도 몇차례 교원연장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원정년 연장안은 총재가 독단적으로 지시해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당정책위와 국회 교육위팀, 당지도부 가 모두 이를 추인했기에 이처럼 힘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만제 의장은 “총재가 러시아에서 귀국을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법안을 처리하기 전에 내가 총재단 회의에서 ‘일부 여론이 반발하고 여당이 물리적으로 방어에 나설 수도 있을 텐데 이를 뿌리칠각오로 하겠다’고 누차 보고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론이 마땅치 않다고 물러설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정가에선 한나라당의 이같은 강공책을 대선전략과 연계시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선에서의 표계산이 앞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만에 가까운 교원표를 생각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의 이야기. “어차피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찍을 사람은 민주당을 찍는다. 이 정책에 대해 반론이 드세더라도 한나라당 입장에선 손해 볼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표에는 나름의 생리가 있다. 일반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이라도 자신에게 직접 관련된 문제가 아니면 잊어버린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와 직결된 사람은 반드시 기억한다. 이런 논리를 교원정년 연장문제에 대입해 보면 여론의 반발표는 곧 잊혀지게 되고 혜택을 보는 교원계층들은 한나라당의 지지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단순 계산만은 아닌 듯 싶다.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그간 교총 등 가는 곳마다 교원정년 문제를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이런 약속이 족쇄가돼 힘이 생겼는데도 모른척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한나라당의 국회 사령탑인 이재오 총무가 교사출신으로 교육위에서 법안처리를 주도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특히 이총무는 각종 당회의에서 교원정년 연장안에 대해 강경 목소리를 냈다. 일부 비판적인 당직자들 사이에선 “당지도부가 이 총무의 논리에 압도당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이다.


‘수의 정치’ 비난 부담, 이총재 결단에 촉각

야당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29일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회창 총재의 결단에 달려있다. 당지도부도 “정기국회 회기중에 처리한다는 입장이지 꼭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은 아니다”라며 이 총재의 귀국에 스케쥴을 맞춰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총재가 귀국해도 원안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유야 어떻든 이 총재가 당론을 되돌린다면 책임을 져야 하고, 그간 내놓은 당 지도부의 입장도 워낙 강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여론의 질타에 고개를 숙이는 마당에 야당총재는 여론에 고개를 빳빳이 쳐들 것이냐”는 지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특히 이부영 부총재를 비롯한 비주류들은 “수의 정치는 안된다”고 크로스보팅을 요구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29일 귀국길에 오르는 이총재의 머리속은 상당히 복잡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taeheelee@hk.co.kr

입력시간 2001/11/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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